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되는 부동산 법률] 사적인 강제제재(집행), 함부로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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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임대차계약서에 근거한 단전조치에 대해 불법이라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이 있어 소개한다. 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5도8074 업무방해 사건인데, 다음은 판례의 요지내용이다.
이 사건 임대차계약서 제16조 제2항은 '제16조 제1항의 경우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단전조치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취지로 규정되어 있으나, 피해자는 위 제16조 제1항 각 호의 위반행위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사건의 경우 단전조치에 관한 계약상의 근거가 없고(가사 계약상의 근거가 있다 하여도 피해자의 승낙은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는 것이므로 이 사건에 있어서와 같이 피해자 측이 단전조치에 대해 즉각 항의하였다면 그 승낙은 이미 철회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피해자가 이 사건 단전조치와 같은 이유로 이전에도 피고인에 의한 단전조치를 당한 경험이 있다거나 이 사건 단전조치 전 수십 차례에 걸쳐 피고인으로부터 단전조치를 통지 받았다거나, 혹은 피고인에게 기한유예 요청을 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이 사건 단전조치를 묵시적으로 승낙하였던 것으로 볼 수도 없으므로, 이 사건 단전조치는 피해자의 승낙에 의한 행위로서 무죄라고 볼 수 없다.
차임이나 관리비를 단 1회도 연체한 적이 없는 피해자가 임대차계약의 종료 후 임대료와 관리비를 인상하는 내용의 갱신계약 여부에 관한 의사표시나 명도의무를 지체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종료일로부터 16일 만에 피해자의 사무실에 대하여 단전조치를 취한 피고인의 행위는 그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다른 적법한 절차를 취하는 것이 매우 곤란하였던 것으로 보이지 않아 그 동기와 목적이 정당하다거나 수단이나 방법이 상당하다고 할 수 없고, 또한 그에 관한 피고인의 이익과 피해자가 침해받은 이익 사이에 균형이 있는 것으로도 보이지 않으므로, 이 사건 단전조치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고, 사무실 임대를 업으로 하는 피고인이 위와 같은 사정에서 일방적으로 취한 단전조치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오인한 것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
이 판결은, 지난 해 선고된 대법원 2005. 3. 10. 선고 2004도341 판결과 함께 사법당국을 통하지 않는 사적인 제재와 집행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지난해 선고된 2004도341 판결에서는, 임대차계약의 내용에 따라 임차인이 영업하는 점포를 임대인이 임의로 자물쇠로 잠그고 임차인의 간판을 철거해 버린데 대해 업무방해죄로 기소된 사안에서 명도판결을 거치지 않고 일정한 경우에 임의로 명도하기로 하는 계약(합의)의 유효성 여부에 대한 논란에 대해, “--강제집행은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사법권의 한 작용을 이루고 채권자는 국가에 대하여 강제집행권의 발동을 신청할 수 있는 지위에 있을 뿐이므로, 법률이 정한 집행기관에 강제집행을 신청하지 않고 채권자가 임의로 강제집행을 하기로 하는 계약은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민법 제103조에 의하여 무효라고 할 것이다--”라고 하여, 법원은 임의명도계약자체를 무효라고 판단하였다.
결국, 임대차기간이 종료된 이후의 무단점유와 같이 비록 위법한 점유라고 하더라도 이 상태를 시정하기 위한 방법은 법원을 통한 재판과 집행관에 의한 강제집행 등과 같은 사법권력을 통하는 것이 원칙이고, 사적인 집행이나 제재는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하겠다는 판단인 셈이다. 비록 종전에, 상가번영회 등 집합건물 내에서 상가규약 등에 따라 이루어진 단전단수조치에 대해 정당행위로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판례가 있기는 하지만, 이 번 대법원판결은 상가전체의 관리라는 다소 공익적인 목적을 위한 단전단수조치가 아닌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임대인에 의한 제재는 비록 계약과정에서 제재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제재를 당하는 처지인 임차인과 같은 지위에 처한 사람들의 경우 강자의 지위에 있는 상대방에 의해 계약과정에서 부당하게 합의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도 고려된 판단으로 사료된다. -이상-
참고로, 이해를 돕기 위해 2004. 11. 22.자 한경닷컴에 올린 칼럼을 첨부한다.
<재판없는 임의명도, 단전단수조치 적법한가?>
간혹 임대차계약서상에 임차인에 대해서 단전, 단수나 재판없이 임의로 명도(짐을 밖으로 끌어내는 행위)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나, 상가건물 내의 상가번영회회칙이나 주거용 집합건물의 입주자가 관리비를 연체할 경우 단전, 단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보게 된다. 보통 이러한 규정은, 임대차계약이 종료되어서 임차인이 임대차목적물을 명도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임차인이 자진해서 명도하지 않고 있을 때 이를 강제하는 차원에서나, 집합건물 내에서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구분소유자나 점유자들의 의무이행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규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실제 이와 같은 의무불이행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계약서나 규약상에 규정된 위 내용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일은 매우 드문 것이 현실이다. 자칫 형사적인 처벌이 문제되기 때문이다. 즉, 계약서나 규약상에 명백히 기재된 단전단수나 임의명도행위를 실행했을 때, 업무방해나 주거침입 등과 같은 관련 민,형사책임을 면할 수 있는지가 법적으로 애매하기 때문이다.
물론, 만약 이러한 내용의 규정이 계약서나 규약상에 없는 상황이라면, 비록 점유자체가 민사적으로 적법하지 못하고, 관리비 납부의무가 당연히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명도나 관리비청구 재판이라는 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단전, 단수나 임의명도조치를 해버렸을 때, 다른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민사적으로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형사적으로는 주거침입죄, 업무방해죄 등에 해당하게 된다는 점에는 다툼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조항이 당사자간에 합의한 계약서나 집합건물이나 단체의 규약으로 명시된 경우에도, 이러한 조치들이 위법한지에 있다.
현재 판례상으로는, 상가규약에 따른 상가번영회측의 단전조치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사례들이 있지만, 재판없는 임의명도조치에 대한 판단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대법원 1994. 4. 15. 선고 93도2899 판결에 의하면, 어떠한 행위가 정당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인지는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서 합목적, 합리적으로 가려져야 할 것인바, 정당행위를 인정하려면 첫째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상당성, 둘째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셋째 보호이익과 침해이익과의 법익균형성, 넷째 긴급성, 다섯째 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피고인이 시장번영회의 회장으로서 시장번영회에서 제정하여 시행 중인 관리규정을 위반하여 칸막이를 천장에까지 설치한 일부 점포주들에 대하여 단전조치를 하여 위력으로써 그들의 업무를 방해하였다는 공소사실에 대하여, 피고인이 이러한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가 단전 그 자체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위 관리규정에 따라 상품진열 및 시설물 높이를 규제함으로써 시장기능을 확립하기 위하여 적법한 절차를 거쳐 시행한 것이고 그 수단이나 방법에 있어서도 비록 전기의 공급이 현대생활의 기본조건이기는 하나 위 번영회를 운영하기 위한 효과적인 규제수단으로서 회원들의 동의를 얻어 시행되고 있는 관리규정에 따라 전기공급자의 지위에서 그 공급을 거절한 것이므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볼 것이고, 나아가 제반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행위는 법익균형성, 긴급성, 보충성을 갖춘 행위로서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이 있는 것이므로 피고인의 각 행위는 형법 제20조 소정의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피고인에게 무죄를 인정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시장번영회 회장이 이사회의 결의와 시장번영회의 관리규정에 따라서 관리비 체납자의 점포에 대하여 한 단전조치에 대해서도 업무방해죄의 무죄로 선고된 바 있다(대법원 2004. 8. 20. 선고 2003도4732 판결).
한편, 판결없이 계약서나 내부규정에서 정한 임의명도조항을 근거로 한 임의명도조치의 적법성에 대해서는 아직 판례가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위와같은 정당행위의 맥락에서 본다면 임의명도조치에 대해 위법성이 조각되기 위해서는 단전조치보다도 훨씬 엄격한 요건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임의명도조치가 법률적으로 가능해버리면, 명도재판과정을 통해 임차인이 주장할 수 있는 각종 권리(유익비, 필요비, 부속물매수청구권 등)가 급박하고 임의적인 명도집행절차를 통해 사실상 보장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점, 임의명도조치는 주거의 안정성이나 영업활동을 완전히 중단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상당한 제한을 가하는데 그치는 단전단수조치 보다도 훨씬 법익침해가 심각할 수 있다는 점, 명도가 급박할 경우에는 단행가처분과 같은 법적인 절차가 별도로 존재한다는 보충성의 원칙에도 저촉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단전단수조치보다 훨씬 엄격하게 위법성판단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재판없이 임의명도조치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급박한 사정이 존재하고, 임의명도조치에 앞서 수차례 자진명도의 기회를 부여하여야 하는 등 엄격한 요건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결국, 단순히 차임을 몇차례 연체했다거나 자진명도의 기회를 주지 않은 채 단순히 계약서나 규약에 규정을 두고 있다는 이유로 재판없이 임의명도조치를 행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판단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위와 같이 형사적인 무죄 여부와 민사적인 불법행위성립 여부를 동일한 잣대로 판단하기는 곤란하지만, 형사적인 판단은 민사판단에 상당한 영향력을 줄 수 있으므로, 일응은 민사적인 손해배상책임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같은 논리가 유추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한편, 계약서에 규정된 단전단수조치나 재판없는 임의명도조치를 감수하겠다는 취지를 형법 제24조에서 정한 “피해자의 승낙”으로 의율하여 위법성조각사유로 생각해 볼 수 있지만, 형법상 “피해자의 승낙”은 구성요건사실행위(단전 등)가 이루어질 당시까지 “계속”되어져야하는 법률적인 요건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계약서 내용에도 불구하고 대상자가 그러한 조치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피해자의 승낙이라는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이상 -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이 사건 임대차계약서 제16조 제2항은 '제16조 제1항의 경우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단전조치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취지로 규정되어 있으나, 피해자는 위 제16조 제1항 각 호의 위반행위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사건의 경우 단전조치에 관한 계약상의 근거가 없고(가사 계약상의 근거가 있다 하여도 피해자의 승낙은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는 것이므로 이 사건에 있어서와 같이 피해자 측이 단전조치에 대해 즉각 항의하였다면 그 승낙은 이미 철회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피해자가 이 사건 단전조치와 같은 이유로 이전에도 피고인에 의한 단전조치를 당한 경험이 있다거나 이 사건 단전조치 전 수십 차례에 걸쳐 피고인으로부터 단전조치를 통지 받았다거나, 혹은 피고인에게 기한유예 요청을 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이 사건 단전조치를 묵시적으로 승낙하였던 것으로 볼 수도 없으므로, 이 사건 단전조치는 피해자의 승낙에 의한 행위로서 무죄라고 볼 수 없다.
차임이나 관리비를 단 1회도 연체한 적이 없는 피해자가 임대차계약의 종료 후 임대료와 관리비를 인상하는 내용의 갱신계약 여부에 관한 의사표시나 명도의무를 지체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종료일로부터 16일 만에 피해자의 사무실에 대하여 단전조치를 취한 피고인의 행위는 그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다른 적법한 절차를 취하는 것이 매우 곤란하였던 것으로 보이지 않아 그 동기와 목적이 정당하다거나 수단이나 방법이 상당하다고 할 수 없고, 또한 그에 관한 피고인의 이익과 피해자가 침해받은 이익 사이에 균형이 있는 것으로도 보이지 않으므로, 이 사건 단전조치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고, 사무실 임대를 업으로 하는 피고인이 위와 같은 사정에서 일방적으로 취한 단전조치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오인한 것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
이 판결은, 지난 해 선고된 대법원 2005. 3. 10. 선고 2004도341 판결과 함께 사법당국을 통하지 않는 사적인 제재와 집행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지난해 선고된 2004도341 판결에서는, 임대차계약의 내용에 따라 임차인이 영업하는 점포를 임대인이 임의로 자물쇠로 잠그고 임차인의 간판을 철거해 버린데 대해 업무방해죄로 기소된 사안에서 명도판결을 거치지 않고 일정한 경우에 임의로 명도하기로 하는 계약(합의)의 유효성 여부에 대한 논란에 대해, “--강제집행은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사법권의 한 작용을 이루고 채권자는 국가에 대하여 강제집행권의 발동을 신청할 수 있는 지위에 있을 뿐이므로, 법률이 정한 집행기관에 강제집행을 신청하지 않고 채권자가 임의로 강제집행을 하기로 하는 계약은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민법 제103조에 의하여 무효라고 할 것이다--”라고 하여, 법원은 임의명도계약자체를 무효라고 판단하였다.
결국, 임대차기간이 종료된 이후의 무단점유와 같이 비록 위법한 점유라고 하더라도 이 상태를 시정하기 위한 방법은 법원을 통한 재판과 집행관에 의한 강제집행 등과 같은 사법권력을 통하는 것이 원칙이고, 사적인 집행이나 제재는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하겠다는 판단인 셈이다. 비록 종전에, 상가번영회 등 집합건물 내에서 상가규약 등에 따라 이루어진 단전단수조치에 대해 정당행위로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판례가 있기는 하지만, 이 번 대법원판결은 상가전체의 관리라는 다소 공익적인 목적을 위한 단전단수조치가 아닌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임대인에 의한 제재는 비록 계약과정에서 제재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제재를 당하는 처지인 임차인과 같은 지위에 처한 사람들의 경우 강자의 지위에 있는 상대방에 의해 계약과정에서 부당하게 합의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도 고려된 판단으로 사료된다. -이상-
참고로, 이해를 돕기 위해 2004. 11. 22.자 한경닷컴에 올린 칼럼을 첨부한다.
<재판없는 임의명도, 단전단수조치 적법한가?>
간혹 임대차계약서상에 임차인에 대해서 단전, 단수나 재판없이 임의로 명도(짐을 밖으로 끌어내는 행위)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나, 상가건물 내의 상가번영회회칙이나 주거용 집합건물의 입주자가 관리비를 연체할 경우 단전, 단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보게 된다. 보통 이러한 규정은, 임대차계약이 종료되어서 임차인이 임대차목적물을 명도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임차인이 자진해서 명도하지 않고 있을 때 이를 강제하는 차원에서나, 집합건물 내에서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구분소유자나 점유자들의 의무이행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규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실제 이와 같은 의무불이행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계약서나 규약상에 규정된 위 내용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일은 매우 드문 것이 현실이다. 자칫 형사적인 처벌이 문제되기 때문이다. 즉, 계약서나 규약상에 명백히 기재된 단전단수나 임의명도행위를 실행했을 때, 업무방해나 주거침입 등과 같은 관련 민,형사책임을 면할 수 있는지가 법적으로 애매하기 때문이다.
물론, 만약 이러한 내용의 규정이 계약서나 규약상에 없는 상황이라면, 비록 점유자체가 민사적으로 적법하지 못하고, 관리비 납부의무가 당연히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명도나 관리비청구 재판이라는 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단전, 단수나 임의명도조치를 해버렸을 때, 다른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민사적으로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형사적으로는 주거침입죄, 업무방해죄 등에 해당하게 된다는 점에는 다툼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조항이 당사자간에 합의한 계약서나 집합건물이나 단체의 규약으로 명시된 경우에도, 이러한 조치들이 위법한지에 있다.
현재 판례상으로는, 상가규약에 따른 상가번영회측의 단전조치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사례들이 있지만, 재판없는 임의명도조치에 대한 판단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대법원 1994. 4. 15. 선고 93도2899 판결에 의하면, 어떠한 행위가 정당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인지는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서 합목적, 합리적으로 가려져야 할 것인바, 정당행위를 인정하려면 첫째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상당성, 둘째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셋째 보호이익과 침해이익과의 법익균형성, 넷째 긴급성, 다섯째 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피고인이 시장번영회의 회장으로서 시장번영회에서 제정하여 시행 중인 관리규정을 위반하여 칸막이를 천장에까지 설치한 일부 점포주들에 대하여 단전조치를 하여 위력으로써 그들의 업무를 방해하였다는 공소사실에 대하여, 피고인이 이러한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가 단전 그 자체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위 관리규정에 따라 상품진열 및 시설물 높이를 규제함으로써 시장기능을 확립하기 위하여 적법한 절차를 거쳐 시행한 것이고 그 수단이나 방법에 있어서도 비록 전기의 공급이 현대생활의 기본조건이기는 하나 위 번영회를 운영하기 위한 효과적인 규제수단으로서 회원들의 동의를 얻어 시행되고 있는 관리규정에 따라 전기공급자의 지위에서 그 공급을 거절한 것이므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볼 것이고, 나아가 제반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행위는 법익균형성, 긴급성, 보충성을 갖춘 행위로서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이 있는 것이므로 피고인의 각 행위는 형법 제20조 소정의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피고인에게 무죄를 인정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시장번영회 회장이 이사회의 결의와 시장번영회의 관리규정에 따라서 관리비 체납자의 점포에 대하여 한 단전조치에 대해서도 업무방해죄의 무죄로 선고된 바 있다(대법원 2004. 8. 20. 선고 2003도4732 판결).
한편, 판결없이 계약서나 내부규정에서 정한 임의명도조항을 근거로 한 임의명도조치의 적법성에 대해서는 아직 판례가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위와같은 정당행위의 맥락에서 본다면 임의명도조치에 대해 위법성이 조각되기 위해서는 단전조치보다도 훨씬 엄격한 요건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임의명도조치가 법률적으로 가능해버리면, 명도재판과정을 통해 임차인이 주장할 수 있는 각종 권리(유익비, 필요비, 부속물매수청구권 등)가 급박하고 임의적인 명도집행절차를 통해 사실상 보장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점, 임의명도조치는 주거의 안정성이나 영업활동을 완전히 중단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상당한 제한을 가하는데 그치는 단전단수조치 보다도 훨씬 법익침해가 심각할 수 있다는 점, 명도가 급박할 경우에는 단행가처분과 같은 법적인 절차가 별도로 존재한다는 보충성의 원칙에도 저촉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단전단수조치보다 훨씬 엄격하게 위법성판단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재판없이 임의명도조치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급박한 사정이 존재하고, 임의명도조치에 앞서 수차례 자진명도의 기회를 부여하여야 하는 등 엄격한 요건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결국, 단순히 차임을 몇차례 연체했다거나 자진명도의 기회를 주지 않은 채 단순히 계약서나 규약에 규정을 두고 있다는 이유로 재판없이 임의명도조치를 행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판단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위와 같이 형사적인 무죄 여부와 민사적인 불법행위성립 여부를 동일한 잣대로 판단하기는 곤란하지만, 형사적인 판단은 민사판단에 상당한 영향력을 줄 수 있으므로, 일응은 민사적인 손해배상책임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같은 논리가 유추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한편, 계약서에 규정된 단전단수조치나 재판없는 임의명도조치를 감수하겠다는 취지를 형법 제24조에서 정한 “피해자의 승낙”으로 의율하여 위법성조각사유로 생각해 볼 수 있지만, 형법상 “피해자의 승낙”은 구성요건사실행위(단전 등)가 이루어질 당시까지 “계속”되어져야하는 법률적인 요건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계약서 내용에도 불구하고 대상자가 그러한 조치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피해자의 승낙이라는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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