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수칼럼] 마지막에 웃는 사람


 가장 좋아하는 야생화가 있다. 바로 깽깽이풀이다. 집 정원에서 가장 먼저 피는 복수초 다음으로 두 번째 피는 꽃이다. 겨울이 끝나기 전 그리고 봄이 오기엔 아직 추운 무렵에 핀다. 고운 보라색 빛깔 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며칠 못 가 오래 볼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깽깽이풀꽃이 더욱 애달프고 곱게 느껴진다.
[이지수칼럼] 마지막에 웃는 사람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꽃이 피기를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꽃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해 처음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깽깽이풀꽃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무엇에 시간을 빼앗겼는지 정원에 피는 꽃을 놓친 것이다. ‘화무실입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네 인생에서 권력이나 부귀영화가 오래가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느새 내 위치가 없어졌어!”

“쓸모가 없어지니 전부 젊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했어!”

 얼마 전 만난 60대 여성이 한 말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이 활동했던 조직에서 이제 존재 자체가 없어졌다고 허탈해했다. 20년 세월을 돌아보면 수고와 눈물밖에 남은 게 없는데 이제 와보니 ‘뒷방 늙은이(?)’ 취급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자신처럼 되지 말라며 ‘뭐든 나서서 하지 마!’라는 나름 처방전(?)을 내놓았다.

또 다른 60대 여인이야기다. 전화가 왔다.

“지수 씨! 이번에 내가 피아노 반주해도 될까?”

“그럼요! 너무 감사하지요.”

 5분 후 다시 그 여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안해.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내가 지금도 현역인줄 알아.” 하며 자신의 속 이야기를 풀었다. 평생 피아니스트로 살아온 삶을 벗어나지 못해 아직도 피아노에 대한 욕심이 남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게 싫어서 기회만 있으면 하고 싶어진다고 했다. 그 마음이 더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을 주책바가지(?) 노인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지인들 중 60대들을 만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 은퇴자들이다. 이들 중 삶의 만족도가 높은 사람은 은퇴 후 삶을 미리 준비한 사람들이었고 반면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은 삶의 만족도가 다소 낮은 느낌을 받았다.

 또,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준비한 것은 돈 즉 재정이었다. 그러나 이토록 재정이 탄탄하게 준비된 사람들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그것은 돈 문제가 아니라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당하는 것’에 대한 <마음>의 문제였다. 한마디로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며칠 전 ‘쓸모 있게 나이 들기’ 라는 방송을 봤다. 한 남성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는 모습이었다. 직접 요리해 남에게 대접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다재다능한 모습에 아주 오래전 방송된 “혼자서도 잘 할 거야”라는 어린이 프로그램 제목이 떠올랐다.

 필자 역시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부류이지만 이 방송을 보면서 한편 씁쓸한 여운도 남았다. 곧 다가올 60대 삶을 위해 지금 보다 더 쓸모 있는 자기계발을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은퇴 후 우리네 인생을 산행에 비유하기도 한다. 가령 산 정상을 50대로 보았을 때, 60대 이후 삶은 ‘등산(登山)’ 보다 ‘하산(下山)’이다. 내리막길에 서있는 셈이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산행에서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앞만 보고 오르기만 해도 산 정상에 도달하지만 내리막길에서는 조심하지 않으면 안전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전문가들은 몸에 힘을 빼고 발 디딜 곳을 앞뒤 좌우 살펴야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서두르지 말고 여유를 가지라는 것이다.

 서양 속담에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제일 잘 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마지막이 갖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여 마무리할 때가 되기도 하고 인생 끝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만약 인생에서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라면 그 얼마나 가치 있는 웃음이 아닐까 싶다. 오르고 내려온 삶을 살아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참다운 웃음이기 때문이다.

 봄이 되니 산에 오르는 이들이 많아졌다. 매일 아침 산행을 하는데 함께 가자고 연락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들 부쩍 더워진 날씨에 다이어트가 목적이란다. 필자 역시 다이어트를 해야 하지만 이번 봄 산행은 <몸 관리>를 위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맘 관리>를 위해서 열심히 오르내리기를 다짐해 본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되기 위해…

Ⓒ20190424이지수(jslee308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