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일본 경제계에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재계 총리’로 불리는 일본게이단렌 회장이 교체됐다.

2002년 닛케이렌과 게이단렌이 통합,출범한 일본게이단렌의 제2대 회장으로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회장(70)이 취임했다.

신임 게이단렌 회장의 공식 취임 후 도쿄시내 호텔에서 축하 파티가 열렸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의 총수들이 대부분 참석했다.그중 특히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었다.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였다.

고이즈미 총리의 재계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다.주요 행사에 어김없이 참석해 기업가들을 격려해 주고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그런면에서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게이단렌 회장 취임식에 총리가 참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고이즈미 총리는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린 작년 7월22일 시즈오카현 오야마초에서 열린 게이단렌 하계 세미나에도 참석한 적이 있다.

연일 35도를 넘는 폭염 속에 회의장을 찾은 총리는 재계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와인으로 건배했다.

다음날 주요 신문에는 총리와 오쿠다 히로시 당시 게이단렌 회장이 덕담을 건네며 환하게 웃는 표정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렸다.

일본 정계와 재계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2001년 4월 취임한 고이즈미 총리는 유별나게 업계 인사들과 사이가 좋다.

특히 초대 게이단렌 회장을 맡은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자동차 회장(73)은 10년 이나 위지만 친구처럼 지낸다.

오쿠다 회장은 공식 석상에서도 “고이즈미식 개혁이 없었다면 일본경제 부활은 없었을 것”이라고 고이즈미 총리를 지지하고 있다.

오쿠다 회장은 1993년 이후 중단됐던 게이단렌의 정치 헌금도 2004년부터 재개해 집권 자민당과 고이즈미 총리의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해왔다.

두 사람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일화는 많다.

오쿠다 회장은 경제재정자문회의(의장 고이즈미 총리) 민간위원으로 10일에 한번 꼴로 총리를 만나고 두 사람만 별실에서 독대하는 경우도 많다.

연초 고이즈미 총리는 우정 민영화로 탄생하는 4개 자회사 사장 인사를 오쿠다 회장과 상의하라고 내각에 지시한 적이 있다.

민영화 성공을 위해 인사가 중요하니 오쿠다 회장의 경험과 식견을 빌려 보라는 뜻 이었다.

역사 문제 등으로 중국과 일본 관계가 냉각된 작년 가을 오쿠다 회장은 비밀리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베이징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만나 양국 관계의 매듭을 푸는 중요한 외교적 역할을 맡기도 했다.

총리의 신임이 워낙 절대적이다 보니 장관들이 경제 현안과 관련해 “총리에게 잘 좀 전해 달라”고 부탁하는 사례도 많았다.

실제로 오쿠다 회장 취임 이후 정부 정책에 재계 의견이 많이 반영됐다.

2003년도 세제개혁 때 R&D(연구개발) 및 IT(정보기술) 투자에 대한 감세 정책을 반영시켜 업계에 1조엔 이상의 감세 효과를 가져왔다.

2004년에는 노동자 파견법 개정을 성사시켜 기업의 노동 비용을 대폭 줄였다.

금년 5월부터 시행된 회사법 개정안도 경영의 자율성을 높이는 쪽으로 재계 주장이 대부분 수용됐다.

고이즈미 정권과 재계의 밀월은 1990년대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 위기감에서 생긴 시대의 산물이다.

정치권과 재계가 힘을 합쳐 경제 재건에 나선 결과 52개월째 경기 확장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오는 11월까지 전후 최장의 경기 확장 기록을 세울게 확실시 된다.

오쿠다 회장에 이어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회장이 재계 수장으로 취임하는 과정에도 정치권과 재계의 교감이 있었다.

오쿠다 회장은 “일본경제가 중후장대한 산업이 아니라 하이테크 산업 중심으로 질적변화를 해야 한다”며 IT업계 대표 주자인 캐논의 미타라이 회장을 후임으로 적극 추천했다.

일본 정부도 6월 초 확정하는 21세기 국가 발전 청사진인 ‘글로벌 전략’ 키워드로 ‘과학 기술 창조 입국’을 내걸고 재계와 뜻을 같이하고 있다.

미타라이 신임 게이단렌 회장도 취임 일성으로 ‘이노베이트(변혁) 재팬’을 외쳤다.

일본경제가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 자력으로 부활에 성공한 것은 정치권과 재계가 긴밀하게 서로 협력해 국가 청사진을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본의 질적 변화를 내건 미타라이 게이단렌 회장이 일본 경제 발전에 어떤 역할을 해 나갈지 주목해 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