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변하면 자연은 새 옷을 갈아입는다. 사람도 환경이 변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입장이다.  사진=구건서
계절이 변하면 자연은 새 옷을 갈아입는다. 사람도 환경이 변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입장이다. 사진=구건서
무주택자가 아파트에 당첨되기 위해서는 ‘주택청약통장’을 만들어서 일정 기간 납입해야 점수에 의해서 기회가 주어진다. 마찬가지로 행복하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하려면 적어도 5개의 통장을 미리 만들어야 한다. 건강통장, 소득(연금)통장, 관계통장, 재미통장, 의미통장이 그것이다. 즉, 나이 들어서는 일단 건강해야 하고, 필요한 만큼의 돈도 있어야 하고, 가족과 친구 등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신나고 재미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고,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로 ‘건강통장’은 젊을 때부터 많이 관리하지 않으면 잔고가 쌓이지 않는다. 특히 건강에 나쁜 생활습관을 오랫동안 지속해왔다면 나중에 찾아 쓸 없다는 게 건강통장의 특징이다. 건강은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복합체이며, 서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먼저 균형 잡힌 식생활과 적절한 운동을 통해서 육체적인 건강의 잔고를 쌓아두어야 한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줄이고 긍정적인 생각과 질 높은 수면을 통해서 정신적인 건강의 잔고도 잘 관리해야 한다. 가능하면 노화의 속도를 늦추는 생활습관을 통해서 자연적인 노화가 이루어지도록 관리한다면, 건강통장의 잔고는 100세까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소득통장 또는 연금통장’도 젊은 시절부터 잘 관리하지 않으면 노후에 꺼내 쓸 잔액이 부족하게 된다. 소득통장은 자산소득과 노동소득의 2가지 파이프라인(pipeline)을 잘 정비해 놓아야 나이 들어서도 지속적인 소득이 발생하게 된다. 만약 자산소득이나 노동소득이 어렵다면 연금소득이라도 잘 나오는 통장을 만들어놔야 한다. 일반 직장인의 경우 연금소득은 ‘3층 구조’가 보통인데, 1층은 국민연금, 2층은 퇴직연금, 3층은 개인연금이다. 월급을 받는 직장인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이 강제되고 개인연금은 본인의 선택사항이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만으로는 노후생활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니 별도로 개인연금을 만들어서 관리해야 노후 생활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된다. 이러한 3층 연금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국가에서 주는 ‘기초연금’으로 생활하게 되는데 그 금액이 적어서 노후에 인간다운 생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나이 들어서도 임대료, 사업소득, 이자소득 등 자산소득이 발생하는 통장을 갖고 있다면 더욱 든든하다. 또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면 노후에도 노동소득이 발생하므로 더 여유 있는 생활이 가능해진다.

셋째로 ‘관계통장’도 젊을 때부터 잔고를 많이 쌓아두지 않으면 노후에 인출할 것이 없게 된다. 말의 유희지만 ‘노후’에 필요한 것은 ‘know who(노후)’라고 하는데, 누구를 알고 지내냐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우리는 나와의 관계, 가족관계, 친구관계, 직장에서의 관계, 거래처와의 관계, 이웃관계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막상 주된 일자리에서 은퇴를 하게 되면 남는 통장은 나와의 관계, 가족관계, 친구관계로 좁혀진다. 평소에 나 자신과 대화하지 않았거나, 가족관계에 소홀했거나 친구관계에 시간과 관심을 투자하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잔액이 모두 소진되어 관계통장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가 될 수도 있다. 혼자 외롭게 노후를 보내다가 ‘고독사’ 당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나, 가족, 친구, 이웃 등 가까운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주변 사람들을 도와주며, 함께 어울리는 방법을 통해서 관계통장의 잔고를 늘려나가야 한다. 관계통장에서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원칙은 바로 ‘give and give(주고 또 주고)’ 또는 give and take(주고 받고)’의 생활방식이다.

넷째로 ‘재미통장’은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많이 시도해 보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스스로 즐기거나, 동호회에 가입해서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좋다. 이러한 재미통장 역시 젊은 시절부터 배우고 익혀서 잔고를 늘려놔야 나이 들어서도 즐길 수 있다. 늦게 배우는 것은 힘들기도 하고, 잘 늘지 않아서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많다. 또 ‘이 나이에 뭘 배운다고 난리야?’라는 비난의 눈초리에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배짱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재수 없으면 100살까지 사는 세상에서 나이 50~60은 이제 겨우 여름을 지난 초가을이기 때문이다. 노래, 악기, 춤, 외국어, 등산, 낚시, 자전거, 당구, 탁구, 골프, 요가, 명상, 붓글씨, 시 낭송 등을 취미로 배우기도 하고, 더 나아가 젊을 때 못한 공부를 위해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해서 박사학위까지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다섯째로 ‘의미통장’은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국가적인 것이든 무언가 의미 있는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해외에 봉사활동을 나가거나, 반드시 해외가 아니라도 국내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반드시 몸으로 하는 봉사활동만 의미하지 않고 기부를 통해서도 의미 있는 노후생활이 가능하다. 필자가 아는 외국계 회사의 대표는 정년퇴직하면서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자원봉사를 나가는데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돈을 받지 않고 하는 자원봉사이니 맘도 편하고 몸을 움직이면서 자신의 건강도 챙길 수 있으니 의미통장의 잔고는 계속 늘어만 가는 것이다.

이렇게 5개의 통장은 젊은 시절부터 관리를 해야 노후에도 잔고가 남아있게 된다. 지금 당장 내 건강통장, 소득통장, 관계통장, 재미통장, 의미통장의 잔고가 얼마나 되는지 점검해 보자. 그리고 부족한 통장의 잔고를 늘리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보자.

<한경닷컴 The Lifeist> 구건서 심심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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