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인도네시아에 부임할 때 현지 금융감독청(OJK)이 주관하는 인터뷰 형태의 시험을 치렀다. 인도네시아에서 금융회사의 주주나 이사, 커미셔너 등으로 취임하려면 그 직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보는 시험(Fit and Proper Test)을 치른다. 그런데 2013년부터 2016년에 규정이 바뀌기까지 3년간은 금융회사에서 일하려면 외국인은 직위에 관계없이 모두 이 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떨어지는 사람도 꽤 많은 시험이라 바짝 긴장을 하고 시험 전까지 금융감독규정을 달달 외우다시피 했다. 약 1시간 반의 인터뷰 시간에는 세 명의 시험관이 미리 제출한 학위증과 자격증 등을 보고 여러가지 질문을 하며 내가 이 자리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물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현지인을 쓸 수도 있는데 굳이 인건비가 더 많이 드는 외국인을 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합격을 하고 부임을 하면 어떻게 현지직원들에게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을 전수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했다.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고, 고용허가와 체류허가를 차례로 신청하여 또 기다리는 시간은 참 길었다. 마침내 모든 수속이 끝나 고용허가서와 체류허가서를 손에 쥐었을 때는 후련하기도 하고 안도감 마저 들었다. 비로소 법적으로 신분을 보장받는 외국인 근로자가 된 것이다.
[인도네시아 톡톡] 인도네시아에서 일하는 외국사람들, TKA 이야기
이렇게 인도네시아에서 일하는 외국 인력을 TKA(Tenaga Kerja Asing, 외국인 근로인력) 라고 한다.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인도네시아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의 수는 약 10만명에 조금 못 미친다. 이 중 중국인이 3만 6천명으로 36%를 차지하고 일본과 한국이 1만명 안팎이며, 인도와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들이 5천명 내외의 근로자를 보냈다.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인도네시아에서도 외국인 근로자 TKA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내야 하는 서류들도 많고 조건도 까다롭고 규정도 자주 바뀐다. 같은 회사에서 매번 똑같이 신청을 하는데도 그때그때 규정에 따라 또 처리하는 담당자가 누구냐에 따라 순서와 절차도 일정하지 않을 때도 많았다. 서류를 내놓고 처리가 되어서 연락이 올 때까지 오랜 시간 기약없이 기다려야 했던 기억도 많다.

외국인들끼리 외국인 근로자로 사는 애환을 나누며 이런저런 경험을 얘기하면 항상 나오는 의문이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외국인 근로자 고용에 왜 이렇게 인색할까 하는 것이다. 금융업무를 하면서 외국인 투자기업(PMA)인 한국계 기업을 방문해 보면 서너명의 한국인 경영자와 관리자가 천명 정도 되는 현지인 근로자를 관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까 정부에서 서너명의 외국인이 일할 수 있도록 고용허가와 체류허가를 내 주면 이 사람들이 천명을 고용해서 급여를 주는 것이다. 고용창출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도네시아에서 고용허가를 받아 일하는 외국인들은 대부분이 전문직, 관리자, 경영진, 컨설턴트, 기술자들이다. 고용창출 외에도 지식이나 경험 전수 같은 부가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해외투자를 적극 유치한다고 하면서 본사에서 사람을 파견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빡빡한 외국인력 사용 규정은 인도네시아가 외국자본은 환영한다고 하면서 정작 와서 일을 해야 할 외국사람은 환영하지 않는다는 모순된 메시지를 준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동시에 진출한 어떤 외국금융회사는 베트남에서보다 훨씬 적은 규모의 본국 인력만을 인도네시아에 보낼 수 있었다. 외국인들이 회사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업무도 제한이 있다. 예를 들어, 외국인력은 인사나 경력관리, 채용 등의 업무 수행에 제한이 있다. 본사에서 파견할 수 있는 사람 수도, 업무영역도 제한을 하면서 새 회사를 인수하여 영업망을 갖추고 기업문화를 만들어 가고 하는 작업을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인도네시아 정부라고 이런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 1기 정부에 이어 2기에서도 중요한 의제인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서는 외국인 인력에 대한 허가 조건을 쉽게 해 주고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2018년에는 대통령령과 노동부장관령으로 외국인력 사용과 관련한 규정을 변경 시행하기도 하였다.

사실 인도네시아가 외국인에게 내어 준 고용허가는 10만개가 채 안 된다. 2억 7천만이 넘는 인도네시아 인구에 비하면 비중이 0.05% 정도에 불과하다. 싱가포르(인구대비 외국인근로자 비중 20%)나 UAE(87%)는 물론이고 외국인 근로자가 3백만이 넘어 인구대비 비중이 10% 정도 되는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와도 비교가 안 된다. 또, 인도네시아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대부분 관리나 경영,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어 인도네시아 저임 노동자들과 직접 경쟁관계에 있지도 않고, 앞에서 설명한 대로 오히려 고용을 창출하는 효과가 있다. 정부관리나 경제학자들도 해외에 있는 인도네시아 근로자(TKI)가 4백만명 가까이 되어 국내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보다 40배 가까이 많다며 외국인을 고용하는데 보다 유연한 접근을 취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톡톡] 인도네시아에서 일하는 외국사람들, TKA 이야기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외국인력 사용과 관련한 문제는 경제논리로만 접근할 수 없다. 이것은 정서의 문제이며 정치적 이슈이기도 하다. 10만명도 안 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자국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고용 여건에 중대한 위협이 되지는 않을 테지만 언론을 통해 나오는 얘기를 들어보면 그렇지가 않다. 자국민들도 양질의 안정된 일자리를 충분히 얻지 못하는 현실에서 왜 외국인에게 일자리를 내어 주어야 하느냐는 수사가 먹힌다. 2018년 대통령령으로 외국인력 사용과 관련한 조건과 규정을 개정할 때도 반대가 심했다.

최근에는  술라웨시 동남부에서 니켈 제련소 건설을 위해 500명의 중국 인력을 들여오겠다는 계획이 지역에서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주지사와 주의회도 앞장서서 반대를 했다. 코로나 19가 한창인 지금 굳이 대규모 외국인력을 들여와야 하느냐는 것이다. 방역을 이유로 댔지만 외국인 근로자 도입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도 반대정서에 영향을 미쳤다. 결국 이 근로자들이 들어와야 제련소 건설이 빨리 추진되어 3천명 이상의 현지인력 고용유발효과 실현이 가능하며, 들어온 근로자들은 6개월 단기 고용허가를 받기 때문에 필요한 작업을 하고 나면 다 돌아갈 것이라는 점들을 설명하고서야 논란이 진정되는 분위기이다.

기본적으로 정부는 외국인력에 대한 고용허가 조건과 절차를 완화해 나간다는 방침이지만 반 TKA 정서는 언제든지 불쑥불쑥 나타날 수 있고, 이런 분위기에 편승한 정치적 발언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경제발전을 위해 외국자본도 외국인력도 필요한데, 정치적 부담 때문에 필요한 외국인력이 들어와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은 만들지 못하는 것도 지금 인도네시아의 모습 중 하나이다.

* 위 내용은 필자 소속기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양동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 한국수출입은행 (crosus@koreaexi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