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회, 여학생 책임 아니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여학생들이 모여 성폭행을 일삼고, 인터넷을 통해 폭력조직을 결성하고, 다른 학생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준 사건이 밝혀졌다.
학생 당사자는 보복이 두렵고, 학교 관계자는 소문과 체면을 생각해 모두들 쉬쉬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을 조사하여 발표한 특정 교사는 오히려 불편한 입장에 처해있다.
교육 당국의 책임론을 거론하면서 언론과 사회가 떠들썩하지만 며칠 후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질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문제들은 개선되거나 전혀 해결되지 않은 채, 또 다른 누군가의 피해자를 방치한 채, 정말로 큰 피해자는 그런 조직에 휩싸여있는 폭력학생 자신들도 포함된다는 걸 모른 채, 세월 속에 묻혀 버리고, 국가와 사회는 또 다른 뉴스에 초점을 돌릴 것이다.
과연 그래도 되는가?
한가지 결과에 대한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모든 행동과 결과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이를 “과다결정(Over-Determination)”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원인이 같은 결과(equi-finality)”를 가져 올 수 있다.
– 결손가정과 무관심, 지나친 교육열은 물론,
– “돈이면 다 된다”고 하는 자본주의 논리,
– 디지털 세대로 일컬어지는 0과 1의 단순성,
– 학원과 과외 수업을 통해 마구잡이로 주입시키는 교육 방식,
– 70분에 50문제를 풀어 내는 능력을 수학능력으로 인정하는 평가 방식 등이 학생들을 힘들게 하는 직접적인 문제가 되었다고 혹자는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일년 내내 국회의사당과 거리 곳곳에서 싸움과 투쟁을 멈추지 않는 위대한 지도자들의 배짱, 툭하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이익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의 행동”을 보고 배운 학생들에게 그 죄값을 치르게 하는 어른들의 책임 또한 면할 수 없다.
학교 정문에서부터 시작되는 술집과 노래방, 서점을 찾는 것보다 PC방과 옷 가게를 찾는 게 훨씬 쉬운 교육환경에서 지식을 쑤셔 넣는 공부를 강요하는 것 또한 어른들이 치러야 할 죄가 아닐 수 없다.
어려운 중소기업을 살려 일자리를 만드는 것보다 세금을 더 거두어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쉬운 일을 하게 하면서 “일자리 쉽게 나누기”를 강조하는 게 과연 장기적인 국정과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비대한 정부와 공공기관의 일자리를 더욱 팽창하는 것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인지 묻는 사람이 없다.
하기 싫은 공부를 하고 가기 싫은 대학을 가서, 아주 쉽게 졸업을 해도 취직이 되지 않는다는 걸 중학교 시절부터 알고 있는 자녀들에게, 부모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유명교사를 찾아 가고, 학원 근처를 배회하게 하고, 의사들의 수익창출을 위해 얼짱 몸짱을 만들어 내는 것도 국책사업의 하나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캐나다와 미국에 날아가는 “기러기 수송선”에 탄 아빠 엄마들은 자신의 소중한 인생을 포기하면서, 그저 자녀들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가정해체까지 감수하고 있다. 그 나마 돈 없고 힘없는 다수의 국민들은 그런 비행기표를 살 엄두도 내지 못할 터이지만, 국가와 정부는 그들의 외로움과 소외감을 위로해 줄 어떤 역량도 갖추지 않았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서민을 위해 국가는 할 수 있는 일이나 책임이 없다는 것인가?
사안이 불거져 나올 때만 대책 없이 떠들어 대는 언론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끈질기게 잡고 늘어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조사하고 분석하고 대책을 내 놓도록 관계당국을 몰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눈요기거리로 보도자료를 취재하고 편집하는 언론은,
“미디어가 지배계층의 지배력을 유지시킨다.”고 한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의 주장을 외면할 수 없게 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모든 지식을 가르치는데 있는 게 아니라, 지식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일깨워 주고, 지식을 배우고 싶어할 때 지식에 이르는 올바른 길로 이끌어 그들 스스로가 지식을 습득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교육의 과제는 성장세대가 특정한 학문을 완전하게 배우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전념하기만 한다면 모든 학문을 받아 들일 수 있도록 사고능력(Mind)을 열어 주고 정돈해 주는 것이다.” 라고 300년 전에 로크가 말했다.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는 것이 미덕이며, 수출이 살길이라고 외치던 애국자들은 모두 무덤에 파묻혀 있고, 겉멋에 들떠서 유행만 쫓아다니는 싸구려 시민들을 양산함으로써 권력을 쉽게 유지하고 싶은 우민정치(愚民政治)는 20년째 성공을 거두고 있다.
교육제도를 개선하여 100년 대계를 꿈꾸게 하고, 우수인재를 양성하여 강한 국가를 만드는 것보다, 도시와 지역을 분할시키며 국민적 갈등과 분열을 고조시키는 일이 더욱 급하고 중요한지 묻고 싶다.
10년 동안 국민소득 만 불을 넘지 못하면서, 혈맹과 우방과 적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모든 강대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최고의 지정학적 위치를 십분활용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주변 국가들에게 무시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국민은 누구를 믿고 따라야 하는가?
세금은 누구를 위해 납부해야 하는가?
향후 10년 동안 국가의 존재를 제대로 유지할 수 없다면,
“헛되이 보낸 시간의 보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게 두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