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선고된 따끈따끈한 판결 하나 소개한다. 대법원 홈페이지에 전국법원 주요판결의 하나로 소개된 부산지방법원 2006. 9. 28. 선고 2005가단57109호 판결이다.

■ 사건개요

원고는 공인중개사인 피고 甲의 중개 하에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는데, 사실 이 임대차계약은 소유자의 아들인 피고 乙이 아버지의 도장과 위임장을 위조ㆍ행사하여 체결된 것이었는데, 공인중개사인 피고 甲은 피고 乙이 아버지의 인감증명서를 제시하지 않았음에도 호적등본에 나타난 부자지간이란 사정에 치우쳐 인감증명서의 제시를 요구하지 않은 채 피고 乙이 알려주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 아버지라는 사람으로부터 위임사실을 확인하였으나, 실제로는 피고 乙이 사전에 그의 장인인 피고 丙에게 미리 부탁해서 아버지를 가장하여 전화통화를 하게 한 것이었다.
이런 경위로 결국 원고는 건물을 임차해서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후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피고 乙의 아버지는 피고 乙을 형사고소까지하고, 아울러 권한이 없는 무권대리를 이유로 원고에게 명도소송을 제기하여 원고가 패소하게 되었다.
이에 원고는 피고 乙, 丙과 함께 중개업자 甲을 상대로 임차보증금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게 되었다.

■ 법원의 판단
- 부동산중개업자와 중개의뢰인과의 법률관계는 민법상의 위임관계와 같으므로 중개업자는 중개의뢰의 본지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의뢰받은 중개업무를 처리하여야 할 의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구 부동산중개업법(2005. 7. 29. 법률 제7638호로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 거래신고에 관한 법률’로 전문개정되기 전의 것) 제16조에 의하여 신의와 성실로써 공정하게 중개행위를 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는바, 같은 법 제17조 제1항은 중개의뢰를 받은 중개업자는 중개물건의 권리관계, 법령의 규정에 의한 거래 또는 이용제한사항 등을 확인하여 중개의뢰인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고 위 권리관계 중에는 중개대상물의 권리자에 관한 사항도 포함되어 있다고 할 것이므로, 타인의 위임을 받은 자로부터 매도, 임대차 등에 관한 중개를 의뢰받은 경우에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와 신의성실로써 중개물에 대한 등기권리증이나 등기부등본은 물론 본인의 인감증명서, 인감도장 등의 확인을 통하여 위임관계를 조사확인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부동산중개업자인 피고 甲은, 피고 乙에게 그의 아버지의 인감증명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여 피고 乙이 제시하는 아버지의 위임장 및 도장의 진위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게을리한 채 호적등본에 나타난 부자(父子)지간이라는 사실에 치중한 나머지 아버지의 대리인임을 자처한 피고 乙의 말만 믿고 피고 乙이 알려주는 대로 확실치도 않은 전화를 통한 방법으로 위임사실을 조사하여 임대차를 중개한 과실로 중개의뢰인인 원고에게 위 임차보증금 상당의 손해를 입혔으므로 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물론, 계약당사자인 원고의 과실도 30% 참작).

■ 보다 철저한 위임권한 확인이 필요하다

부동산거래에서 거래당사자 본인이 나오지 않고 대리인이 참석할 때는 위임권한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기본적인 사항이다. 대리인이 거래당사자 본인과 가까운 가족관계(배우자, 자녀 등)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대리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거래당사자 본인과 가까운 가족관계라고 하더라도, 소소한 일상적인 업무가 아니라 부동산거래와 같은 중요한 업무에 있어서는 가족관계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대리권이 응당 존재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위 사건에서처럼 여러명이 작당해서 거래당사자 본인의 위임사실을 가장할 수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본인이라고 하는 사람과 직접 대면해서 신원확인을 하는 등의 방법이 아니라 전화통화를 하는 어설픈 확인만으로는 안전한 거래를 위해서 매우 부족할 수 있다. 실제로도, 부동산위조사기꾼들이 서로 작당해서, 그 중 한 사람은 대리인 행세를 하고, 다른 사람은 소유명의자 본인행세를 하면서, 부동산등기 소유명의자의 주소와 전화국번을 함께하는 인근 동네의 여관에 거처하면서, 혹시나 걸려올지도 모를 확인전화에 대비하는 등 치밀한 범죄를 도모한 사례도 있었다.

이런 사고를 업무상 자주 보게 되는 필자로서는, 대리인이라는 사람이 본인을 대신해서 거래를 할 때는, 계약체결할 때 위임관계서류확인을 철저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거래가 완결되기 이전에 가급적 당사자본인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 안전한 부동산거래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의 부동산거래질서가 워낙 어지러운데다가, 부동산거래는 금액이 적지않다는 점에서 만의하나 사고가 발생하면 돌이킬 수 없는 큰 손해를 입을 수 있어 매우 신중한 자세가 요망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가족관계에 있는 사람이 대리인으로 참석하는 경우에 대리권확인을 매우 소흘히하는 것이 우리의 거래실정이다. 더구나, 거래를 직업적으로 하는 부동산중개업자 중에서도 철저한 직업인으로서의 프로의식없이 ‘별일 없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중개업무를 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어떤 중개업자의 경우에는, 대리권확인을 철저히 해 주기를 요구하는 중개의뢰인(주로, 권리를 취득하는 측)에 대해 ‘너무 지나치다’는 식으로 오히려 면박을 주는 경우도 있다. 중개업자가 이런 식의 자세를 보이면, 상대방 거래당사자는 더욱 당당하게 대리권확인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에서, 대리권을 제대로 확인해주지 못하는 측이 아니라 반대로 정당하게 대리권확인을 요구하는 측이 무안해지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부동산중개업자는 거래흥정을 해서 계약체결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부동산거래의 전문직업인으로서 ‘중개서비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고객에게 거래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해야 하고, 거래과정에서 고객이 불안하거나 불편한 점이 없도록 할 필요가 있다. 잘못된 중개서비스로 적지않은 재산을 잃고 실의에 빠지게 되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지금처럼 무성의한 중개업자의 업무처리는 분명 법적으로 잘못된 것은 물론, 매우 비양심적인 행위일 수도 있다.
좀더 성의있는 업무처리를 중개업자에게 당부하고 싶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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