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성실과 노력 만으로 성공한다는 편견을 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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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에 두 명의 흑인이 등장하는 광고가 관심이다. 한 명은 미국 대통령인데, 한 명은 누굴까? 광고는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유명한 연설을 들려주면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뒷모습을 보여 준다. 통신 후발 기업인 LG U+가 불가능한 꿈같은 일을 이룰 것이라는 메시지이다. 이 광고는 아주 짧은 시간에 강력한 이미지와 느낌을 주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지만,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은 구체적인 내용과 의미가 뭔지 궁금해진다. 이 장면은 1963년 8월,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있는 링컨기념관과 워싱턴기념탑 사이 워싱턴광장에서 킹 목사가 25만 명의 흑인 청중 앞에서 한 유명한 연설 장면이다. 1963년은 노예해방의 아버지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한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워싱턴광장은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이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워싱턴 초대 대통령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당시 흑인의 삶은 흑인 해방과 만인 평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버스에 삶에 지친 흑인 노인이 앉아 있다. 여러 명의 백인 대학생이 버스를 탄다. 좌석이 꽉 찼다. 몇 명의 대학생은 자리가 없어 손잡이를 잡고 서 있다. 이 때 버스 기사는 흑인 노인에서 자리에서 일어나 달라고 요구한다. 몸이 불편한 노인은 일어나지 않았다. 버스 기사는 경찰을 불렀고, 노인은 인종 차별적인 법에 의해 체포되어 재판에서 벌금형을 받는다. 만인 평등의 기독교적 가치위에 세워진 나라였지만, 흑인이 출입하지 못하는 교회가 있었다. ‘for whites only(백인만 출입할 수 있음)’이나 ‘no blacks and dogs(흑인과 개는 출입할 수 없음)’과 같은 문구를 흔하게 볼 수 있는 곳이 1960년 대 미국이었다.
이제 이러한 시대 상황을 생각하면서 킹 목사의 연설을 들어보자. 연설에는 ‘I have a dream’이 아홉 번 반복된다.
“I have a dream(나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사랑은 평등하게 만들어 졌다는 것을 명백한 진실로 여기고 그 진실한 신념의 의미를 갖는 날이 오는 꿈입니다.”
“I have a dream(나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예전 노예의 자식과 노예 주인의 자식들이 함께 형제처럼 식탁에 둘러앉아 살게 되는 꿈입니다.”
“I have a dream(나는 꿈이 있습니다) 언제가 황폐한 미미시피주의 학대와 불공평의 열기의 무더움 조차도 자유와 정의의 안식처로 바뀌는 꿈입니다.”
“I have a dream(나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나의 네 자식들이 이 나라에 살면서 피부색으로 평가되지 않고 인격으로 평가 받게 되는 날이 오는 꿈입니다.”
자유와 평등의 나라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흑인들에게 킹 목사는 ‘분노하라’, ‘복수하라’, 총을 들어라’고 하지 않았다. ‘I have a dream’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평등한 사회라는 ‘꿈’ 만을 얘기했다. 킹 목사는 백인 인종차별주의 자의 손에 1968년 암살당한다. 킹 목사의 서거 후 미국인들은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킹 목사 기념일로 만들어 기념하고 있다. 미국인이 기념일로 지정한 유일한 인물이 킹 목사이다. 그리고 ‘I have a dream’ 연설로 부터 정확히 45년 후 2008년 8월 28일 버락 오바마는 민주당 후보가 되어 ‘Yes, we can’ 이란 유명한 연설을 한다. 그리고 그해 11월 4일 미국 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흑인 노예의 후손이 노예 주인의 후손과 힘을 합쳐 대통령이 된 시작은 ‘I have a dream’이었다. 불과 45년, 킹 목사가 꾼 꿈보다 더 큰 꿈을 이룬 것이다.
이제 우리의 ‘꿈’ 얘기를 해보자. 우리가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고 얘기할 때, 보통 두 번의 창조가 일어난다. 첫 번째 창조는 꿈이나 희망을 그려보는 것이다. 두 번째 창조는 그로 인해 꿈이나 희망이 실현된 모습이다. 첫 번째 창조인 꿈이 없으면, 꿈에 가까운 어떠한 실현도 가능하지 않다. 원하지 않는 일이 이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좋은 것은.
정주영 회장도, 이병철 회장도 지금의 현대차나 삼성전자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잘 사는 나라, 한국 최고의 회사, 세계 최고의 회사라는 꿈을 꿨고, 그 결과는 현대차, 삼성전자가 된 것이다. 물론 당시 이들의 꿈은 ‘주제파악을 못하는’ 정말 꿈같은 얘기였다. 그러나 꿈이 있었기에 더 큰 꿈을 이루었고, 꿈이 없었다면 세계 최고 기업, 삼성과 현대는 가능하지 않았다. 이병철은 1936년 협동정미소(방앗간)로 시작해 1938년 삼성상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첨단기술과 세계시장’을 꿈꿨다. 정주영은 1937년 미곡상 경일상회(쌀가게)로 시작해 1940년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기술의 현대, 세계의 현대’를 꿈궜다. 방앗간으로 시작하고, 쌀장사로 시작했지만 ‘기술과 세계’를 꿈꿨기에 세계가 인정하고 품질 좋은 자동차와 휴대폰을 만들어낸 것이다. 세계 최고가 되는 꿈이 실현되는데 60년이 걸렸다. 브리테니커 백과사전을 팔던 영업 사원이 회사를 만들고 꿈을 꿨다. ‘고객과 직원을 사랑하고 또또 사랑하고’’라는 꿈을 꿨다. 70년 이후 만들어진 기업 중 유일하게 30대 그룹이 되었다. 30년이 걸렸다.(웅진그룹) 6명의 친구들이 모여 포장마차에서 꿈을 꿨다. 한국의 휴렛패커드를 만들자는 꿈을 꿨다. 20년 만에 1조원을 돌파한 세계적인 IT기업이 되었다.(휴맥스) 1997년 IMF 때 경영하던 회사의 문을 닫고 호떡장사를 했던 사람이 우리 전통음식을 가지고 세계로 진출하겠다는 꿈을 꿨다. 2002년 대학로에 죽집을 시작해서 10년도 안되어 1,500개의 가맹점을 둔 프랜차이즈를 만들어냈다. (본죽)
‘I have a dream’과 ‘Yes, We can’은 두 개의 말이 아니다. 바늘과 실처럼 함께 있는 말이다. 열정, 노력, 헌신이 크고 좋은 회사를 만든다는 편견을 버려라. ‘꿈’이 없는 열정, 노력, 헌신은 직원들에게 그냥 희생해 달라는 말과 같다. 먼저 ‘꿈’을 함께 만들고나서 열정, 노력, 헌신을 요구하자. 우리 회사의 가슴 떨리는 꿈과 미래는 무엇입니까? Ⓒ JUNG JIN HO
정진호_IGM 세계경영연구원 이사, <일개미의 반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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