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국인 이야기
-
대원군, 세도정치 철폐 등 기득권 일소 성공…쇄국으로 세계질서와 열강 움직임 못 읽어
조선은 백성에게 가난과 질병, 부패와 공권력의 폭력을 안긴 불행한 체제였다. 조선은 정조의 죽음 이후 60여 년 동안 세도정치가 지속됐다. 소수 가문이 왕권을 능가하는 정치권력과 경제, 문화 등을 장악했고, 관직 매매 등 부패를 일상화했다.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백성...
2023.04.03 10:00
-
일본이 서양문물 적극 흡수하며 위기극복 할 때 조선은 권력투쟁 등으로 급변하는 정세 못읽어
조선 통신사들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1811년까지 12차례 파견됐는데, 한 번에 300~500명의 인원이 참가했다. 그들은 곳곳에서 일본의 변신과 발전을 보면서 감탄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오랑캐라는 편견과 패전국이었다는 반감 때문인지 성리학의 우월감과 개인의 문...
2023.03.27 10:00
-
기존 세력의 저항과 사회체제 경직성 벽 막혀…북학파 이상과 정책제안, 부분적 개선에 그쳐
만약 청나라, 일본, 러시아를 통해 서양의 평등사상과 독립 의지, 발전된 과학 기술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면 어땠을까? 필시 세계의 존재와 문화의 다양성을 분명하게 자각하고, 관념론을 벗어나 실용론을 추구했을 것이다. 또 지구와 우주의 인식을 통해 거시적인 세계관을 ...
2023.03.13 10:00
-
한·중 간 민감한 문제로 남은 간도 영유권 갈등…간도협약, 국제질서 재편이란 관점에서 살펴야
만주의 지정학적·지경학적 가치를 잘 알고 국경 분쟁을 자주 벌인 러시아도 만주지역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러시아는 1948년 2월 간도 일대에 조선인 자치구 설치를 골자로 하는 평양협정을 북한과 체결했다. 연길 등 간도지역 일부를 북한 영토로...
2023.02.13 10:00
-
19세 말부터 조선 이주민 늘며 개간 시작…정부의 우유부단한 대응이 간도사태 불러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어도, 나라는 줄일 수 없다.(吾頭可斷國不可縮)”국경(감계)회담에서 칼을 빼들고 위협하는 청나라 관리에게 조선 측 대표인 이중하가 한 말이다.우리에게 ‘간도’는 무게감이 큰 존재다. 영토, 역사, 일본...
2023.01.16 10:00
-
전후 귀환한 조선 포로들 환영은커녕 냉대받아…문벌사족들은 가족이 돌아온 사실 숨기기도
탈출을 시도하다가 죽은 사람도 꽤 많았다. 《국조인물지》에 기록된 이엽 장군은 원균이 대패한 칠천량 해전에서 잡혀 포로로 끌려갔다. 좋은 대우와 회유를 뿌리치고 탈출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결국 자결했다.쇄환, 즉 정부의 공식적인 노력으로 귀환한 사람들도 있었다. 160...
2022.09.05 10:00
-
20여회 해전 승리로 패망 위기 극복·동아시아 질서 변화
“싸움이 급하다. 부디 내 죽음을 말하지 말라.(戰方急 愼勿言我死)” 20여 번의 해전에서 무패했고, 아군은 100여 명의 전사자만 낸 이순신 장군이 전사 직전 한 말이다.육지전에서 끊임없이 패하던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 5월 초 이순신 장군의...
2022.07.18 10:00
-
서구문물 수용후 급성장한 일본, 전쟁으로 야망 분출…수차례 침략 의도에도 조선 조정 방어준비 게을리해
명나라는 전통적으로 실크·차·도자기 등을 수출했다. 그런데 효율적인 상업 유통과 세금 징수, 국방비 등 때문에 은을 대거 사용했다. 은본위제를 채택하면서 멕시코 등 아메리카와 일본의 은이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대거 유입됐다. 결국 명나라는 유럽...
2022.06.27 10:00
-
태풍에 대패로 끝난 쿠빌라이칸의 일본 정벌…동원된 고려에선 친원파 득세하며 몽골풍 만연
당시 세계 최고의 군사력과 기술력, 경제력을 갖춘 원나라와 고려의 대규모 연합군은 변방의 섬나라 일본 원정에서 두 번씩이나 실패하고 퇴각했다. 그런데 우리는 패인을 ‘바람(神風)’ 탓으로 몰고, 아쉬워하는 평가까지 한다. 그것이 사실일까. 전쟁의 ...
2022.01.17 10:00
-
몽골 쿠빌라이의 일본 정벌에 합류한 고려…900여척 전함에 1만여명 태우고 마산서 출항
4대 황제에 오른 쿠빌라이에게 몽골제국이 부여한 최대 과제는 남송의 멸망과 동방의 완전한 정복이었다. 일본열도는 지정학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가치가 별로 없었다. 일부의 견해대로 남송을 공격할 때 외교적인 배후 역할 정도였다. 쿠빌라이칸은 1226년 고려에 일...
2022.01.10 10:00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