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지간
이생진
아버지 범선 팔아
발동선 사이요
얘 그것 싫다
부산해 싫다
아버지 배 팔아
자동차 사이요
얘 그것 싫다
육지놈 보기 싫어
그것 싫다
아버지 배 팔아
어머니 사이요
그래
뭍에 가거든
어미 하나 사자
[태헌의 한역(漢譯)]
父子之間(부자지간)
父邪今賣帆船買機船(부야금매범선매기선)
兒兮余惡船中聲紛繽(아혜여오선중성분빈)
父邪然則賣船買動車(부야연즉매선매동차)
兒兮余嫌車上看陸人(아혜여혐차상간륙인)
父邪然則賣船買阿母(부야연즉매선매아모)
好哉下船登陸買一嬪(호재하선등륙매일빈)
[주석]
* 父子之間(부자지간) : 부자지간, 아버지와 아들 사이.
* 父邪(부야) : 아버지! 여기서의 ‘邪’는 호격(呼格) 조사이다. / 今(금) : 이제, 지금. 한역(漢譯)의 편의상 역자가 보충한 글자이다. / 賣帆船(매범선) : 범선을 팔다. ‘帆船’은 돛배를 가리키는데 이 시에서는 목선(木船)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 買機船(매기선) : 기선, 곧 발동선(發動船)을 사다. ‘機船’은 기계의 힘으로 움직이는 배라는 뜻이다.
兒兮(아혜) : 아이야, 얘야! 여기서의 ‘兮’는 호격 조사이다. / 余惡(여오) : 나는 ~을 싫어한다. / 船中聲紛繽(선중성분빈) : 배안에 소리가 어지럽다. 원시의 ‘부산하다’를 역자가 나름대로 풀어쓴 표현이다.
然則(연즉) : 그렇다면. 한역의 편의상 역자가 보충한 글자이다. / 賣船(매선) : 배를 팔다. / 買動車(매동차) : 자동차를 사다. 이 시에서는 ‘動車’를 자동차의 뜻으로 사용하였다.
余嫌(여혐) : 나는 ~을 싫어한다. / 車上看陸人(차상간륙인) : 차 위에서 육지사람을 보다. 원시의 내용을 역자가 얼마간 변형시킨 표현이다.
買阿母(매아모) : 어머니를 사다. ‘阿母’는 어머니를 친근하게 일컫는 말이다.
好哉(호재) : 좋아, 그래! / 下船(하선) : 배에서 내리다. 한역의 편의상 역자가 보충한 글자이다. / 登陸(등륙) : 뭍에 오르다. / 買一嬪(매일빈) : 부인 하나를 사다. ‘嬪’은 부인의 미칭(美稱)이다.
[직역]
부자지간
아버지 지금
범선 팔아 발동선 사요
얘야 난 싫다
배안에 소리가 어지러운 것이
아버지 그럼
배 팔아 자동차 사요
얘야 난 싫다
차 위에서 육지사람 보는 것이
아버지 그럼
배 팔아 어머니 사요
그래 배에서 내려
뭍에 오르거든 어미 하나 사자
[漢譯 노트]
역자는 이 시를 처음으로 대했을 때 시쳇말로 빵 터졌더랬다. 그런데 서너 번 읽다보니 어느새 코끝이 시큰거렸다. 들녘 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가끔 비가 묻어오듯 시인이 유머 속에 숨겨둔 비애가 슬쩍 묻어왔기 때문이다. 부자지간의 대화를 시화(詩化)한 이 시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은 아이의 무료함과 부자(父子) 각자의 외로움이지만, 아이의 뜻을 선뜻 들어줄 수 없는 아버지의 가난도 분명 자리하고 있다.
바다 위의 범선에서는 시간도 더디 가는 것이어서 무료할 수밖에 없는 아이의 눈에는 재빠르게 지나가는 발동선이 많이 부러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는 범선을 팔아 발동선을 사자고 하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부산해 싫다”며 한마디로 딱 잘라버렸다. 범선보다 편하고 쉽게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발동선을 부산하다는 이유로 고려하지 않을 리가 없을 터이지만, 범선을 팔아 발동선을 사자는 얘기는 초가집 팔아 기와집 사자는 얘기와 별반 다르지 않게 들렸을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는 은근 슬쩍 “부산해 싫다”는 말로 넘어갔을 것이다. 여기에 아버지인 어부의 가난이 ‘고요하게’ 숨어 있다.
그런데 아이는 자기가 아버지를 이길 수 없다는 것과 이겨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아 발동선의 대안으로, 역시 많이 부러워하며 지켜보았을 자동차를 사자고 하였다. 그러나 한평생을 바다에서 고기를 잡았을 아버지에게 자동차는 기실 무용지물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애먼 ‘육지놈’을 탓하며 거절하였다.
무료함을 달랠 것을 사자고 했으나 번번이 아버지에게 막히자 아이는 엉뚱하게도 이젠 ‘어머니’를 사자고 하였다. 그제야 아버지가 아이의 뜻을 들어주겠다고 한 것은, 외로움을 달래는 데는 아이에게는 어머니가 필요하듯, 자기에게는 부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어머니’를 돈으로 살 수 있는가의 여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역자도 어린 시절에 이 아이와 비슷하게 아버님께 엉뚱한 소리를 한 적이 있었더랬다.
“아부지! 어디 밭 팔아요.” / “왜?” / “너무 멀어요!”
이상하게도 역자가 한 얘기는 또렷이 기억나는데 아버님께서 뭐라고 하셨던 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말씀이 없으셨던 건지 아니면 역자가 까맣게 잊어버린 건지는 몰라도, 역자가 중학생이 되기 전에 우리 식구 누구도 그 밭에 다시 간 일이 없었다는 사실은 지금껏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아버님께서 그 밭을 처분하셨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역자는 겨우 열 살을 넘긴 정도의 나이에 그 밭까지 가는 길이 멀어 너무 싫었고, 심부름으로 다시 마을까지 와서 사들고 가야 했던 그 무거웠던 술 주전자는 더더욱 싫었고, 길섶에 이따금씩 불쑥 나타나 나를 소스라치게 했던 뱀이 무엇보다 싫었던, 그 옛날 좁고 구불구불했던 들길이 지금에 이토록 그리운 것은 어인 일일까?
범선 팔자고 아버지를 조르던 그 아이가 그 옛날 역자인 듯해 마음이 짠하기만 하다. 술 한 병 들고 배 구경하러 바닷가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이 시는 역자가 처음으로 시도해본, 이른바 구언시(九言詩)이다. 그러나 각 시구(詩句) 모두(冒頭)의 두 글자가 전부 부르는 말이거나 대답하는 말이고 이는 생략할 수도 있기 때문에 결국 칠언고시(七言古詩)로 이해해도 무방할 듯하다. 역자는 6연 14행으로 된 원시를 6구의 구언시로 한역(漢譯)하였다. 압운은 짝수 구마다 하였으며, 압운자는 ‘繽(빈)’, ‘人(인)’, ‘嬪(빈)’이다.
2020. 6. 9.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