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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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행동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 ‘월급 루팡’, ‘난 받는 만큼 일해’라는 말을 주고 받는다. 어려운 여건에서 창업하여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인 CEO가 듣는다면 억장 무너지는 소리이다. 편함을 추구하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본인 아니겠는가? 스스로 부끄럽지 않고 ‘일하는 척’ 하는 것에 맛 들린 직장인이 변하길 기다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A대리는 항상 8시59분에 출근한다. 회사는 유연근무제이기 때문에 대부분 이 시간에 출근해 있지만, 아직 출근 전인 직원도 있다. 어느 날부터 아침 인사가 사라졌다. 그냥 자리에 앉아 대부분 PC를 켠다. 메일을 보고, 하루 할 일을 살피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점심시간이다. 사내 식당이 없기 때문에 삼삼오오 점심을 먹으러 간다. A대리는 어울리는 것도 싫고 밖에 나가는 것도 귀찮아 그냥 수면을 취한다. 처음에는 몇몇 동료들이 “점심 안해?” 하며 물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A대리의 수면을 방해하는 사람이 없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주어진 일을 하지만, 개선하거나 도전하는 일은 없다.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내 새로운 가치를 높이는 일은 생각도 없다. 3시가 넘으면 배도 고프고 졸리다. 직원 휴게실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옥상에 올라가 바깥 공기를 접하고 들어온다. 6시가 되면 PC를 끄고, 정확하게 6시 2분 퇴근한다. 퇴근할 때 역시 인사가 없다.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된다.
팀장이 부른다. 자신의 직무가 아닌 과제를 지시한다. “이걸 제가 왜 해요? 제 직무 범위가 아닙니다” 하며 단호하게 거절한다. 팀장은 어이없는 모습으로 B과장을 부른다. 요즘 A대리는 바쁜 일이 없다. 아무도 A대리가 무엇을 하는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대부분 출근해 말 한마디도 안하고 퇴근한다.

누구의 눈치를 볼 것인가?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정도에 맞지 않는 일이라면, 누구의 눈치를 봐야 하는가?
제조업인 A회사는 주인 없는 회사이다. CEO와 공장장은 철학과 일하는 방식이 다른 상대 진영의 양 수장이다. 입사하여 줄곧 이 회사에서 근무했던 공장장과 작년에 외부에서 영입된 CEO의 갈등은 갈수록 심해진다. 공장장은 CEO가 하나에서 열까지 회사와 직원을 위한 의사결정이 아닌 자신을 위한 결정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대로 가면 회사가 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울화가 치민다. 회사의 최대 거래처인 A그룹의 실사가 다음 주 예정되어 있다. 제조 물량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A그룹의 실사에서 조금이라도 안 좋은 평가를 받으면 회사는 위태롭다. CEO는 전 팀장과 임원을 모아 실사에 한 마음, 한 몸이 돼 좋은 평가를 받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강조했다. 공장장은 생산팀 C조장을 불러 은밀하게 부탁한다. 실사 기간 중 2차례만 제품 배합 비율을 낮춰 불량을 발생시키라고 한다. C조장은 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자신을 채용해줬고, 관심 가져주며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준 공장장 요청을 거절하기가 곤란하다. 제품 배합 비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함께 일하는 2명의 조원과 동시에 작업을 해야 한다. 2차례의 제품 배합 비율 조정이 회사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지만, 실사 기간이기 때문에 불량이 미치는 파장이 크다는 것을 C조장도 알고 있다. 또한, CEO가 되려는 공장장의 속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고민이 많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공장장에게는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자신을 형처럼 믿고 궂은 일을 다하는 2명의 동생 같은 조원들이 생각난다. 한 명은 다음 달 결혼하는데, 이 일로 인해 불이익을 받거나, 회사가 어려워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고민이다. 평소라면 사소한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실사 기간에는 중대한 일인 이 일을 하는 것이 옳은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C조장은 생산팀장에게 사실을 이야기하고, 공장장에게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상사의 눈치보다 함께 현장에서 동고동락하고 있는 동료인 조원의 눈치가 더 무서웠다.

눈치를 보지 않는 문화의 구축

식당이나 사무실 바닥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사무실이나 공장에 기어 다니는 벌레나 개구리 한 마리가 들어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화장실 세면대 주위에 물이 흥건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냥 먼저 본 사람이 처리하면 되지 않겠는가?
회사에 ‘먼저 본 사람이 먼저 행한다’는 기준이 있다면, 직책이나 나이에 무관하게 먼저 본 사람이 조치하면 된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 회사와 임직원에게 도움과 이익이 되는 정당한 일이라면 하면 된다.
반대의 경우, 실행하지 않으면 된다. 지시를 받으면, 우리가 지향하는 원칙이나 가치에 어긋나는 행동이기 때문에 이 일은 당연히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말하면 된다.
무엇인가 부끄러운 행동을 요청 받았을 때, 상사 뿐 아니라 주변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을 바라보는 동료의 실망하는 모습에 멈춰야 한다.

어떻게 이런 문화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이끌어가는가?
첫째, 회사의 가치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인 미션, 추구하는 목표인 비전, 그리고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기준이 되는 행동인 핵심가치를 정하는 일이다.
둘째, 이러한 가치 체계를 전 조직과 구성원에게 내재화하는 일이다. 교육으로는 부족하다. 외우도록 지속적으로 외치며 강조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승진 등 중요한 제도와 연계시켜야 한다.
셋째, 업무를 하면서 체질화하는 일이다. 사례와 실천인 선정 등을 통해 부단히 홍보하고, CEO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 걸림돌이나 방해 요인을 과감하게 걷어내야 한다. 월별 점검과 피드백을 통해 잘하는 조직과 직원은 인정과 칭찬을 하고, 못하는 조직과 직원은 개선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냥 하게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모든 조직과 임직원의 한 마음 정렬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기를 버리고 ‘우리는 하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인내의 결과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석환 대표(홍석환의 HR전략 컨설팅, no1gs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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