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설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민족의 대 명절인 설날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웬지 설이 설 같지 않다.
일단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자영업자들은 설날 대목은 커녕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뉴스에서는 풋풋한 설 준비의 풍경보다 연일 과잉진압, 각종 비리, 생계형 범죄 등 우울한 소식을 더 많이 전하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경기에 맞장구라도 치듯 칼바람 동장군이 맹렬히 기세를 떨치고 있어 사람들을 더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다. 거기다가 귀성행렬로 차는 곳곳마다 왜 그리도 막히는지……. 고향길을 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지 않은 듯하다. 넉넉히 가져갈 것도 없는 것이 그렇거니와 무슨 강제적 사역감에서 억지로 행하는 연례행사처럼 벌써부터 설날 집안일, 가사일이 부담스럽게 여겨지고 이로인한 부부갈등도 증폭된다.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모처럼 형제와 가족들이 모인 자리는 반가움 대화 보다는 집안별 무슨 비교 콘테스트의 장이 선다. “형님네는 이번에 00평 집 샀다면서요?” , “고모네는 큰애가 아직도 시집 안 갔다며?”, “ 00네 막내는 이번에 00대학에 갔다더라…… 현재 상태에서 잘 안풀리고 있는 당사자는 그야말로 ‘음매 기죽어’이다.
혼자인 나만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인가? 그래서 해를 거듭 할수록 영 설 기분이 나질 않는다.
절대적 빈곤을 타파한 적절한 풍요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그 느낌만은 아무래도 과거만 못하게 일그러지는 설날이다. 필자의 기억속에 가난했지만 그래도 우리 어린 시절 설날은 전혀 일그러지지 않았었다.
우선 사람 사는 것 같은 넉넉한 인심이 있어 좋았다. 마음만 먹으면 제사상 음식을 인스턴트 식품으로 돈 주고 다 장만하는 지금과는 달리 동네 방앗간에서 함께 떡가래를 뽑고 집집마다 부침개를 부치며 나눠먹는 살가움이 있었다. 어머니 손을 잡고 재래시장 북적대는 인파를 뚫고 동행해서 하나 건진 양말 한 켤레가 꽤나 가슴을 부풀게 했던 설날이었다
오랜만에 정겨운 고향을 찾은 사람들의 즐거운 표정에서 하루가 꼬박걸린 교통체증을 감수한 짜증의 흔적이라곤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명절날 집안 이해관계보다 고민없이 즐기는 민속놀이에 해 넘어 가는 줄 몰랐고 어른들의 도란도란 사는 이야기는 스트레스보다 서로의 해갈이 더 많았던 추억의 설날이었다.
아무리 당연한 것일 지라도 지금은 변해도 너무 변했고 한편 고약하게 변한 모습이 못내 유감 스럽다.
우리의 설 풍경이 더 이상은 일그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몸도 힘들고 상황은 어렵지만 마음만은 긍정적인 설날로 일그러짐을 반듯하게 폈으면 좋겠다. 그저 나만 잘 되면 되고, 스트레스가 싫어서 고향에 안가면 되는 처방보다는 더불어 사람 사는 것 같은 분위기가 조금만 연출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면면히 내려온 우리 고유의 설인데,
이날 만큼은 일그러지지 말고 밝게 웃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