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DNA(2)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일본인들은 한자 ‘나라 국’ 자를 ‘쿠니’ 또는 ‘코쿠’로 읽는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국’하면 국가를 먼 저 떠올린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좀 다르다. ‘쿠니’라고 하면 나라 보다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뜻 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일본인들끼리 대화를 할 때 ‘쿠니’가 어디냐고 물으면, 고향을 묻는 말로 통용된다.



실제 1868년 메이지유신 전만 해도 일본인들 사이에 국가 개념은 거의 없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영주가 최고 권력자이며, 영주의 권한이 미치는 땅이 자신의 나라였던 셈이다.



요즘에도 지방의 일본인중에는 현(한국의 도) 정도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최상위 개념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특히 시골로 내려갈 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지방 주민을 만나보면 자신이 살고 있는 현 이나 섬 밖으로 평생 한번도 안 나가 본 사람도 눈에 띈다.



세계 2대 경제대국으로 돈많은 일본인이지만 의외로 세상에 대해 무관심해 깜짝 놀라게 될 때가 많다. 일본인들이 중앙 정치에 관심이 적고, 여당인 자민당이 50년이상 장기 집권을 할수 있는 것도, 지역 중심의 일본인 기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대신 일본인들은 자신의 고향 이나 지역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한 것 같다. 지방으로 내려 갈수록 지자체 중심의 공동체 의식이 강해 주민들의 삶과 직결돼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지역 중심은 대학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대학은 서울에서 나오려고 하는 경향이 크다. 국립 서울대학 및 서울 소재 유명 사립대학과 지방 대학간 격차도 크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좀 차이가 난다. 물론 도쿄대학이 압도적으로 인기가 높지만, 간사이(일본의 서부지역) 사람들은 교토대학을 더 인정해 준다. 간사이 주민들의 자존심인지도 모르겠다. 교토대학외에 오사카 토호쿠 규슈 등 지역 중심의 훌륭한 국립대학이 많다.



지방에서 활동하는 기업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크고작건 간에 자신의 고향 이나 지방에 회사를 운영,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는데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지난주 취재차 방문한 시코쿠의 시골 마을에서도 이런 기업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일본 최대 서양란 생산업체인 가와노 메리클론의 가와노 사장은 40년간 난 개발에 매달려온 전문가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도쿠시마에 난 농원과 생산 기지를 만들어 1백여명의 지역 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면서 동네 주민들에게 고소득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데 대해 굉장한 긍지를 갖고 있었다.



도쿠시마시에서 산골로 1시간 반 가량 들어간 산골 마을에서도 지역 주민을 위해 애쓰는 중소 기업가를 만날 수 있었다. (주)이로도리의 요코이시 사장이다. 올해 47세인 요코이시 시장은 농촌 벤처 기업가다. 20여년전 산촌에 몰아닥친 한파로 귤 나무가 전멸하자 주민들의 생계를 위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 냈다. 바로 잎 비즈니스다.

한국에서도 고급 일식 집의 경우 사시미나 요리를 꽃 이나 잎으로 장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꽃과 잎을 생산, 고급 식당이나 호텔 등에 공급해 돈을 버는 회사다. 현재 일본 1위 업체로 전국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흔히 일본의 경우 도시 보다 시골이 살기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 시골을 찾아봐야 일본이 정말 풍족한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가가 싼데다 자연환경이 좋아 도시 생활 보다 여유가 있다. 자신이 태어난 지역에 애정을 갖고 끊임없이 지역 발전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저력은 지역을 사랑하는 향토 정신이라는 점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지역이 부유하고 튼튼해 져야 국가 전체가 강해진다. 고향에서도 훌륭한 삶을 살고 있는 일본인들이야 말로 일본 국력의 바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