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얻기 위하여 사업을 하는 지 생각해보았다. 그 중에서 단 하나만 꼽으라면 ‘자유’일 것같다. 모든 이들은 ‘내가 누구인가’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나 ‘나는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가’ 따위의 질문에 스스로 응답해야 하면, 종국에는 그 대답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는 환상적인 세계로 물러나거나 정신적인 혼돈을 통해서 회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근대의 개인들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러므로 자유는 혼란스러운 축복이다. 사람들은 그 자신이 되기 위하여 자유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자유로운 선택의 힘만으로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회의와 공포와 오류로 가득한 삶을 의미한다.



사실 이 문제는 대단히 기본적인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그 것은 바로 ‘왜 사는 가?’이다. ‘사업은 왜하는 가?’는 결국 ‘사업가로서의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나의 대답은 좀 유치했다. ‘폼나게 살아보자’가 내가 사업을 시작한 이유였다. 사람이란 끝없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결코 만족을 모르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나의 첫 직장은 코트라(대한무역진흥공사)였다. 그 곳에서 하는 일은 한국의 수출업체들을 도와주는 일이다. 어느 나라건 정부 예산을 들여서 수입업체를 도와주는 나라는 없다. 그 곳에서 일하다보면 업무가 상당히 다양하고 역동적이다. 항상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3년마다 국내에서 해외로, 해외에서 국내로 생활환경을 팍팍 바꿔준다. 그러면서 당연히 수많은 수출업체의 직원,사장들을 만나게 되고. 내가 만났던 직원들도 그랬지만, 사장을 만나면 부러운 점이 많았다. 돈도 많아 보이고, 내게는 하늘같은 KOTRA사장과도 같이 어울리고.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아니, 그들보다 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KOTRA를 그만두고 15년이 지났다. 이제 나에게 ‘왜 사업을 하냐?’고 묻는다면 ‘자유’를 위하여 사업을 한다고 말할 것이다.



모든 의지는 자유롭지만 어떤 의지는 다른 의지보다 자유롭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자유론에 의하면 ‘자유’란 그 자유를 누릴만한 자원을 보유한 자만이 즐길 수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그 것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너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 속한 인간은 누구나 자유스럽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제공하는 자유의 특성이 어떻게 변하는가?’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부자유스러운 인간의 조건 속에서 누가 자유로울 권리를 지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자본주의 혁명은 불공평한 계급주의와 귀찮은 여러 집단(공동체)이나 종교적 참견에서 벗어난 자유 형태에 대한 대중의 상상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그런 방해물이 부서지고 폐기되자 사람들은 자유란 자기 자신의 자원에 의존해야 할 필연성을 뜻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기댈만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한, 여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한정된 사회가 제공하는 자유의 특성이 어떻게 변하는가?



자유는 상당히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돈’도 필요하다. 지그문트 바우만식으로 말하자면 ‘자원’이 필요하다. 즉 의지를 받쳐줄 만한 시간적 여유와 더불어 물질적 여유도 필요하다. 난 산속에서 사는 스님이나 성당에서 결혼하지 않고 사는 신부님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당연히 물질적인 바탕도 필요하다. 살다보니, 아니 자본주의 한 복판에서 살다보니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는 결코 같이 길을 가는 동행자가 아니었다. 자본주의는 자유주의를 필요로 하지만, 자유주의는 자본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사는 ‘홍재화’라는 개인이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는 자본주의에서 성공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난 정주영같은 인물이 되고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자영업자는 시간과 돈에서 자유롭다. 한때는 돈을 많이 벌면 빨리 은퇴해서 정말 ‘폼나게 놀러다니겠다’고 했었다. 30대 중반에는 ‘자유’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사업에 성공하면 이것저것 남한테 꿀리지 않고 내 마음껏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애초부터 내가 그어놓았던 한계도 그리 높지 않았다. 정말 은퇴할 수 있는 현금의 하한선인 ‘단지 몇 십억원만 모으면……’이 내가 생각하던 자영업자의 한계였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집사람과 1인당 10만불씩 들어가는 호화 유람선을 타고 세계 일주하는 크루즈여행을 해도 이자가 이자를 벌어서 충분하게 살 수있을 것이라고 자신했었다. 아이들의 꿈이 커가면서 바뀌듯이, 나의 꿈도 자꾸만 바뀐다. 그 것은 내가 생각하는 ‘자유’의 본질이 바뀌면서 그 본질에 접근하기 위함이다. 자유란 구속당하지 않을 자유와 적극적으로 무엇을 할 자유가 있다. 그런데 그 이상의 자유가 있다. 그 것은 ‘행복’이라는 것이다.



지금 난 이 대목에서 꽉 막혀있다. ‘행복’이 무언지를 모르겠다. 의미는 알겠다. 하지만, 자유보다도 더 애매하고, 자유조차도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김삿갓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훌훌 떨치고 세상을 떠돌며 멋진 글을 남기며 낭만적으로 살았다.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하지만 난 김삿갓처럼 세상을 고독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럼 누군가가 물을 것이다. ‘무엇이 가장 하고 싶으냐?’ 사실 아직 구체적인 것은 없다. 다만, 내 생의 목표는 아이들에게 삼성이나 현대같은 회사 하나씩 물려주고 죽는 게 마지막 목표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중간에 ‘무엇을 하고 싶냐?’면 별로 할 말이 없다. 기껏해야 나의 자식들이 유치원하나 할 만큼의 손자들을 낳고, 난 그 아이들한테 머리뜯기며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것 이외에는. 나를 얽매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도 좋지만, 쉴 틈없이 내 몸에 달라붙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에게는 육체적인 자유보다 더 소중하다.



결과적으로 내 가족의 행복이 내가 성공한 사업가로서인 나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이자 인센티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