이영훈의 한국경제史 3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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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 이앙법 등 경작 혁신으로 자립농 늘어…노비제 해체됐지만 ‘소농경제 자립’은 20세기에나
1660년대 이후 한 세기 동안 조선의 경제는 양적으로 성장 추세였다. 인구가 증가하고 농지가 개간되고 장시가 확산했다. 그에 자극을 받아 농업생산도 단위 토지에 많은 노동과 비료를 투하하는 다로다비(多勞多肥)의 집약농법으로 진전했다. 17세기 후반부터 논농사에 묘판에...
2019.12.2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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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양반은 다수 노비를 이용해 농장 운영했죠…가작·작개·어우리 등 농장경영방식별로 대가 달라
농촌 양반의 경제적 기반은 대규모 노비와 토지에 있었다. 15~16세기 남부지방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농지 개간은 다량의 노비 노동을 동원한 양반에 의해 주도됐다. 그리 높지 않은 산과 깊지 않은 계곡에 있는 완만한 기울기의 구릉이 개간의 주요 대상이었다. 높은 산과 깊...
2019.12.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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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들어 양반·상민으로 ‘반상’ 신분제 확립, 상민은 군역 의무…지방은 품관·향리가 지배세력
조선왕조의 국가체제가 정비된 1460년대를 전후해 농촌사회에는 양반이란 새로운 지배 신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반은 원래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의 관료를 말했다. 고려의 양반은 국인으로서 개경에 집결한 지배공동체의 중심을 이뤘다. 농촌에는 양반이 없었다. 고려 말기...
2019.12.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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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무역 봉쇄…개간으로 토지 늘리며 농업국가로, 여전히 밭농사 중심…최초의 농업서 펴내 생산성 높여
1452년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는 전국 지역별 주요 생산물과 그것을 규정한 생태 환경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최초의 지리서다. 전국 8도의 토지는 총 171만 결에 달했다. 1결은 대략 2헥타르(㏊)다. 고려 말기인 1389년에는 평안도와 함길도를 제외한 6도의 ...
2019.12.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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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실과 귀족토지를 몰수해 과전법으로 재분배…15세기 후반부터 토지를 백성의 사유재산으로 인정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은 이성계 세력은 1390년 고려 왕실과 귀족의 토지를 몰수해 재분배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이로써 고려왕조를 지탱한 귀족세력의 경제적 기반이 붕괴했으며, 뒤이어 고려왕조도 멸망했다. 개혁 대상이 된 귀족·관료의 토지는 1...
2019.11.2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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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했던 ‘하늘 제사’ 폐지하고 바닷길도 포기…조선은 중국의 책봉받고 조공하는 ‘제후국’이었죠
조선이란 국호는 기자조선(箕子朝鮮)에서 유래했다. 조선의 건국세력은 고대 중국의 성인 기자를 계승한다는 도통론을 새로운 왕조의 대의명분으로 삼았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감행하면서 내건 명분은 “작은 자가 큰 자를 거스를 수 없다”는 사대주의의 ...
2019.11.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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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군사국가…조선은 관료제로 지배한 영토국가, 사유재산·농촌시장 등장…현대 한국인 원형 나타났죠
새로운 시대에서 사회는 지배와 예속의 신분질서로 분열했다. 토지가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성립했으며, 소규모 가족경영이 발달했다. 신분으로 갈라진 사회는 유교의 이념으로 통합됐다. 그 속에서 인간들은 보다 나은 지위에 도달하기 위해 투쟁했다. 그 몸부림의 과정에서 현대 한...
2019.11.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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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고려인구, 경제발전으로 12세기보다 2배 증가…지방 지배세력도 교체…조선 '역성혁명'으로 이어졌죠
팍스 몽골리카의 번성한 국제 교류는 고려의 경제 발전을 자극했다. 그에 따라 인구가 증가했다. 12세기 인구는 250만~300만 명이었다. 14세기 말의 인구는 대략 600만 명이었다. 13세기는 대전란의 시기이므로 인구 증가는 주로 14세기의 일이었다. 짧은 기간에 ...
2019.11.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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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는 귀족들의 농민 수탈이 심해졌다고 썼지만 농업생산력과 농민 권리 커져 조세율은 크게 낮아졌죠
몽골과의 전쟁 이후 고려의 사회 구성에 큰 변화가 일었다. 전쟁으로 농지가 황폐하자 조세의 수취가 어려워졌다. 귀족·관료에 대한 녹봉 지급이 줄어 그들의 생활이 곤궁해졌다. 1257년 그들에게 수조지(收租地)를 지급하는 제도가 부활했다. 1075년에 시행된...
2019.10.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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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몽골이 세운 세계 질서 속에서 민간무역 번성, 新 지식인도 배출…조선을 열 신흥세력 잉태됐죠
1323년 남방산 향목(香木)과 2만 점 이상의 자기 및 28t의 동전을 싣고 중국 영 파를 떠나 일본으로 가던 200t 규모의 무역선이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했 다. 1976년 우연히 발굴된 이 무역선은 대몽골 울루스의 질서에서 번성했던 동아시아 해상 교역의 한 ...
2019.10.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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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오랜 항쟁 끝에 몽골에 항복한 이후 큰 변화…13세기말 ‘대몽골 울루스’에 편입돼 세계와 교역
1231년부터 시작된 몽골의 침입과 고려왕조 28년에 걸친 항쟁은 고려의 사회와 경제에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안겼다. <고려사>는 그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1254년의 일이다. “이해에 몽골병에 사로잡힌 남녀가 무려 20만6800여 명이요, 살육된 자...
2019.10.1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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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때 노비는 ‘사회적 인격’ 있어…조선과 달랐죠…무신정권기엔 정계진출도…‘노예제 사회설’은 잘못
고려는 노비의 복식을 차별하려고 노력했다. 사노(私奴)는 모자를 쓸 수 없다는 금령이 내려졌지만 얼마 있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노는 요대(腰帶)를 할 수 없다는 금령이 내려지기도 했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12세기 초 개경을 방문한 서긍은 귀천 간에 복식의 차별이 없...
2019.10.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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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때 ‘노비는 주인의 재산’이라는 첫 노예법 생겼죠…고려 노비는 해방 가능성 있는 ‘기한부 채무노예’ 성격
한국사에서 노비(奴婢)는 삼국시대에 왕실과 귀족의 가내 노예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삼국의 통일전쟁 과정에서 포로 출신인 노비가 증가했다. 7세기부터는 범죄자의 가속을 노비로 적몰(籍沒)하는 형벌이 생겨났다. 그 연장선에서 고려왕조는 노비법을 제정하고 강화했다.삼국시대...
2019.09.3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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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수도인 개경은 지배세력의 군사공동체였죠…고려는 귀족·관료·중앙군 등 국인과 지방 향인 차별
전호란 말의 기원은 중국 송(宋)이다. 송은 민간의 토지 임대차 관계와 소작농을 가리켜 각각 주전제(主佃制)와 전호라고 불렀다. 11세기 말 송은 주전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전주(田主)와 전호의 지위에 차등을 두는 법을 제정했다. 고려왕조는 그 법을 ...
2019.09.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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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는 왕실의 공전과 귀족의 사전으로 나뉘었지요…11세기 말엔 모두 공전으로…관리는 토지 아닌 녹봉 받아
936년, 고려는 후백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신라의 귀순을 받아들여 청천강 이남의 영역에 한하지만 한반도를 다시 통일했다. 고려는 이전의 신라와 마찬가지로 전국의 토지를 국전(國田), 곧 국왕의 소유로 간주하는 이념에 기초해 토지와 백성에 대한 지배체제를 구축했다.왕...
2019.09.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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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고려 인구는 250만~300만명으로 추정…지배층 주식은 쌀, 서민은 조·수수같은 밭작물이었죠
고려 인구가 몇 명이나 되는지는 <고려사>에 전하지 않는다. 그런 정보가 고려왕조 실록에 있었다면 15세기 전반에 쓰인 <고려사> 편찬자들이 놓쳤을 리 없다. 456년이나 지속한 왕조가 인구에 관한 정보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신기한 일이다.고려 인구는 얼...
2019.08.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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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재산 적대시·논쟁 없는 학계…한국사회 죽어가고 있다
작년 5월 18일 시작한 ‘한국경제 3000년사’ 연재가 60회째를 맞았다. 처음 약속한 대로 이번 글이 마지막이다. 내 어린 시절 주변 마을은 초가지붕이 올망졸망 모인 ‘소농사회’였다. 친구들은 거의 소농 가계의 자제였다. ...
2019.07.0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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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의 한국경제史 3000년 (60·최종회) 연재를 마치며
작년 5월 18일 시작한 ‘한국경제 3000년사’ 연재가 60회째를 맞았다. 처음 약속한 대로 이번 글이 마지막이다. 내 어린 시절 주변 마을은 초가지붕이 올망졸망 모인 ‘소농사회’였다. 친구들은 거의 소농 가계의 자제들이었다. 나는 이 연재를 통해 어릴 적 그 속에서 놀았던 소농사회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 발...
2019.07.0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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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난 물질주의 악습…거짓·불신이 정신문화 갉아먹어
거짓말하는 사회 직전 연재에서 한국의 시장경제체제는 대중주의(大衆主義)로 타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저변에는 정신문화의 타락이라는 보다 큰 흐름이 작용하고 있다. 한국인이 거짓말을 잘함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일이다. 2014년 위증죄로 기소된 사람이 1400명이...
2019.06.2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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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성장 원동력 '국가주의'…영미式 진화 아닌 포퓰리즘으로 퇴보
선진적 두 유형 시장경제체제는 나라마다 법, 제도, 문화의 차이에 따라 그 유형을 달리한다. 영국과 미국을 모델로 하는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y)는 개인 간 자유계약을 핵심원리로 한다. 사용자와 종업원은 계약에 의한 위계 관계다. 사용자는 ...
2019.06.2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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