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수원에 가서 농촌 경영 지도자들을 모시고 강의를 했다.



첫 시간이 끝난 휴식시간에 한 분이 다가 와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기에 몇 권을 말씀 드렸더니 그건 다 읽었다고 하신다.

매주 2권의 책을 27년간 읽고 있다고 했다.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었다. 내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강의 시간에 괜히 책 이야기를 꺼냈나보다. 후회가 된다.





엊그제 40대 후반의 벤처기업 부사장 한 분이 찾아 왔다.



사오정을 지나면서 어떻게 전혀 색다른 직업에 도전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물으셨다. 그냥 먹고 살기 위해 일을 찾던 중 우연히 이런 일을 하게 되었다고 답하며, 최근 경험을 전해 드리며 몇 가지 자료를 보여 드렸다. 그 분 역시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며 지난 한 해 동안 준비하고 학습한 노트를 꺼내 보여 주었다.



최근 2년 동안 매주 3권의 책을 읽고 요약한 내용들이었다. 파워포인트 작성에 관한 전문 서적을 2권이나 사서 까맣게 밑줄 쳐가며 공부하고 있었다. 유창한 영어 회화와 프리젠테이션 능력을 갖추는데 20년이 걸렸다고 했다. 올 여름에는 책이나 몇 권 읽을까 하고 20 여권을 사 놓았다고 한다.





얼마 전, 한국경제신문사에서 개최하는 세미나에서 협상력에 관한 특강을 했다.



강의를 들으신 분 중에 어느 박사 한 분이 다가 와 인사를 건네셨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 분이 근무하시는 경기도 이천의 한 연구소에서 방문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직원과 함께 찾아 가서 전문가를 위한 교육의 필요성과 단계별 교육과정에 대해 설명해 드렸다.



설명이 끝난 후 연구소장이라는 분이 다가와 연간 교육계획표와 교육예산을 설명하면서, 협상력과 예절 등에 관해서는 이미 사내에서 전문그룹을 구성하여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며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 설명을 또 괜히 했나 보다.





어제 오후엔 미국에서 돌아 온 김 박사의 전화를 받았다.



갑자기 만나자는 연락에 모든 일 젖혀 두고 쫓아 가 보니, 미국에서 사 온 책 한 보따리를 꺼내 놓으며, “올 여름은 무더울 테니 휴가 같은 거 생각하지 말고 함께 책이나 몇 권 번역하자”고 했다. 금주 내로 이 책들을 다 읽고 새로운 교육과정을 개발하자는 제안과 함께 스트레스를 주었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월급도 주지 않으면서 일을 시키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밉지가 않다. 그게 더 고맙다.





그들은 여름이 짧았다. 무덥고 지루한 장마철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휴가에 대해 주고 받을 인사치레는 꺼낼 시간도 없었다. 훨씬 먼 미래를 준비하고 훨씬 높은 꿈을 현재로부터 실현해 가고 있었다. 그런 고객들을 만나 부끄러움도 느끼고 기쁜 마음을 주고 받으며, 가끔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요즘이다.



여름 휴가와 주 5일 근무제를 생각할 틈이 없는 분들을 만나며,

덩달아 바빠야겠다는 의무감에 빠졌다. 병(病)과 열정은 전염된다고 했다. 바빠서 소홀했던 학습을 보충하고 2학기 강의 준비를 하기에도 여름은 짧을 것 같다.



숨 고를 수 있는 여름이 벌써 며칠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