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술타령, 신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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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신천희님>
술타령
신천희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 먹지
[태헌의 한역(漢譯)]
貪杯(탐배)
爾汝天氣兮(이여천기혜)
縱使極寒冷(종사극한랭)
吾何買衣着(오하매의착)
當然沽酒嘗(당연고주상)
[주석]
* 貪杯(탐배) : 술을 탐하다, 지나칠 정도로 술을 좋아하다. 역자는 이 말이 우리의 ‘술타령’에 해당하는 말로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爾汝(이여) : 너, 너희들. / 天氣兮(천기혜) : 날씨야! ‘兮’는 호격(呼格) 어기사(語氣詞)이다.
縱使(종사) : 가령, 아무리. / 極寒冷(극한랭) : 추위를 극하다, 몹시 춥다.
吾(오) “ 나. / 何(하) : 어찌. / 買衣着(매의착) : 옷을 사서 입다.
當然(당연) : 당연히. / 沽酒嘗(고주상) : 술을 사서 먹다.
[직역]
술타령
너, 날씨야!
아무리 추워본들
내가 옷 사 입겠나?
당연히 술 사 먹지
[漢譯 노트]
술타령을 술을 마실 때 부르는 노래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술타령은 기실 다른 할 일을 다 제쳐놓고 술만 찾거나 술만 마시는 일을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다. 술타령의 타령을 한자로 ‘打令’으로 적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노래와 연관 짓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그러므로 술타령을 한문으로 번역할 경우 ‘주타령(酒打令)’으로 해서는 상당히 곤란하다. ‘술 노래’로 오해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신천희 시인의 이 시는 시쳇말로 하자면 사이다처럼 빵 터지게 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독자가 술을 즐기는 경우라면 그 ‘시원함’의 정도는 어디 비할 데가 없을 듯하다. 그런데 시인은 왜 두고두고 따스함을 줄 수 있는 ‘옷’을 마다하고, 그 온기가 거의 일회성에 지나지 않는 ‘술’을 사겠다고 한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술에 담긴 의미 내지는 술의 효용성 때문일 것이다.
옛사람들은 술을 ‘근심을 잊게 해주는 물건’[忘憂物]으로 불렀다. 술의 이 중요한(?) 기능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술은 또 함께 나누는 따뜻한 정이라고도 할 수 있어, 온기만을 전할 뿐으로 한 사람만 따뜻한 공간에 머물게 하는 옷과는 달리 그 효용성이 매우 큰 셈이다. 물론 술이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그리움을 격발시키거나 형편없는 일탈로 내모는 일종의 무기가 되기도 하므로, 옷과는 달리 부작용이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이 왜 술을 사먹겠다고 했는지 그 이유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는 더더욱 매력적이다. 생각의 여백을 독자들에게 남겨주는 시인의 이러한 마음씀은 무성의가 아니라 하나의 따스함으로 이해될 수가 있다. 그런 따스함이 그리워지는 날에, 혼자서 불현듯 술집을 찾는 이가 있다면 그는 술꾼임에 틀림이 없다. 세상이 허전하고 세월이 허허로워 술꾼으로 사는 사람들은 또 그 얼마일까? 설령 신이 있다 하여도 그 숫자를 다 세지는 못하리라.
연 구분 없이 6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역자는 오언 4구의 고시로 재구성하였다. 시가 짧던 길던 번역하는 과정에서는 원시에 있는 시어가 누락되기도 하고, 원시에 없는 시어가 보태어지기도 한다. 이런 애로(隘路) 역시 번역의 비애(悲哀)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한역시의 압운자는 ‘냉(冷)’과 ‘상(嘗)’이다.
百年莫惜千回醉(백년막석천회취)
一盞能消萬古愁(일잔능소만고수)
백년 인생에 천 번 취하는 것 아쉬워 말라
한 잔이 만고의 시름 씻어줄 수도 있나니
― 唐(당)·翁綬(옹수)
2019. 12. 24.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