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금 상당의 포기를 감수한 채 계약을 해제하고자 하더라도, 시기적인 제한이 있다. 즉, 계약을 해약할 수 있는 시기에도 법적인 제한이 있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 일반인들은, 중도금지급일 이전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가 반드시 정확한 것은 아니다.
이 점에 관해 민법 제565조에서는 “해약금”이라는 제목으로, 계약금을 포기하고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시기를 “이행에 착수하기 이전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계약을 해약할 수 있는 시점을 법적으로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중도금 지급일 이전이 아니라 이행에 착수하기 이전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다만, 이행에 착수하였는지 여부의 해석과 관련해서,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중도금지급일(만약 중도금약정이 없다면 잔금지급일) 이전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일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서는 중도금 지급일 이전이라도 이행에 착수한 것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다음에서는 실무상으로 자주 문제가 되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해약시기에 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 계약금 상당의 손해를 보고서라도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권리를 놓치게 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먼저, 이행에 착수한 것으로 본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대법원 1994. 5. 13. 선고 93다56954 판결
가. 민법 제565조에 의하여 매도인이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고 계약을 해제하려면 매수인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고 하여야 할 것인바, 여기에서 이행에 착수한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인식할 수 있는 정도로 채무의 이행행위의 일부를 하거나 또는 이행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전제행위를 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서 단순히 이행의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나, 반드시 계약내용에 들어맞는 이행의 제공의 정도에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 매도인이 매매계약 체결시 중도금 지급기일에 그 소유의 다른 부동산에 대하여 매수인 앞으로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주고 중도금을 지급받기로 약정하였고, 매수인의 대리인이 약정된 중도금 지급기일에 그 지급을 위하여 중도금을 마련하여 가지고 매도인의 처를 만나 중도금 지급에 앞서 위 약정과 같이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매도인의 처가 우여곡절 끝에 결국 이에 응하지 아니할 뜻을 밝히면서 중도금 지급만을 요구하자 중도금을 지급하지 아니한 채 돌아온 것이라면, 매수인은 위 매매계약에 따른 중도금 지급의 이행에 착수한 것이라고 봄이 옳다.

2. 대법원 1994. 11. 11. 선고 94다17659 판결
매매계약 당사자의 일방 또는 쌍방이 이행에 착수한 후에 당초 매매계약의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만 이미 수수된 계약금과 중도금의 합계금원을 새로이 계약금으로, 나머지 미지급 금원을 잔금으로 하고 그 잔금지급 일자를 새로이 정하는 내용의 재계약을 체결하였다 하더라도, 당사자 간에 다른 약정이 없는 한 당사자 일방이나 상대방이 새로이 결정된 계약금의 배액상환 또는 포기로써 해제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

3. 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2다46492호 판결
가. 매도인이 민법 제565조에 의하여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고 계약을 해제하려면 매수인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 하여야 할 것인바, 여기에서 이행에 착수한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인식할 수 있는 정도로 채무의 이행행위의 일부를 하거나 또는 이행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전제행위를 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서, 단순히 이행의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나 반드시 계약내용에 들어맞는 이행의 제공의 정도에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고, 그와 같은 경우에 이행기의 약정이 있다 하더라도 당사자가 채무의 이행기 전에는 착수하지 아니하기로 하는 특약을 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이행기 전에 이행에 착수할 수도 있다.
나. 매수인이 매도인의 동의하에 매매계약의 계약금 및 중도금 지급을 위하여 은행도 어음을 교부한 경우 매수인은 계약의 이행에 착수하였다고 본 사례.

4. 대법원 2000. 2. 11. 선고 99다62074 판결
민법 제565조 제1항에서 말하는 당사자의 일방이라는 것은 매매 쌍방 중 어느 일방을 지칭하는 것이고, 상대방이라 국한하여 해석할 것이 아니므로, 비록 상대방인 매도인이 매매계약의 이행에는 전혀 착수한 바가 없다 하더라도 매수인이 중도금을 지급하여 이미 이행에 착수한 이상 매수인은 민법 제565조에 의하여 계약금을 포기하고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

5. 이러한 판례 이외에도 중도금지급일 이전이라도 이행에 착수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그 밖의 사례로는, ① 매매계약 이후에 계약금만이 수수되고 아직 중도금이 지급되기 이전이지만, 매매계약내용에 따라 매도인이 매매대상 부동산의 점유자를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한 경우, ② 계약금만 수수된 상태에서 계약내용에 따라 매매대상 토지에 대한 매도인의 사용승낙서를 교부받아 사용승낙서가 관공서에 제출되어 건축절차가 진행 중인 경우 등이다.

한편, 이행에 착수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사례로는, ① 이행기가 되기 전에 대리인을 통하여 잔대금의 수령을 최고한 행위나 잔금지급기일에 잔금수령을 구두로 최고한 경우(대법원 1981. 10. 27. 선고 80다2784 판결), ② 유동적 무효 상태인 매매계약에 있어서 매수인이 매도인의 토지거래허가협력의무이행을 촉구하였거나 매도인이 그 의무이행을 거절함에 대하여 의무이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승소판결을 받은 경우(대법원 1997. 6. 27. 선고 97다9369판결) 등이 있다.-이상-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