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송사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는 고려 말 난세에서 조선 건국에 이르기까지의 배경을 바탕으로 6명의 중심인물들이 엮어내는 무용담을 그린 드라마이다.

역사는 이미 조선(朝鮮) 건국(建國)이라는 결과를 알고 있기에 흥미가 덜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중심인물들과 주변 인물들 사이의 심리적 갈등과 알력을 지켜보는 게 여간 재미가 아니다.

특히 제 일용(一龍)인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는 전형적인 무장(武將)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작가의 글 솜씨 덕분인지 아니면 연기자의 뛰어난 연기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도 이성계의 타고난 모습과도 유사한 점이 많아 정명(定命)을 연구하는 학인(學人)으로서 공감대를 자아낸다.

문헌(文獻)에 나와 있는 태조 이성계의 사주를 바탕으로 명국(命局)을 간평(看坪) 해 본다.



乙亥年 癸未月 ㅇㅇ日 ㅇㅇ時 (1335 – 1408)



오행의 자리가 군왕의 조건인 막힘없이 돌아가는 통기(通氣)의 사주도 아니요 오로지 관살(鬼)의 자리만 돋보이는 명국이다. 갈 곳이 없는 귀(鬼)라는 살(殺)은 결국 나에게로 향하게 되어 있으니 쓰지 않으면 고스란히 당하게 된다.

이러한 명국은 인생의 길이 순리대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숙명적 저항을 바탕에 깔고 앉은 삶이라, 무엇보다도 규율과 규칙이 중요한 군인이라는 직업은 어쩌면 천직(天職)이라 할 수 있겠다.

직업의 자리에 있는 구천(九天)과 금(金)으로 타고난 오행의 성향은 명분과 의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결국 악조건 속에서도 요동정벌이라는 어명(御命)의 이행과 병들고 다친 병사들을 위한 회군(回軍)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해야만 한다.

거사(擧事)를 벌이기 위해서는 협력자가 필요하다. 이른바 비겁(比劫)이라고 하는데 자신의 자리에 임일(臨日)하여 마치 훈련소를 연상하게 하는 이 자리는 그 위세가 이성계 못지않다.

대표적인 비겁은 바로 조선 건국의 기획자이자 이성계의 브레인이며 참모였던 두 번째 용(龍) 혁명아 삼봉 정도전(鄭道傳) 과의 만남이다.



이성계가 왕(王)으로 추대되는 조선 건국 시기인 1392년은 그의 나이 58세이다.

흉(凶)한 문괘(門卦)와 공망(空亡)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유년운의 흐름은 오직 변화만이 살길이요, 격국 또한 정(靜) 함은 불리(不利)하고 동(動) 함은 유리(有利)하니, 이른바 역성혁명(易姓革命)의 결과는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의 탄생으로 귀결된다.

권자(權者)는 살(殺)을 사용함이니 관살(鬼)을 위용하여 무위(武威)를 세상에 떨쳤고, 귀자(貴子)는 재(財)를 사용함이니 결국에는 동처의 쌍재(雙財)를 위용하여 지존(至尊)이 되었으니 결과로는 타고난 명국대로 산 셈이다.

명국에는 음(陰)과 양(陽)이 공존하는 법이다. 역성혁명으로 나라를 세운 패도 군주답게 명국 바탕이 전국(戰局)에 살성이 강한 만큼 그의 왕업(王業)도 순탄치가 않았다.

변지(邊地)에 있는 불안한 자식의 자리는 왕자의 난(亂)으로 이어져 수많은 목숨을 희생하여, 결국 왕위마저도 물려주고 함흥으로 떠나 돌아오지 않았던 이른바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일화를 남기기도 하였으니, 이 또한 자신의 명국에 나타난 보이지 않는 아픔일 뿐이다.

결국 조선은 3대 왕이자 ‘육룡이 나르샤’의 세 번째 용(龍)인 태종 이방원(李芳遠)에 가서야 기틀을 다지게 된다.



역사(歷史)는 승자(勝者)의 기록물이라 승자의 입장에서 명국을 정리해 보았지만, 사실 개인의 명국으로 이성계의 사주를 분석해 보자면 단순히 무장의 명국일 뿐 군주의 명국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고려 말의 정세가 안정이 되었다면 활동 무대는 자신의 본거지인 함경도에 국한되지 않았을까..

과거나 현재나 일국(一國)을 대표하는 지존(至尊)의 사주는 중요하다.

사주의 격(格)이 높고 순리(順理)대로 돌아가는가, 아니면 격이 떨어지고 역행(逆行)하는가에 따라서 국격(國格)은 물론이요 국민의 안위(安危)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시청자의 한사람으로서 새해에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멋진 모습을 기대해 본다.
(看坪은 私見 임을 덧붙이며 參考文獻 표기는 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