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하늘을 날고 있다.

7천 미터 상공을 시속 800Km 의 속도로 날아가는 비행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솜털구름이 하늘 가득히 끝없이 펼쳐져 있다. 새털 구름은 멀리 하늘 가장자리에 닿아 있고, 하늘 끝자락엔 뭉게구름이 뭉실뭉실 피어 오른다. 구름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산자락 사이마다 촌락이 자리잡고 있다. 산등성이마다 둑을 만든 저수지엔 물이 고여 있고, 마을과 마을 사이를 잇는 길과 철도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남쪽으로 내려 오면서 바닷가를 맞이한다. 크고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관을 이루고, 섬 사이를 오가는 배들이 일으키는 작은 물결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물과 구름과 바람과 햇살은 권력과 부(富)와 명예를 모른다. 그래서 아름답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따라 자유롭게 흘러가고 자연 그대로 존재한다.
변함이 없다. 그건 사실이다.

300만원의 월급을 받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느낌은 많을 수도 있고 모자랄 수도 있다. 대리로 승진했다는 사실은 즐거운 일이지만 직장의 규모나 특성, 자신의 나이와 학력에 따라 미흡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스스로 만족할 수도 있다. 주식 투자를 해서 천만 원을 벌었다는 사실에 모두가 부러워하는 감정을 감추지 않지만 10억을 투자한 투자자는 턱없이 부족함을 느낄 수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자기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자연은 사실(Facts)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걸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Feeling)은 얼마든지 다르다. 발생한 사건이나 보여지는 사물은 쉽게 설명할 수 있지만, 그걸 보는 사람의 견해나 의견은 쉽게 정리(整理)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건이나 사실에 대해 사람들은 모두 다르게 보고 판단하며,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낀다. 사실은 단순하지만 감정은 복잡하다. 이성과 논리는 뚜렷하고 명백하지만 느낌과 감성은 애매모호하고 측정할 수 없으며 옳고 그름을 단정지을 수 없다.

그래서“인간은 사실과 느낌의 차이를 고려해야 하고, 이들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하고 느끼는 생활과 있는 그대로 나타나는 현실의 삶이 균형을 이루면 좋겠다. 지나치게 감정과 느낌에 치중해서 현실을 망각해도 곤란하지만 너무 사실만을 주장하고 현실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요즘, 국가와 사회에서 나타나는 문제와 현상에는 느낌과 사실을 혼동하거나 애매모호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불균형이 깔려 있다. 사실이 중요한 게 있고 감정과 느낌이 중요한 게 있다. 국민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지만 사실을 혼동하는 사람에게는 사실의 중요성도 명확하게 알려 주어야 한다.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들이나 지나치게 감성적인 사람들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느낌으로 부화뇌동할 수 있다. 어른들이 가르쳐야 하지만, 이를 악용하는 어른들도 있다. 너무나 힘든 세월을 살아 온 어른들 또한 젊은이들의 느낌이나 감정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들 또한 적절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느낌과 사실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올바른 교육과 가르침을 통해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글로벌시대에 발생하는 국제적인 문제부터 개인의 생활 방식에 이르기까지 산적한 문제들에 대해 올바른 시각과 통찰력을 갖도록 하고, 사실이 왜곡되지 않고 편견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한 때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뒤에 감추어진 강대국들의 군비증강과 군축문제, 국가와 국민을 외면한 채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정치 세계에서 대선과 총선을 염두에 둔 이합집산(離合集散)과 조령모개(朝令暮改) 현상,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강력한 구조조정과 비윤리적 경영의 이율배반(二律背反), 환경보호와 과학문명의 불균형, 각계 각층의 신뢰의 붕괴와 불평등의 심화,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크게 벌어지고 있는 지식의 격차와 이에 따른 미래의 불투명,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경제 위기와 정답이 없는 해결방안, 경영 관리자에게 부족한 리더십과 리더에게 필요한 전략적 관리지침, 모두에게 필요한 도덕과 윤리의 실종 등 수없이 많은 현안에 국민들은 어지러워 하며 흔들리고 있다.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해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거나 뚜렷한 지침을 내려 주는 리더가 없으니 국민들은 더욱 실망하고 있다.

그래서 생각나는 문구가 있다.

“불확실성과 애매모호함, 패러독스를 모두 아우르라.
(Embrace ambiguity, paradox, and uncertainty).”

차라리 불확실성과 애매모호함을 즐기고, 패러독스를 이해하라는 것이다. 죽음과 삶이 무슨 차이가 있으며, 결과와 과정의 구분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너무 슬퍼서 어이없는 웃음이 나올 때도 있지 않은가? 강점이 때로는 약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상황에 따라 장점이 되기도 하는 걸 우리는 자주 겪는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쉽지 않으며, 인간에 대한 가치 판단은 신(神)의 영역이라고 한다. 빈부의 차이는 고대로부터 있는 것이며,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절이나 세종대왕 때에도 “요즘 애들 버릇없다”는 말은 늘 들어 온 것이 아니겠는가?

어스름한 달빛에 안개가 피어 오르는 어둠 속에서 알아 볼 수 없는 형체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느껴 보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때로는 사실을 중시하면서 따지고 대들어야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느낌으로 만족하며 살아야겠다. 사실이 부족할 때는 느낌으로 만족하고, 느낌의 갈증을 느낄 때는 냉철한 사실의 판단이 필요하다.

다행스러운 점은 모든 사람, 모든 인간들에게 이 모든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모두 있다는 점이다. 좌뇌와 우뇌가 있고 Hard Skill과 Soft Skill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생각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모든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은 아주 기쁜 일이다.

어떠한 조물주도 어떤 부모님도 좌뇌와 우뇌의 비율을 5:5로 정확히 구분할 수 없으리라. 그러하니 이왕 한 번 사는 인생, 이왕 주어진 능력 최대한 발휘하면서 우뇌와 좌뇌를 모두 사용하면서(Whole Brain Thinking), 너무 깊이 생각하지도 말고 너무 가볍게 여기지도 말고,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따뜻하게 살아야겠다.

그러나, 그런 구분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지식과 경험, 이론과 실제, 사실과 느낌, 이 모두가 필요함을 느낀다. 그래서 학문의 길은 끝이 없고, 학문의 영역 또한 무한한 것인가 보다. 그런데, 우리 나라 지도자들은 학문의 영역을 넘나들며 공부를 해야 할텐데, 공부는 하지 않고 싸움만 하고 있다.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