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흥섭 칼럼] 夜花로 피어난 눈꽃, 국립발레단 '호두까기인형'
올해를 며칠 남겨 두고 있지 않은 12월의 중순, 어둠이 내려앉은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벽면에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여러 공연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그 길 아래로 걸어가는 그녀들의 웃음소리는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춘다. 마치 보름달처럼...
일찍 도착해 오페라 극장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트리 포토존에서 추억도 남기고, 간단하게 식사도 하면서 관람 시간까지 여유롭게 기다렸다.
[심흥섭 칼럼] 夜花로 피어난 눈꽃, 국립발레단 '호두까기인형'
평일임에도 연말을 뜻있게 보내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좌석은 거의 만석이었다. 공연 시간은 1막(50분)과 2막(50분)으로 구성됐으며, 인터벌은 20분이다.
필자가 관람한 날의 출연진은 마리 정은지(이화여대 무용과 졸업, 국립발레단 입단, 2016 베를린 국제무용쿵쿠르 1위), 왕자 이재우(한국예종 무용원 졸업, 국립발레단 입단, 러시아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남성 무용수상 도미네이트), 드로셀마이어 송정빈, 호두까기인형 김은호, 어린 마리 박혜은이다.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Yuri Grigorovich), 지휘자 제임스 터글(James Tuggle)이었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흐르면서 호두까기인형 발레 공연은 서막을 올렸다.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Yuri Grigorovich)

러시아 상트페테부르크 태생의 세계적인 거장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발레학교를 졸업한 뒤에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의 솔리스트로 데뷔했다. 이곳에서 그는 안무가로서 빛나는 재능을 발휘하게 되는데, 1957년 그가 안무한 첫 작품 「석화(The Stone Flower)」는 새로운 천재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61년 두 번째 안무작인 「사랑의 전설(The Legend of Love)」을 통해 이듬해 발레 마스터를 역임했고, 이후 천부적인 재능으로 많은 찬사를 받으며 러시아 발레의 새로운 경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1964년, 37세의 유리 그리고로비치는 1776년 설립된 볼쇼이발레단의 예술감독이 돼서 1995년까지 30년 이상 볼쇼이발레단을 이끌었다. 특히 그때까지 키로프 마린스키 발레단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볼쇼이발레단을 러시아 대표 발레단으로 발전시키며 '발레 하면 볼쇼이'라는 신화를 만들었다. 그의 부임 후 볼쇼이발레단은 90회가 넘는 해외 순회공연을 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고, 전 세계의 재능 있는 많은 무용가가 러시아로 몰려들었다.

유리 그리고로비치는 볼쇼이발레단 재임 기간에 '20세기 발레 영웅'에 걸맞은 많은 작품을 재창조하거나 새로 만들었다. 차이콥스키의 3대 걸작 잠자는 숲속의 미녀(1963년), 호두까기인형(1966년), 백조의 호수(1969년)와 글라주노프의 라이몬다(1984년), 아당의 지젤(1987년), 밍쿠스의 라 바야데르(1991년), 돈키호테(1994년) 등 고전 발레를 새롭게 재해석했다. 그리고 아람 하차투리안의 스파르타쿠스(1968년), 프로코피예프의 이바대제(1975년)는 초연 당시에 실패했지만, 이후 그리고로비치의 손에 의해 재탄생해 볼쇼이발레단의 대표작이 된 작품들이다.
이 밖에도 에쉬페이의 앵가라(1976년), 쇼스타코비치의 황금시대(1982년)는 발레에 현대성을 부여한 그의 창작품으로써 역시 많은 찬사를 받았다.

[심흥섭 칼럼] 夜花로 피어난 눈꽃, 국립발레단 '호두까기인형'
지휘자, 제임스 터글(James Tuggle)

미국 오리건 포틀랜드에서 태어나 1972년부터 1976년까지 로스앤젤레스에서 프리츠 츠바이크(Fritz Zweig)에게 지휘를 배웠으며, 이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 음악원에서 오트마르 수트너를 사사했다.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샌디에이고 오페라의 지휘자로 활동했으며, 1977년부터 3년 동안 시애틀오페라의 페스티벌 프로덕션 「니벨룽겐의 반지」부지휘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82년 독일 베를린오페라에서 데뷔 무대를 가진 뒤 유럽 전역에서 연주회를 지휘하기도 했다.

1984년 9월에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음악감독이 됐는데, 그곳에서 바쁜 지휘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발레단의 활발한 해외 공연 덕분에 전 세계의 여러 오케스트라와 함께 작업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제임스 터글은 1988년에 안무가 유리 바모스가 예술감독으로 있던 독일 본발레단으로 거처를 옮겨 함께 활동했고, 이는 1991년 이후 스위스 바젤발레단으로 이어졌다.

1993년 오스트리아 빈슈타츠오퍼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뒤에 그곳에서 상임 지휘자, 발레단 음악 자문, 오페라단 지휘자로 활약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독일 베를린코미셰오퍼와 이탈리아 로마오페라에서 정기적으로 객원 지휘자로 활동했다.

제임스 터글은 1997년에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음악감독으로 다시 돌아와 발레단의 폭넓은 레퍼토리 작품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의 순회공연의 지휘를 맡았다. 2001년에는 미국 메트로폴리탄오페라하우스에서 아메리칸 발레시어터를 지휘했고, 2002년 이후에는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오스트리아 빈슈타츠오퍼,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극장, 포트투칼 국립발레단, 홍콩발레단, 독일 드레스덴젬퍼오퍼 발레단에서 정기적으로 객원지휘자로 활동했으며, 19/20 시즌을 끝으로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퇴임했다.

그는 발레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유명 교향곡과 오페라를 포함한 폭넓은 레퍼토리를 지휘한다. 특히 그가 지휘하는 19세기 후반 독일 레퍼토리 연주가 유명하며, 동료 음악가와 평론가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심흥섭 칼럼] 夜花로 피어난 눈꽃, 국립발레단 '호두까기인형'
호두까기인형(The Nutcracker)은 독일의 오래된 전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힘과 용기를 상징하고, 액운과 위험으로부터 행복한 가정을 지켜주는 파수꾼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용감한 파수꾼인 '호두까기인형'이 행운과 착한 마음씨를 선물하는 전달자로 여겨지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복조리'나 '장승'이 그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호두까기인형의 유래

인형의 입안에 견과류(Nut: 땅콩, 아몬드 등)를 넣은 다음 뒤의 레버를 눌러 껍질을 까서(Crack) 먹는 도구였던 Nutcracker를 요즘과 같은 병정 모양의 인형 모습으로 만든 것이다. 한글로 번역하면서 호두까기인형이라고 번역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혼동을 가져다주었다. 원래는 '견과까기인형'이라고 해야 적절하지 않을까?

오늘날 우리가 '호두까기인형'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병정 모양의 인형은 1800년대 초 독일 작센주(州)의 산악지대 광부들이 겨울철 어린이들을 위한 선물로 제작하면서 시작됐다.

그 후 1816년 독일의 E.T.A 호프만이 전설 속의 호두까기인형이 동화 「호두까기인형과 생쥐 대왕」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1891년 차이코스프키가 전설과 동화책을 바탕으로 작곡한 발레 「호두까기인형」이 1892년에 초연되면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후, 호두까기인형 발레와 동화는 전 세계인과 영원히 함께 할 명작이 됐고,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어른들에게는 소중한 어릴 적 추억을 간직하게 해주는 영원한 친구가 되었다. 서양 사람들은 가족들과 소중한 이들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여러 가지 모습의 호두까기인형들을 모아 일 년 내내 집안의 한 쪽에 놓아두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고 한다.
[심흥섭 칼럼] 夜花로 피어난 눈꽃, 국립발레단 '호두까기인형'
Synopsys

마리의 집에서 즐거운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고, 손님들은 마리의 집으로 간다. 마리의 대부 드로셀마이어가 마술과 춤을 보여주고 마리에게 호두까기인형을 선물한다. 거실의 트리가 켜지고, 각 나라의 인형들과 호두까기인형이 생명을 얻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때, 생쥐들이 나타나서 인형들을 위협하고 호두까기인형은 장난감 병정들을 이끌고 생쥐들과 전쟁을 벌인다.
마리는 호두까기인형이 위협에 빠지자 생쥐 왕에게 초를 던져서 호두까기인형의 승리를 이끈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 호두까기인형이 멋진 왕자로 변신하고, 마리와 함께 크리스마스랜드로 여행을 떠난다. 왕자는 마리에게 사랑의 맹세와 함께 청혼을 하고 스페인,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인도 인형들과 아름다운 꽃송이들이 모두 모여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 준다.

그렇게 모두가 행복해하며 왕자와 마리의 아름다운 춤으로 결혼식은 끝난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깬 마리는 결혼식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 호두까기인형을 품에 안은 채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한다.
[심흥섭 칼럼] 夜花로 피어난 눈꽃, 국립발레단 '호두까기인형'
2024 호두까기인형 발레 서울 공연 관람 팁 몇 가지를 알아보자.

첫 째, 호두까기인형의 입이 큰 이유
원래 호두까기인형은 호두를 깨 먹기 위한 용도로, 호두까기인형 입 부분에 호두를 넣고 깨기 위해 입이 크게 제작됐다.
둘 째, 호두까기인형과 크리스마스의 연관
발레 호두까기인형의 원작 소설은 독일 작가 E.T.A 호프만의 원작 동화 호두까기인형과 생쥐 왕으로 독일에서 호두까기인형은 가정의 평안과 행복을 지켜주는 부적으로 사용되며, 이러한 이유로 크리스마스 시즌에 선물이 됐다.
셋 째, 호두까기인형이 생쥐 왕을 무찌르는 이유
위험과 악한 기운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고 새해를 맞이하는 의미를 담아 호두까기인형 병정들이 생쥐 왕을 무찌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넷 째, 생쥐 왕은 왜 악역으로 등장할까?
E.T.A 호프만의 호두까기인형과 생쥐 왕에서 쥐가 악역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여러 상징적 의미와 사회적 맥락에 기반을 둔다. 당시 유럽에서 쥐는 전염병인 흑사병의 매개체로 여겨지며 공포와 불쾌감의 대상이었다. 호프만의 작품에서 쥐는 명시적으로 '어둠'이나 '혼란'을 상징한다고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작품 속 쥐의 역할과 서구 문학 및 문화에서 쥐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를 결합한 결과이다.
다섯 째, 발레 호두까기인형에 각 나라의 인형이 등장하는 이유
작품 1막 중에 어린 마리와 친구들이 갖고 놀던 인형들이 마리의 꿈속에서 커져서 나타난다. 이때 등장하는 5개국의 춤은 디베르티스망의 일부로, 극의 재미를 더하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한층 강화해 준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세계 각국의 문화를 탐구하고자 하는 흐름이 강했고, 이는 민속 무용의 활용으로 이어졌다. 스페인, 인도, 중국, 러시아, 프랑스 인형 춤에는 각 나라별 음악적 특징과 춤 동작이 담겨 있으며, 그 민속성을 유지하면서도 발레 형식에 맞게 재해석됐다.

발레리노, 발레리나 그들 덕분에 아름다운 밤을 경험하고 연말연시를 따뜻하고 행복하게 가슴에 추억한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심흥섭 G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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