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 않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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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아침, 다른 때 보다 더 일찍 잠에서 깬다.
평일의 출근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가방을 챙겨 들고, 조용히 문을 열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식구들은 아직 단꿈을 꾸고 있다.
거리를 질주하기에 어려움이 없다. 유난히 빠른 속력에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출근시간이 1/5로 줄어 든다. 텅 빈 거리를 달려 출근하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사무실은 썰렁하지만,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조용함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평소 쌓아 놓은 서류를 뒤적이며 지저분한 책상을 정리하고,
업무노트를 꺼내 한 일을 지우고, 해야 할일을 새로 써 보는 시간도 한가함이 주는 기쁨이다. 밀린 메일에 답장을 쓰면서 자유로운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여유는 평일에 가질 수 없다.
읽다 만 책들도 뒤적거리고, 다시 읽고 싶은 책을 펼쳐 놓으면 오래 전에 익혔던 단어가 다른 의미로 다가 온다. 그어 놓은 밑줄에 다시 눈이 끌리면서 밑줄이 그어지지 않은 문장에 관심이 쏠린다. 언어의 마력에 빠져 들고 작가의 생각을 여행하는 시간의 춤을 출 수 있다. 자유로운 독서의 시간은 그래서 필요하다.
이런 시간에 또 다른 누군가가 문을 열고 기침을 하면서 출근하면 방해가 된다.
모처럼 혼자의 여유를 만끽하는 시간이지만, 아쉬움이 따른다.
괜히 사무실에 나온 건 아니다. 연휴가 시작될 법한 일요일에 회의를 하기로 했다.
연휴가 많아 할 일을 다할 수 없을 것 같아 쉬는 날을 택했다.
직원들의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자유로운 생각을 펼치기 위해,
편한 복장으로 정해지지 않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기 위해,
어른들(?)만 모였다.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 정확히 나타난 사람들과 모여 차를 마시고 잡담을 나누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아무 때나 아무 하고나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다.
긴 연휴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해, 바쁘고 아쉬운 마음에,
휴일에라도 회의를 하기로 했지만,
설마 정말로 출근할까 하고 의심도 했지만,
누군가 반대를 하면 그냥 쉬려고 했지만,
아무도 반대하지 않고, 모두가 출근하여, 순서 없이 의견을 주고 받으며,
아무 이야기나 할 수 있어 더욱 편안하다.
두어시간 회의를 마치고 짜장면집에 내려 가는 즐거움을 함께 발견할 수 있어 기쁘다. 고추잡채 한 그릇과 짬뽕 국물에 술 한 병을 시켜 놓고, 권커니 자커니 잔을 돌리는 것도 평일과 다름이다.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올라왔을 때, 누구랄 것도 없이 커피를 먼저 타 주면서,
“휴일에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며 던지는 웃음은 정(情)든 사람들끼리의 예의의 표시이다.
갑자기 던진 제안은 “영어 1교시 특강”이다.
영어를 잘 하는 리더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영어실력 강화”를 위해
빔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칠판을 열어 놓고, 서너 명이 영어공부를 한다.
전혀 생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은 강의를 듣다 보니 두어시간이 또 훌쩍 지나간다.
재미있는 공부시간이다.
오후 4시가 되어 짐을 꾸리면서 “오늘 기쁜 휴일이었다”고 인사를 나누며 문을 잠그는 그들의 눈빛엔 행복이 가득하다.
하루를 사무실에서 보내느라 가족에게 미안하지만, 가끔은 가족들에게 한 사람이 비어 있는 휴일의 느낌도 필요하리라.
모두가 쉬는 날에, 많은 사람들이 놀러 가는 시간에,
산과 들이 꽉 채워지고 사무실은 텅 비는 날에,
도로가 막히고 생각이 복잡하여 마음이 쉴 수 없는 휴일에,
가끔은 빈 곳을 채우는 경험도 즐거울 수 있다.
가끔이 자주라도 나쁠 건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