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국 칼럼] 이가 빠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자연현상은 여기저기 이상 징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늘어만 가는 것이 하나 있다. 약봉지 이다. 물론 씽씽한 사람도 있다. 목회를 한지도 수십 년이 흘렀고, 연륜도 제법 들기도 하였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야 하고 여기저기 약함으로 인한 ‘아이고 허리야’ 하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튀어 나오기도 한다. 가끔은 한창때의 젊음이 부럽기도 하고, 펄펄 날아다니는 청장년층을 보노라면 언제 저런 때가 있었는가 하는 씁쓰레함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나이 듦이 또 다른 무엇인가를 가져다주곤 한다. 일테면 이런저런 경험과 일을 만나도, 격어 보았으니 조금은 느긋해지고 그렇게 아등바등하지 않고, 마음을 내려놓고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 세상 모든 것은 무엇인가를 얻은 것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잃은 것도 있게 마련이다. 나이 듦으로 인한 잃은 것이 있다면 얻은 것도 있게 마련이다. 늘어만 가는 약봉지가 건강을 조심하게 되고 항상 건강체크를 하게 만든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천성적으로 이가 튼튼한 사람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것 중 하나는 이가 빠진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이가 빠지면 틀니, 임플란트를 한다. 그래서 음식을 먹는데 큰 어려움이 없기도 하다. 필자도 임플란트를 4개나 했다. 이가 빠져 있을 때는 발음도 왠지 세어나가는 기분이고, 무엇인가를 먹으면 불편하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선비들의 글을 종종 읽었다. 한문이 일천해도 요즘은 번역문이 많다. 그래서 큰 어려움이 없이 다양한 글을 볼 수 있다. 김창흡(1653-1722)의 ‘이가 빠지다’라는 글을 읽었다. “이가 나를 일깨워 준 것이 많은 셈이다. 주자는 눈이 멀어 존양(存養)에 전념하게 되자 도리어 진작 눈이 멀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렇게 말한다면 내 이가 빠진 것 또한 너무 늦었다. 형체가 일그러지니 고요함에 나아갈 수가 있고 말이 헛 나오니 침묵을 지킬 수가 있다. 살코기를 잘 씹을 수 없으니 담백한 것을 먹을 수가 있고, 경전 외는 것이 매끄럽지 못하고 보니 마음을 살필 수가 있다. 고요함에 나아가면 정신이 편안해지고 침묵을 지키면 허물이 줄어든다. 담백한 것을 먹으면 복이 온전하고 마음을 살피면 도가 모인다. 그 손익을 따져 보면 얻는 것이 훨씬 더 많지 않겠는가? 대개 늙음을 잊은 자는 망령되고 늙음을 탄식하는 자는 천하다. 망령되지도 천하지도 않아야 늙음을 편안히 여기는 것이다. 편안히 여긴다는 말은 쉬면서 자적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산문선5』에 나온다. 김창흡은 형 김창협과 함께 당대의 문장가였다. 그가 66세 즈음에 이가 빠진 것으로 인해 얻은 것이 있다고 함을 설명하는 글이다. 오늘처럼 임플란트도 할 수 없는 시대였으니 온몸으로 불편함과 고통을 고스란히 겪었으리라 본다. 그런 형편이지만 얻은 것이 있다고 하니, 모자람은 모자람으로 끝나지 않는가보다. 무슨 말인가? 분명 이가 빠져 잘 먹지 못함은 모자람 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모자람은 또 다른 나에게 무엇인가를 가져다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모자람 때문에 얻게 되는 적지 않은 위안이라는 것이다.

모든 목회자들의 로망은 무엇일까? 아마도 교회부흥일 것이다. 그러나 목회를 오래했지만 목회만큼 마음먹은 대로, 생각대로, 열심히 노력하는 만큼,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백한다. 목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밖에 표현 할 수 없다고. 목회현장이 녹록하지 않다. 주변을 돌아보면 여유가 있고 넉넉해서 큰 걱정 없이 목회를 하는 목회자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이런저런 작다는 것, 모자람으로 인해 마음고생하며 어려움 중에 있는 목회자도 많다. 그러나 모자람 때문에 내면적인 영적생활에 매진할 수 있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 않으니 책을 가까이 하고 즐길 수 있어 좋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이것이 모자람이 가져다주는 위안이 아닐까? 오래전 인상 깊게 읽었던 책 『모자람의 위안』 은 맞는 말 같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고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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