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의 탐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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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족함에 다다랐음에도 우리는 왜 노동을 그치지 않는가 [탐나는 책]
고전적인 정전 위주의 접근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한 시대에 발표된 모든 소설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도살장으로서의 문학장을 환기한 ‘멀리서 읽기distant reading’로 널리 알려진 프랑코 모레티를 나는 교양소설에 대한 진지한 분석인 <세상의 이치...
2024.08.2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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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맨정신으로 취하게 하는 행님들의 인간찬가
최근 편집한 김기태 작가의 첫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친구 A가 읽고 이렇게 카톡을 보냈다.A: 기태형이랑 술 한잔해야겠다나: 뭐가 제일 좋아A: 표제작이랑 <롤링 선더 러브>나: 그거 진짜 재밌어서 증정용 소책자에도 넣었는데 좋다니까 너무 좋네A: 그니까 ...
2024.07.1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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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과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 깔깔 웃거나, 한없이 심각
김사과를 꼬박 따라 읽은 지 어느덧 10년이 넘어가지만 나는 김사과를 생각하면 여전히 심각해진다. 간혹 좋은 소설이나 시, 영화를 만나면 난 이 작품의 모든 문장을 이해할 수 있다, 고 곧장 말하게 된다 (물론 진심이지만). 그러나 내게 김사과는 모든 문장을 이해에 앞...
2024.06.0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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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먼 곳을 바라봤다
2015년의 어느 날을 기억한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었고, 막 출간된 한 문학상의 수상작품집을 사든 채 버스에 앉아 읽고 있었다. 서울역을 지나던 중이었을까, 어두운 하늘 아래로 높은 건물들이 노란빛을 뿜어내며 고적하고 호젓한 야경을 완성하고 있었다.그 풍경을 기억하...
2024.04.2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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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진실'처럼 들리게 할까?
최근 소설을 어떻게 홍보할지 선배와 고민하다가, 어떤 독자를 타겟팅할 것이냐는 갈림길에 닿았다. 그 독자는 소설을 왜 읽을까? 나는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소설을 읽는 것 같다고 했고, 선배는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 소설이 좋다고 말했다. 그런데...
2024.02.2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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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런 불륜?…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 이뤄내는 사랑
나폴레옹은 누군가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세상에서 일어난 일로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다. 내가 20대를 보낸 2010년대에 읽은 사랑 이야기는 대개 깊이 남았지만, 그중에서도 손꼽아 좋아하는 4편의 소설이 있다. 바로 <풀이 눕는다>(김사과)와 <백의 ...
2024.01.2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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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을 위한 비석이 여기 있다”… 각자도생한 이들의 비석
김동휘 편집자는 탐나는 책 칼럼에서 밀레니얼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시대를 대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주 사적인 나의 이야기를 증언하는 것이다. (…) 나는 무엇인가. 나의 2010년대, 혹은 지금 진행 중인 2020년대는 어떤 의미인...
2023.12.2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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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대한 책인 줄 알았는데 인생을 배우는 경전 같았던 책
소설을 읽고 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소설이 아리송하고 모호한데, 그 빈틈이 매력적일수록 더욱 그렇다(어쩌면 그 소설을 좋아하게 되어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소설은 다른 장르에 비해 특...
2023.11.2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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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문학으로 가을 밤을 새워보고 싶어서
국문학과에 입학했을 때, 자기소개 자리에서 한 선배가 내게 물었다. 여기서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나는 도서관에서 밤을 새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까지 읽어본 문학책이라곤 과 정도였을까. 시집 한 권을 통으로 읽어본 적도 없어서 도서관에서 무얼 읽고 무슨...
2023.10.1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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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욕하는 건 괜찮지만, 내 취향을 욕하는 건 참을 수 없어
당신이 무얼 먹었는지 알려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는 말이 있었나. 하지만 나는 당신이 좋아하는 책이야말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가장 잘 알려준다고 여긴다. 그래서 인생 책, 인생 영화를 물어보는 질문이 너무나도 진부하다는 말이 너무나도 슬펐다. 그걸 안 물...
2023.09.2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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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때 더 다정한 쪽이 덜 사랑한 사람이다"
문학평론가 허윤진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호머를 비롯한 음유시인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가 프랑스의 옛 음유시인들인 트루베르나 트루바두르처럼 음악적인 언어로 세상을 표현하고 공감을 얻고 문화적인 보편 상징이 될 수는 없다. 시조를 읊음으로써 현실의 정치 사상...
2023.08.2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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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매력적인 '꼰대' 본 적 있나요
나는 꼰대를 좋아한다. 꼰대들은 경험과 이상을 갖고 있기에. 그들은 젊을 적의 치열 한 육체적·정신적 고투로 지식이 축적되어 있으며,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에 개탄하며 이상에 불과할지언정 분명한 방향성을 품고 살아간다. 꼰대의 조건은 이것만으로 충...
2023.07.1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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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말을 들으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 공장이 갑작스레 가동되는 느낌이 든다. 평소엔 전혀 돌아가지 않아 굳어버린 톱니바퀴들에 급히 윤활유를 뿌리고 부지런히 태엽을 감는다. 자동차 엔진에 예열이 필요하듯이 오랫동안 생각을 가다듬으면서 ‘그래, 이번에는 정말 재...
2023.06.0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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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하게 무책임한 부정성
한 청년이 서점에 들어선다. 사장을 대면한 그는 다짜고짜 서점에서 일을 시켜달라 하더니 “저는 그러기를 갈망하고 있으며 그 무엇도 제가 마음먹은 바를 실행에 옮기는 걸 막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초년생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겸손과 예의는 어디로 간 것인가? ...
2023.05.1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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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의 시대, 책만이 가능한 묘사
회사에서 원고 속 단어 하나하나를 한땀 한땀 읽고 있는 내가 아닌, 퇴근한 뒤 소파에 느슨한 자세로 누워, 내키는 속도로 단어를 보는 나는 묘사에 약한 편이다. 곁눈으로 다음 단락의 단어 뭉텅이가 보이면 마치 언덕처럼 높은 과속방지턱으로 천천히 다가가는 기분이라고 할까...
2023.05.0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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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 소설,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요"
회사에서 원고 속 단어 하나하나를 한땀한땀 읽고 있는 내가 아닌, 퇴근한 뒤 소파에 느슨한 자세로 누워, 내키는 속도로 단어를 보는 나는 묘사에 약한 편이다. 곁눈으로 다음 단락의 단어 뭉텅이가 보이면 마치 언덕처럼 높은 과속방지턱으로 천천히 다가가는 기분이라고 할까....
2023.04.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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