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사례이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던 갑은 을에게 그 아파트를 매도했는데, 계약금 5천만원을 지급받은 이후 아파트 값이 급등하자, 처음에는 중개업소를 통해 계약금 배액을 지급하고 해약할 것 같은 태도를 취하더니, 중도금지급기일이 임박하자 연락을 일방적으로 끓어버렸다. 이에 을은, 답답한 마음에 계약을 이행할 것인지, 아니면 약속대로 계약금 2배를 지급할 것인지를 독촉하는 서면을 보냈다. 그런데, 느닷없이 갑은 아파트를 담보로 여러 건의 근저당권을 임의로 설정해 버렸는데, 문제는 설정된 여러 건의 근저당권 채권최고액 합계가 계약금을 제외하고 을이 갑에게 지급해야 할 나머지 중도금과 잔금을 합한 6억원을 초과하는 7억원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을로서는 현재의 상태 그대로 아파트를 이전등기받게 되면 지급해야 할 중도금 잔금을 초과하는 금액의 근저당채무를 떠안게 되는 결과가 된다. 이에 을은 갑에게 강력하게 항의하였지만, 갑은 자신의 채권자들의 독촉으로 어쩔 수 없이 담보를 설정해주었다고 변명하기만 할 뿐 시정조치는 취하지 않고 매우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당황한 을이 필자의 사무실을 방문하였은데, 당초 을은, 계약금의 2배를 반환받고 계약을 종결할 것인지, 아니면 아파트 이전등기를 넘겨받는 절차를 밟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갑을간의 매매계약서를 검토한 결과 매매계약서상에는 상대방의 계약위반에 대한 위약금조항이 기재되어있지 않았고, 단지 해약금조항만이 존재할 뿐이었다(위약금과 해약금조항의 차이에 대해서는 종전의 칼럼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으므로 생략한다). 따라서, 비록 아파트를 매도한 갑이 일방적으로 상당한 근저당을 설정하여 계약이행을 거부한 것은 갑의 계약불이행 즉, 위약이 분명하여, 이를 이유로 을이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는 있지만, 위약금조항이 존재치 않아 손해배상으로 계약금의 2배를 배상받기는 곤란한 것이다. 즉, 갑의 계약위반으로 계약은 적법하게 해제될 수 있지만, 손해배상청구는 실제 손해를 입증하여야만 가능한 것이지 계약금의 2배를 당연히 손해로 청구할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갑의 계약위반으로 발생한 실제 손해를 입증하기가 곤란하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결국, 위약금조항이 없는 매매계약을 체결한 을로서는 갑의 위약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절차를 무작정 진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을에게, 계약해제절차를 밟아서는 손해배상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계약해제절차를 선택하는 것은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자문하고, 대신 계약이 여전히 유효함을 전제로 한 이전등기절차를 염두에 둔 처분금지 가처분절차를 우선 권하였다. 필자가 보기에는 매매계약 이후 매도인 갑이 임의로 설정한 여러 건의 근저당권 내역을 살펴본 결과, 선순위 2건의 경우에는 금융기관이 채권자였고, 나머지 2건의 근저당권은 개인이 채권자라는 점, 2건의 선순위 금융기관채권만으로도 시세에 육박하는 금액으로 채권최고액이 정해져있어 나머지 2건의 근저당권의 경우에는 담보가치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매매계약의 해약을 즈음한 시점에서 동시에 설정된 점에 비추어 볼 때, 해약금을 지급하기 아까워진 매도인이 주변 지인들을 동원하여 허위로 근저당권을 설정하면서 법률관계를 복잡하게 한 후, 매수인으로 하여금 계약금만 돌려받고 이 건 계약을 스스로 포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되었던 것이다.
최근 들어서 부쩍 늘어난 이 같은 아파트 해약에 관한 법적 분쟁은, 결국 아파트 가격이 거래당사자가 예상치 못할 정도로 지나치게 급등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잘못된 정부정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인 혼란과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이같은 현실이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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