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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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미디어
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두려워하는가
출처 : 한경닷컴 > 뉴스
일자 : 2008년 6월 17일
李대통령 `인터넷 발언` 배경은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인터넷의 부정적 기능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넷 경제의 미래’에 관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장관회의 개회식에 참석, 환영사를 통해 “지난 10년 간 인터넷이 전 부분에서 창조와 변화를 가속화해왔다”고 긍정평가한 뒤 “(그러나) 인터넷의 힘은 신뢰가 담보되지 않으면 약이 아닌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익명성을 악용한 스팸메일, 거짓과 부정확한 정보의 확산은 합리적 이성과 신뢰까지 위협하고 있다”고도 했다. 요약하면 인류사회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인터넷의 순기능을 100% 인정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합리적 담론에 대한 문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물질적 풍요로서의 선진국은 모르겠지만 정신적 지성 측면의 선진국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인터넷이 소통뿐 아니라 (무분별한 의혹 확산을) 자제하는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실제 청와대는 `쇠고기 파동’만 해도 정부가 잘못한 점이 분명 있지만 인터넷 상의 `근거 없는’ 광우병 위험 주장과 허위 사실이 국민의 불안심리를 자극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측면이 적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촛불시위의 단초를 제공했던 모 방송사의 보도 내용이 왜곡, 과장됐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오늘 나왔다”면서 “광우병으로 죽지 않았는 데도 마치 광우병으로 죽은 것처럼 오인할 만한 보도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측면이 있다”고 역설했다.
청와대는 그러나 당장 인터넷의 역기능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모색 중이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심인성 기자 sims@yna.co.kr ☞ 기사원문보기
책 제목 : 공포의 문화
저자 : 배리 글래스너
방송에서는 끔찍한 일들이 왜 그토록 많이 일어나며, 근거없는 뉴스는 왜 그토록 많은가?
저녁시간대 뉴스가 끝나면 (미국)방송사들은 뉴스 매거진을 방송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지침원리는 어떤 조그만 위험이라도 국가적인 악몽으로 확대시킬 수있다는 것같다. 그러한 프로그램이 보도하는 위험들 가운데 어떤 내용은 실소를 금치못할 내용이다. 그런데도 방송사들은 이런 기사를 “오늘 밤 <데이트라인>을 놓치면 당신이 다음 희생자가 될 수있습니다!”같이 자극적이고 요란한 팡파르로 포장하는 것이다. 시청율이 가장 높은 밤 시간대에 드라마나 영화와 시청율을 다투어야 하기 때문에, 뉴스매거진들도 이야기 구성을 따른다.
“사건은 삽시간에 일어날 수있습니다. 수술대 위에 불이 붙습니다. 환자가 화염에 휩싸입니다.” 바바라 월터스는 1998년 ABC방송국의 <20/20>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외쳤다. 월터스는 보도의 도입부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안면보호구에서 나온 산소가 수술도구 때문에 점화되는 사례는, 여러분의 생각보다 훨씬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취재기자 아놀드 디아즈는 생중계로 보도하는 동안 무심코 그런 상황이 매년 2,700만건의 외과수술 가운데 겨우 100건에 불과하다고 언급해버렸다. 그런데 디아즈는 자기 입으로 분명 안심할 만한 수치를 뱉어놓고는 교묘하게 말을 돌렸다. “걱정할 만한 위험이 아니라고 말할지 모를” 사람들 앞에 고통스러워하는 희생자들, 즉 얼굴에 영구적인 흉터가 남은 여성이나 아들을 잃은 남성을 예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외친다. ‘그 끔찍한 것을 뉴스에서 봤어요!’
—————————————————
‘사람들은 사랑이 아닌 공포에 반응한다’
그 공포를 이용하여 이득을 얻는 집단이 있다. 정치인, 언론매체, 그리고 이익단체이다. 그리고 이 책은 현대인이 과도한 공포를 갖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언론이 시청율을 올리기 위해 충격적인 뉴스를 우리에게 퍼붓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위험을 어떻게 해석하는 지 연구하는 데 긴 세월을 바친 인류학자 메이어 더글라스는 모든 사회마다 거의 무한하다시피 한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가 선택하는 위험의 유형과 수는 사회에 따라 다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요즘 음식에 관한 공포에 쌓여있을까? 만두파동이 그렇고, 김치의 기생충 알이 그랬고,…….
그 것은 아마도 건강에 대한 끝없는 두려움인 것같다. 우리는 질병에 대해 근심하거나 걸리지도 않은 병을 미리 걱정하는 것도 모자라, 이미 해가 없다고 판정된 위험까지 끌어안고 안달복달한다. 미디어들은 이런 경향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들은 공포를 조장하면서 진짜 전문가들이 쉽게 반박할 수있는 3류 전문가들을 등장시키고, 아나운서들은 “정말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없읍니다”로 마무리해대고, 과학적 증거대신 애처로운 일화를 사용하고, 개별적인 사건들을 시대의 추세라고 한다. 그렇게 그 들은 우리 문화 속에 깊이 박혀있는 건강에 대한 공포를 포장했다.
그렇다면 공포의 원인이 제거된 다음에는 그 공포가 사라질까?
분명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전에는 미디어가 크게 다룰 때는 문제가 되었다가, 미디어가 생각하기에 뉴스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고 다루지 않게되면 그 공포는 사라졌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나왔다. 모든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블로그나 개인 홈 페이지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자신만의 미디어를 만들어 낼 수있다. 누구나 이 사회를 자극하고자 하면 자신이 만든 미디어를 통해어 언제든지 가능하게 되었다. 게다가 일단 인터넷에 기사를 올리면 본인의 취소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더라도 이와 상관없이 이웃 블로그들에 ‘퍼가기’로 마구 퍼져갈 수있다. 야후,네이버,다음,구글같은 검색 포털들은 인터넷의 모든 내용들은 실시간으로 자신들의 서버에 저장할 수있기 때문에, 사라지지도 않는다.
미디어의 개체수가 늘어난다고 해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있는 공포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은 가장 큰 자극에만 반응할 뿐이다. 그리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과장된 공포를 유발함으로써 이득을 취하려는 ‘공포 행상인’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이들 행상인들은 그들끼리의 경쟁뿐만 아니라, 다양해진 엔터테인먼트 도구들과도 인간의 마음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을 해야 한다. 그래서 자극의 강도는 점점 높아만 간다. 결국 공포의 행상인들은 우리의 마음을 동료 시민들과 사회 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꽉 채움으로써 우리의 낙천적인 마음을 더욱 짓밟을 수도 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정보사회’의 분명한 역기능이다. 우리는 (공포 행상인들이 퍼뜨리는) 과장된 공포가 우리 자신을 파괴하기 전에 그러한 공포에 대해 의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모든 사람이 모든 정보를 찾아낼 수있는 시대가 왔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기는 더욱 어려워진 시대이다.
‘정보 해독력(cyber-literacy)’이 절실해졌다.
——-
한마디만 더 :
저 그렇게 똑똑하거나,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거든요. 밭일하다가 그냥 손을 툭툭 털고는 된장에 있는 구더기를 건저내고 쌈싸먹을 수있는 그저 그런 사람이에요. 그런 저에게는 ‘알 권리’만큼 ‘몰라도 될 권리’도 소중할 수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두려워하는가
출처 : 한경닷컴 > 뉴스
일자 : 2008년 6월 17일
李대통령 `인터넷 발언` 배경은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인터넷의 부정적 기능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넷 경제의 미래’에 관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장관회의 개회식에 참석, 환영사를 통해 “지난 10년 간 인터넷이 전 부분에서 창조와 변화를 가속화해왔다”고 긍정평가한 뒤 “(그러나) 인터넷의 힘은 신뢰가 담보되지 않으면 약이 아닌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익명성을 악용한 스팸메일, 거짓과 부정확한 정보의 확산은 합리적 이성과 신뢰까지 위협하고 있다”고도 했다. 요약하면 인류사회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인터넷의 순기능을 100% 인정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합리적 담론에 대한 문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물질적 풍요로서의 선진국은 모르겠지만 정신적 지성 측면의 선진국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인터넷이 소통뿐 아니라 (무분별한 의혹 확산을) 자제하는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실제 청와대는 `쇠고기 파동’만 해도 정부가 잘못한 점이 분명 있지만 인터넷 상의 `근거 없는’ 광우병 위험 주장과 허위 사실이 국민의 불안심리를 자극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측면이 적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촛불시위의 단초를 제공했던 모 방송사의 보도 내용이 왜곡, 과장됐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오늘 나왔다”면서 “광우병으로 죽지 않았는 데도 마치 광우병으로 죽은 것처럼 오인할 만한 보도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측면이 있다”고 역설했다.
청와대는 그러나 당장 인터넷의 역기능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모색 중이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심인성 기자 sims@yna.co.kr ☞ 기사원문보기
책 제목 : 공포의 문화
저자 : 배리 글래스너
방송에서는 끔찍한 일들이 왜 그토록 많이 일어나며, 근거없는 뉴스는 왜 그토록 많은가?
저녁시간대 뉴스가 끝나면 (미국)방송사들은 뉴스 매거진을 방송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지침원리는 어떤 조그만 위험이라도 국가적인 악몽으로 확대시킬 수있다는 것같다. 그러한 프로그램이 보도하는 위험들 가운데 어떤 내용은 실소를 금치못할 내용이다. 그런데도 방송사들은 이런 기사를 “오늘 밤 <데이트라인>을 놓치면 당신이 다음 희생자가 될 수있습니다!”같이 자극적이고 요란한 팡파르로 포장하는 것이다. 시청율이 가장 높은 밤 시간대에 드라마나 영화와 시청율을 다투어야 하기 때문에, 뉴스매거진들도 이야기 구성을 따른다.
“사건은 삽시간에 일어날 수있습니다. 수술대 위에 불이 붙습니다. 환자가 화염에 휩싸입니다.” 바바라 월터스는 1998년 ABC방송국의 <20/20>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외쳤다. 월터스는 보도의 도입부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안면보호구에서 나온 산소가 수술도구 때문에 점화되는 사례는, 여러분의 생각보다 훨씬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취재기자 아놀드 디아즈는 생중계로 보도하는 동안 무심코 그런 상황이 매년 2,700만건의 외과수술 가운데 겨우 100건에 불과하다고 언급해버렸다. 그런데 디아즈는 자기 입으로 분명 안심할 만한 수치를 뱉어놓고는 교묘하게 말을 돌렸다. “걱정할 만한 위험이 아니라고 말할지 모를” 사람들 앞에 고통스러워하는 희생자들, 즉 얼굴에 영구적인 흉터가 남은 여성이나 아들을 잃은 남성을 예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외친다. ‘그 끔찍한 것을 뉴스에서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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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사랑이 아닌 공포에 반응한다’
그 공포를 이용하여 이득을 얻는 집단이 있다. 정치인, 언론매체, 그리고 이익단체이다. 그리고 이 책은 현대인이 과도한 공포를 갖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언론이 시청율을 올리기 위해 충격적인 뉴스를 우리에게 퍼붓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위험을 어떻게 해석하는 지 연구하는 데 긴 세월을 바친 인류학자 메이어 더글라스는 모든 사회마다 거의 무한하다시피 한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가 선택하는 위험의 유형과 수는 사회에 따라 다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요즘 음식에 관한 공포에 쌓여있을까? 만두파동이 그렇고, 김치의 기생충 알이 그랬고,…….
그 것은 아마도 건강에 대한 끝없는 두려움인 것같다. 우리는 질병에 대해 근심하거나 걸리지도 않은 병을 미리 걱정하는 것도 모자라, 이미 해가 없다고 판정된 위험까지 끌어안고 안달복달한다. 미디어들은 이런 경향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들은 공포를 조장하면서 진짜 전문가들이 쉽게 반박할 수있는 3류 전문가들을 등장시키고, 아나운서들은 “정말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없읍니다”로 마무리해대고, 과학적 증거대신 애처로운 일화를 사용하고, 개별적인 사건들을 시대의 추세라고 한다. 그렇게 그 들은 우리 문화 속에 깊이 박혀있는 건강에 대한 공포를 포장했다.
그렇다면 공포의 원인이 제거된 다음에는 그 공포가 사라질까?
분명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전에는 미디어가 크게 다룰 때는 문제가 되었다가, 미디어가 생각하기에 뉴스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고 다루지 않게되면 그 공포는 사라졌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나왔다. 모든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블로그나 개인 홈 페이지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자신만의 미디어를 만들어 낼 수있다. 누구나 이 사회를 자극하고자 하면 자신이 만든 미디어를 통해어 언제든지 가능하게 되었다. 게다가 일단 인터넷에 기사를 올리면 본인의 취소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더라도 이와 상관없이 이웃 블로그들에 ‘퍼가기’로 마구 퍼져갈 수있다. 야후,네이버,다음,구글같은 검색 포털들은 인터넷의 모든 내용들은 실시간으로 자신들의 서버에 저장할 수있기 때문에, 사라지지도 않는다.
미디어의 개체수가 늘어난다고 해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있는 공포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은 가장 큰 자극에만 반응할 뿐이다. 그리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과장된 공포를 유발함으로써 이득을 취하려는 ‘공포 행상인’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이들 행상인들은 그들끼리의 경쟁뿐만 아니라, 다양해진 엔터테인먼트 도구들과도 인간의 마음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을 해야 한다. 그래서 자극의 강도는 점점 높아만 간다. 결국 공포의 행상인들은 우리의 마음을 동료 시민들과 사회 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꽉 채움으로써 우리의 낙천적인 마음을 더욱 짓밟을 수도 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정보사회’의 분명한 역기능이다. 우리는 (공포 행상인들이 퍼뜨리는) 과장된 공포가 우리 자신을 파괴하기 전에 그러한 공포에 대해 의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모든 사람이 모든 정보를 찾아낼 수있는 시대가 왔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기는 더욱 어려워진 시대이다.
‘정보 해독력(cyber-literacy)’이 절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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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만 더 :
저 그렇게 똑똑하거나,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거든요. 밭일하다가 그냥 손을 툭툭 털고는 된장에 있는 구더기를 건저내고 쌈싸먹을 수있는 그저 그런 사람이에요. 그런 저에게는 ‘알 권리’만큼 ‘몰라도 될 권리’도 소중할 수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