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적응해야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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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초등학교 6학년 때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했다. 마당에 심을 나무를 캐러 간다고 아버지가 따라나서라고 했다. 인부 둘과 트럭을 타고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지금은 무릉도원면) 아버지가 경영하던 채석공장 뒷산으로 갔다. 임도(林道)를 따라 한참 올라가서야 트럭이 멈췄다. 저 나무다 싶을 정도로 운치 있는 소나무였다. 벼랑에 매달리듯 누운 와송(瓦松)이었다. 길을 반쯤은 가리며 길손을 반기듯 산을 지키던 소나무는 반나절은 걸려 산채(山採)해 우리집에 왔다.
소나무는 바로 심지 않았다. 대문 안쪽 마당 끝에 미리 파놓은 구덩이 옆에 놔뒀다. 아버지는 하루 몇 번씩이나 아이 엉덩이처럼 밑동을 싼 가마니를 두들겨줬다. 때로는 목을 축일 수 있게 물을 조금씩 흘려주며 어루만져주기도 했다. 며칠 지나 머리카락 다듬듯 솔을 쓰다듬던 아버지는 인부들을 불러 비로소 심었다. 식혈(植穴) 속에 앉힌 뿌리분과 그 주위에 채워진 새로운 흙이 잘 밀착되도록 반나절이나 걸쳐 심었다. 내가 양조장에서 받아온 막걸리 한 통을 다 비우고서야 소나무는 이튿날 번듯하게 살아났다.
아버지는 “소나무를 옮겨심을 땐 뿌리를 가마니로 싸서 묶어뒀다가 아픈 기운이 좀 없어지면 옮겨 심어야 한다”고 내 궁금증을 풀어줬다. 이어 “대문 앞에 큰 나무는 한자로 표현하면 ‘한가할 한(閑)’으로 가난하다. 현관 앞의 큰 나무는 ‘곤란할 곤(困)’으로 곤란하고 어려운 일이 생긴다고 해 피한다”다고도 했다. 우리집 소나무는 대문 들어오는 다리를 반쯤은 가려 마치 손님을 반기는 환영수(歡迎樹)가 됐다. 허리를 굽힌 소나무는 눈비를 대신 맞아주기도 했고 뙤약볕을 가려주기도 했다. 아버지는 소나무가 “늘 푸른 솔 눈으로 집 안팎을 경계하는 우리집 보호수다”라고 했다.
중학교 입학하고 며칠 안 돼 결석했다. 온몸에 열이 끓어오르자 안절부절못한 어머니가 학교 가지 말라고 했다. 밖에 나갔다 들어온 아버지는 방안에 누워 있는 나를 보자 큰소리를 내 웃었다. 어머니의 핀잔을 아랑곳하지 않은 아버지는 “이제 적응했구나. 적응해야 살아남는다”라며 내 머리를 만져보고는 “낼부터는 괜찮아질 거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버지는 “환경이 바뀌면 몸이 먼저 알아서 몸살이 난다. 환경 변화로 생긴 스트레스가 면역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당신이 의사예요?”라는 어머니의 역정을 아버지는 긴 보충설명으로 받아냈다. “새 환경에 대한 불안감,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 공부 부담, 수면 부족, 불규칙한 식습관이 원인이다. 이런 요인들이 혈압, 심박 수, 호흡 등을 증가시키고, 소화 기능을 저하해 면역력을 떨어뜨린 거다. 새 환경에 적응하려고 몸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게 되고, 그래서 체온이 떨어져 몸살이 난 거다”라고 했다. 아버지 예견처럼 이튿날 아침 깨어나 가뿐하게 학교에 갔다.
학교 갔다 오자 아버지가 불러 말씀 중에 인용한 고사성어가 ‘마중지봉(麻中之蓬)’이다. ‘삼밭의 쑥’이란 말이다. ‘순자(荀子) 권학(勸學)’ 편에 나온다. 하찮은 쑥도 삼과 함께 있으면 삼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도 어진 이와 함께 있으면 어질게 되고 악한 사람과 있으면 악하게 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서쪽 지방에 나무가 있으니, 이름은 사간(射干)이다. 줄기 길이가 네 치밖에 안 되지만 높은 산꼭대기에서 자라 백 길의 깊은 연못을 내려다본다. 쑥이 삼밭에서 자라면 붙들어 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고, 흰 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면 함께 검어진다[蓬生麻中 不扶而直 白沙在涅 與之俱黑]. (중략) 이런 까닭에 군자는 거처를 정할 때 반드시 마을을 가리고(擇), 교유(交遊)할 때는 반드시 곧은 선비와 어울린다. 사악함과 치우침을 막아서 중정(中正)에 가까이 가기 위함이다.”
아버지는 “도태(淘汰)는 물건을 물에 넣고 일어서 좋은 것만 골라내고 불필요한 것을 가려서 버리는 것을 말한다. 여럿 중에 부적당한 것을 줄여 없애는 일이다. 도공이 숱한 도자기를 구운 뒤 완벽한 하나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깨버리는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바로 도태되지 않고 스스로 적응해낸 일이 고맙다”면서 “몸살을 앓은 게 네가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다. 내 우려를 씻어줬다”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하지만 적응력을 높이는 방법을 익히면 새로운 환경에서도 편안하게 적응할 수 있다”고 한 아버지는 긍정적인 태도를 최고의 인성으로 꼽았다. 긍정심은 마음가짐에서 나온다며 중요하다고 몇 번 강조했다.
특히 아버지는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익숙했던 환경을 새로운 환경에서 찾아내 안정적으로 적응하는 방법이 좋다. 새 환경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고 적응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라며 소나무 이식할 때 잔뿌리를 꺾이지 않게 세세하게 펴서 전에 있던 흙과 옮겨심은 흙을 밀착하게 해주는 게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덧붙이며 착념하라고 일러줬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소나무는 바로 심지 않았다. 대문 안쪽 마당 끝에 미리 파놓은 구덩이 옆에 놔뒀다. 아버지는 하루 몇 번씩이나 아이 엉덩이처럼 밑동을 싼 가마니를 두들겨줬다. 때로는 목을 축일 수 있게 물을 조금씩 흘려주며 어루만져주기도 했다. 며칠 지나 머리카락 다듬듯 솔을 쓰다듬던 아버지는 인부들을 불러 비로소 심었다. 식혈(植穴) 속에 앉힌 뿌리분과 그 주위에 채워진 새로운 흙이 잘 밀착되도록 반나절이나 걸쳐 심었다. 내가 양조장에서 받아온 막걸리 한 통을 다 비우고서야 소나무는 이튿날 번듯하게 살아났다.
아버지는 “소나무를 옮겨심을 땐 뿌리를 가마니로 싸서 묶어뒀다가 아픈 기운이 좀 없어지면 옮겨 심어야 한다”고 내 궁금증을 풀어줬다. 이어 “대문 앞에 큰 나무는 한자로 표현하면 ‘한가할 한(閑)’으로 가난하다. 현관 앞의 큰 나무는 ‘곤란할 곤(困)’으로 곤란하고 어려운 일이 생긴다고 해 피한다”다고도 했다. 우리집 소나무는 대문 들어오는 다리를 반쯤은 가려 마치 손님을 반기는 환영수(歡迎樹)가 됐다. 허리를 굽힌 소나무는 눈비를 대신 맞아주기도 했고 뙤약볕을 가려주기도 했다. 아버지는 소나무가 “늘 푸른 솔 눈으로 집 안팎을 경계하는 우리집 보호수다”라고 했다.
중학교 입학하고 며칠 안 돼 결석했다. 온몸에 열이 끓어오르자 안절부절못한 어머니가 학교 가지 말라고 했다. 밖에 나갔다 들어온 아버지는 방안에 누워 있는 나를 보자 큰소리를 내 웃었다. 어머니의 핀잔을 아랑곳하지 않은 아버지는 “이제 적응했구나. 적응해야 살아남는다”라며 내 머리를 만져보고는 “낼부터는 괜찮아질 거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버지는 “환경이 바뀌면 몸이 먼저 알아서 몸살이 난다. 환경 변화로 생긴 스트레스가 면역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당신이 의사예요?”라는 어머니의 역정을 아버지는 긴 보충설명으로 받아냈다. “새 환경에 대한 불안감,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 공부 부담, 수면 부족, 불규칙한 식습관이 원인이다. 이런 요인들이 혈압, 심박 수, 호흡 등을 증가시키고, 소화 기능을 저하해 면역력을 떨어뜨린 거다. 새 환경에 적응하려고 몸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게 되고, 그래서 체온이 떨어져 몸살이 난 거다”라고 했다. 아버지 예견처럼 이튿날 아침 깨어나 가뿐하게 학교에 갔다.
학교 갔다 오자 아버지가 불러 말씀 중에 인용한 고사성어가 ‘마중지봉(麻中之蓬)’이다. ‘삼밭의 쑥’이란 말이다. ‘순자(荀子) 권학(勸學)’ 편에 나온다. 하찮은 쑥도 삼과 함께 있으면 삼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도 어진 이와 함께 있으면 어질게 되고 악한 사람과 있으면 악하게 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서쪽 지방에 나무가 있으니, 이름은 사간(射干)이다. 줄기 길이가 네 치밖에 안 되지만 높은 산꼭대기에서 자라 백 길의 깊은 연못을 내려다본다. 쑥이 삼밭에서 자라면 붙들어 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고, 흰 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면 함께 검어진다[蓬生麻中 不扶而直 白沙在涅 與之俱黑]. (중략) 이런 까닭에 군자는 거처를 정할 때 반드시 마을을 가리고(擇), 교유(交遊)할 때는 반드시 곧은 선비와 어울린다. 사악함과 치우침을 막아서 중정(中正)에 가까이 가기 위함이다.”
아버지는 “도태(淘汰)는 물건을 물에 넣고 일어서 좋은 것만 골라내고 불필요한 것을 가려서 버리는 것을 말한다. 여럿 중에 부적당한 것을 줄여 없애는 일이다. 도공이 숱한 도자기를 구운 뒤 완벽한 하나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깨버리는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바로 도태되지 않고 스스로 적응해낸 일이 고맙다”면서 “몸살을 앓은 게 네가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다. 내 우려를 씻어줬다”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하지만 적응력을 높이는 방법을 익히면 새로운 환경에서도 편안하게 적응할 수 있다”고 한 아버지는 긍정적인 태도를 최고의 인성으로 꼽았다. 긍정심은 마음가짐에서 나온다며 중요하다고 몇 번 강조했다.
특히 아버지는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익숙했던 환경을 새로운 환경에서 찾아내 안정적으로 적응하는 방법이 좋다. 새 환경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고 적응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라며 소나무 이식할 때 잔뿌리를 꺾이지 않게 세세하게 펴서 전에 있던 흙과 옮겨심은 흙을 밀착하게 해주는 게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덧붙이며 착념하라고 일러줬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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