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힘, 박시교
[한시공방(漢詩工房)] 힘, 박시교
[원시]



박시교


꽃 같은 시절이야 누구나 가진 추억

그러나 내게는 상처도 보석이다

살면서 부대끼고 베인 아픈 흉터 몇 개

밑줄 쳐 새겨 둔 듯한 어제의 그 흔적들이

어쩌면 오늘을 사는 힘인지도 모른다

몇 군데 옹이를 박은 소나무의 푸름처럼


[태헌의 한역]
()

花樣年華好追憶(화양연화호추억)
於我傷處亦寶石(어아상처역보석)
生來受苦傷痕歷歷(생래수고상흔역력)
刻如橫線昨日跡(각여횡선작일적)
或於今日爲動力(혹어금일위동력)
恰如松樹帶瘤長碧(흡여송수대류장벽)

[주석]
() : .
花樣年華(화양연화) : 꽃과 같은 시절이라는 뜻으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이르는 말이다. ‘花樣은 꽃무늬, 곧 꽃과 같이 예쁜 모습이라는 뜻이고, ‘年華는 세월, 곧 시절이라는 의미이다. / 好追憶(호추억) : 좋은 추억, 곧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뜻으로 역자가 사용한 말이다.
於我(어아) : 나에게는. / 傷處(상처) : 상처. / () : 또한, 역시. / 寶石(보석) : 보석.
生來受苦(생래수고) : 살아오며 고난을 받다. 원시의 살면서 부대끼고 베인을 다소 간략하게 표현한 말이다. / 傷痕(상흔) : 상흔, 아픈 흉터. / 歷歷(역력) : 또렷하다. 원시의 몇 개를 아래 행의 새겨 둔 듯한을 고려하여 다소 과감하게 서술형으로 고쳐본 표현이다.
刻如(각여) : 새겨진 것이 ~과 같다. 원시의 새겨 둔 듯한을 약간 달리 표현한 말이다. / 橫線(횡선) : 가로로 그은 줄, 언더라인. 역자가 밑줄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말이다. / 昨日跡(작일적) : 어제의 자취, 어제의 흔적.
() : 어쩌면, 아마도. / 於今日(어금일) : 오늘에 있어, 오늘에. 원시의 오늘을 사는을 간략하게 표현한 말이다. / 爲動力(위동력) : 동력이 되다.
恰如(흡여) : 마치 ~처럼, 마치 ~와 같다. / 松樹(송수) : 소나무. / 帶瘤(대류) : 혹을 달다. ‘를 옹이의 뜻으로 사용하였다. / 長碧(장벽) : 길이 푸르다, 언제나 푸르다.

[한역의 직역]


꽃 같은 시절이야 좋은 추억
내게는 상처 또한 보석이다
살아오며 고난 받아 아픈 흉터 또렷
밑줄처럼 새겨진 어제의 흔적들이
어쩌면 오늘에 동력이 될지 모른다
흡사 소나무가 옹이 달고 길이 푸른 것처럼

[한역 노트]
누구나 웃으면서 세상을 살면서도 / 말 못할 사연 숨기고 살아도 / 나 역시 그런저런 슬픔을 간직하고 / 당신 앞에 멍하니 서있네” - 한때 널리 유행하였던 대중가요인 <남자라는 이유로>의 노랫말 일부이다. 개인적으로 멍하니라는 말이 다소 아쉽게 여겨지기는 하여도, 오늘 소개하는 이 시에 잘 어울리는 노래임에는 틀림없을 듯하다. “말 못할 사연그런저런 슬픔이 시에서 얘기한 상처흉터같은 것이라면, 웃으면서 세상을 사는 것은 소나무가 옹이를 달고서도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는 것에 비견될 만하다. 소나무인들 어찌 사연과 슬픔이 없겠는가! 우리에게 말 못할 사연그런저런 슬픔이 있다 하여 미소를 잃어버리고 찌푸린 얼굴로 누군가를 마주한다면, 그 세상이 바로 지옥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오늘 역자가 소개한 이 시는, 우리더러 세상을 지옥이 아닌 천국으로 만들며 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시로도 볼 수 있겠다.

화양연화”..... 꽃 같은, 어리거나 젊은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었다. 그 시절이 비록 영화(映畵)와 같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돌아보면 그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였음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사춘기를 겪고 공부에 치여야 했던 그 눈물 많았던 질풍노도기를 지나 이제는 어른이 되었을 독자들의 기억 속에 이 시절보다 더 아름다운 시절이 또 있기도 하였을까?

세상에 던져진 존재인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상처이다. 그리고 이 상처는 어떤 형태로든 흉터를 남긴다. “살면서 부대끼고 베인 아픈 흉터가 반드시 꽃 같은 시절언저리의 상처만을 의미하지는 않겠지만, 시인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은 젊은 날의 상처는 대개 연애에서의 좌절 같은 데서 빚어졌을 공산이 크다. 마음이 아려서 죽을 것만 같았던 그 때에 상처가 훗날 보석이 되리라는 것은 꿈에서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임시에 누군가가 상처조차 먼 훗날에는 보석이 될 거라고 들려주었대도 말이다. 지나고 보니 그런 상처조차 보석이 되더라는 것이 어찌 공연한 말이겠는가! 그러므로 이 시에서의 내게는우리에게는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런저런 상처를 그저 아픔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상처조차 소중한 경험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상처를 감추거나 부정하려고 애쓰지 않고 그 상처를 하나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면, 상처는 종국에 보석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되돌아가서 바꿀 수 없는 과거를 아파하며 회한 속에서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상처를 하나의 추억으로 여기고 그 상처의 흔적을 추억이 남긴 선물로 여길 수 있다면, 상처의 흔적은 미래를 향한 하나의 동기부여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옹이를 달고도 씩씩하게 푸른 저 소나무처럼, 상처의 흔적을 간직하고서도 웃으면서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인생은 충분히 아름다울 것이다. 어찌 화양연화만이 빛나는 것이겠는가!

오늘을 사는 힘은 내일을 만들어가는 에너지가 된다. 오늘의 내일은 다시 내일의 오늘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시의 제목이자 주제가 되는 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역자는 상처조차 보석으로 여기는 긍정(肯定)’에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긍정을 하지 못한다면 괴로울 수밖에 없고, 괴로움 속에서는 제대로 힘을 낼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자가 아는 영국 속담 가운데 영광은 덕의 그늘[Glory is the shadow of virtue.]”이라는 말이 있는데, 역자에게는 긍정 또한 그 덕의 하나로 간주된다. 덕은 곧 힘이 아니겠는가!

역자가 오늘 소개한 이 시는 기실 두 수로 구성된 시조(時調)이지만, 시인이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6행으로 구성한 것이라고 한다. 역자는 시인의 의도를 존중하여 한역 과정에서 시조 한 수당 한역시 3()가 되게 하였으며, 시조의 각 종장(終章)은 다시 팔언(八言)으로 조정하였다. 한역시는 매구마다 압운하여 한 편의 시처럼 보이게 하였으며, 그 압운자는 ()’()’()’()’()’()’이다.

2023. 3. 14.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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