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피우기 좋은 토요일, 그러나 늘 산이 꼬드긴다. 수도권에는 전철로 접근 가능한 산이 하고많다. 수도권 전철 중 개통 후 아직 타 보지 않은 노선이 있다. 바로 지난해 9월 개통된 판교와 여주를 잇는 경강선이다. 경강선 주변 산들이 궁금했다. 검색 결과, 초월역에서 시작, 백마산> 용마봉> 발리봉을 잇는 종주 산길이 눈에 팍 꽂혔다.

이른 아침 집을 나와 9호선> 3호선> 신분당선> 경강선을 이용해 초월역에 닿았다. 주말 산객들로 붐비는 중앙선이나 경춘선과는 달리 경강선은 한산했다. 전철 역이 생기면 주변 산 접근이 쉬워져 산객 탑승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여지없이 빗나갔다. 산꾼들이 혹할만한 매력적인 산이 없거나 산 들머리까지 접근로가 미처 정비되지 않아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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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빠져나와 곧장 스맛폰에 갈무리 해둔 메모장을 열었다. 엊저녁, 초월역에서부터 산들머리에 이르는 길 안내를 메모해 뒀었다.
초월역 1번 출구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우측 방향으로 직진, 롯데아파트가 끝나는 지점, 건너편 파리바게트 건물을 보면서 왼쪽으로 꺾어 들면 이면도로가 나온다. 명성골프 간판이 보일 때까지 쭈욱 직진하다보면 길은 동네골목처럼 좁아진다. 명성골프를 지나면 초월사슴목장 이정표가 보인다. 여기서 왼쪽으로 진행하면 골목길은 끝나고 풀숲길로 이어진다. 무성하게 웃자란 풀숲을 헤쳐 걸으면 무덤을 맞닥뜨리게 된다. 길은 이쯤에서 아리까리해진다. 자칫 헤맬 수 있다. 풀숲이 성가시더라도 무덤 앞에서 왼쪽으로 설핏 드러난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초월역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백마산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는 그 어디에도 없다. 산객들이 오간 흔적인 그 흔한 리본 표식도 하나 없다. 초월역 가까이에 백마산이 있을뿐이지 아직까진 결코 접근이 쉽지 않다. 지자체가 신경써야 할 대목이다. (초월역에서 백마산 오르려는 분들을 위해 산들머리까지 주저리 주저리 설명을 덧붙였음)
전철 경강선과 접한 '광주 백마산' 엿보기
산중턱에 이르러 잠시 길을 놓쳤다. 덤불과 거미줄이 성가시게 굴었지만 도리없이 길이 아닌 산비탈로 올라붙었다. 육산이라 비탈이 그리 까탈스럽진 않아 10여분 버벅댄 끝에 능선에 닿아 주등산로와 합류했고 비로소 반듯한 첫 이정표를 만날 수 있었다.

백마산 정상은 1.1km 앞이다. 용마산까지는 2.31km, 태화산까지는 12.19km를 가리킨다. 염두에 둔 산행코스는 발리봉까지 갔다가 적당한 하산길 찾아 내려서는 것이다. 처음 만난 이정표에 발리봉 표시는 없다. 능선을 따라 정상에 이르는 길은 그늘진 숲길이라 걷기엔 그만이나 조망은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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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그늘이 일품인 정상에 이르자, 간편복 차림의 군인들이 줄지어 지난다. 주말 맞은 인근 부대원들의 숲길 산보 행렬이다. 이곳 산길을 걷다보면 군사시설 통제구역 안내판이 자주 눈에 띈다. 바로 공수교육의 요람, 특수전 교육단이 이곳 백마산자락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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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용인 남동쪽 10km지점의 한남정맥 주맥에서 북으로 뻗은 산줄기가 앵자봉을 빚고 태화산(645m)을 지나 남쪽에 백마산을 일으켜 세웠다. 백마산은 경기도 광주 초월면과 오포면을 경계짓는 아담한 산이다. 그러나 드러난 산세와 달리 예로부터 이 산자락에는 쎈 기운이 감돌았던 모양이다.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멀리서 이 산을 보다가 산세가 마치 백마의 등허리를 닮았다 하여 백마산으로 이름지었다는 설이 있다. 범상치 않은 산세에 필이 꽂힌 도선국사가 후백제의 견훤을 물리치고 고려를 개국할 재목으로 왕건을 지목하고, 그의 휘하 군사들을 훈련시킬 장소로 백마산 일대를 택했다고 한다. 그 후예들이 지금도 백마산 자락에서 특수전 훈련을 빡세게 받고 있으니 이들 특전병사들이 느끼는 자부심은 대단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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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산의 3개 봉우리 높이는 고만고만하다. 백마산 정상(464m), 용마봉(502.9m), 발리봉(512m) 順이다. 이렇듯 만만해 보여도 이어 걷다보면 오르내림이 빈번하여 땀 꽤나 흘려야 한다. 땀냄새를 쫓아 앵앵 거리며 쉼없이 달려드는 날벌레와의 신경전을 벌이다 보면 어느새 용마봉이다. 까만 돌에 ‘白馬山勇馬峰’이라 음각되어 있다. 어쩌면 같은 산 세 봉우리의 정상 표시석이 이처럼 제각각일까? 백마산은 한자와 한글로, 용마봉은 한자로, 발리봉은 한글로 표기되어 있다. 또 생김새는 어떤가? 백마산은 묘비처럼 세로로 길쭉하고, 용마봉은 床石처럼 반들거리고 발리봉은 기단에 자연석을 올려놓은 형태다. 한 뱃속 형제들인데 다른 姓을 가진 느낌이 들어서 잠시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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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봉에서 1.62km를 진행하면 발리봉. 그러나 산이리 갈림길을 지나 거의 바닥까지 쳤다가 다시 산을 시작하는 기분으로 올라서야 발리봉이다. 길목에는 임도와 예비군훈련장 갈림길이 여러 갈래라 산길을 놓치기 쉽다. 주말인데도 산객을 도통 만날 수 없으니 이정표와 리본 표식을 놓치지 않는 게 상수(上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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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발리봉(512m)에 닿았다. 높이로만 본다면 백마산의 주봉이다. 초월역에서부터 얼추 5km를 넘게 걸었으니 연료(?) 게이지가 바닥이다. 채워줘야 한다. 원탁 목데크에 배낭을 내렸다. 연료는 토마토 한 알과 누룽지 한 봉지가 전부다. 경험상 행동식으로 이 정도 거리에 이 양이면 충분하다.
봉우리 이름이 좋다. 정상 표시석 뒷면에 쓰여진 유래를 들여다 봤다. ‘發梨峰’ 즉 ‘배꽃 피는 봉우리’란 뜻이다. 고로 이곳 발리봉과 인도네시아 발리섬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밝힌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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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능선을 따라 8.3km를 더 가면 태화산이나 너무 후텁지근한 날씨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욕심을 버리고 왼쪽 산이리 마을회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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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소나무들이 맥없이 쓰러져 있다. 멀쩡해 보이는 소나무도 올려다 보니 솔잎이 죄다 말라붙었다. 소나무의 저승사자, 재선충병이 휩쓸고 간 흔적이다. 나무기둥에 매달린 일련번호의 숫자를 보니 얼마나 많은 소나무가 신음중인지 짐작이 간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산길 10.2km를 걷는 동안 마주친 산객은 고작 너댓명 뿐. 산 전체를 통째로 전세낸 기분으로 유유자적 걸었다. 백마산> 용마봉> 발리봉> 태화산까지 능선이 이어져 있어 컨디션에 따라 혹은 시간에 맞게 산행거리를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어 사색과 힐링산행으로 딱 좋은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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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산이리 마을로 내려서서 독고개길을 따라 경충대로까지 이어진 아스팔트길 걷기 만큼은 옥의 티다. 즉 광주 백마산이 전철산행지로 이름을 올리려면 산 나들머리에 대한 정비와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게 소생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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