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숲 권옥희 언제나 축축이 젖은 여름 숲은 싱싱한 자궁이다 오늘도 그 숲에 새 한 마리 놀다 간다 오르가슴으로 흔들리는 나뭇가지마다 뚝뚝 떨어지는 푸른 물! 【태헌의 한역】 夏林(하림) 夏林常漉漉(하림상록록) 便是活子宮(변시활자궁) 今日亦一鳥(금일역일조) 盡情玩而行(진정완이행) 極感搖樹枝(극감요수지) 靑水滴瀝降(청수적력강) [주석] * 夏林(하림) : 여름 숲. 常(상) : 언제나, 늘. / 漉漉(녹록) ...
들꽃 박두순 밤하늘이 별들로 하여 잠들지 않듯이 들에는 더러 들꽃이 피어 허전하지 않네 너의 조용한 숨결로 들이 잔잔하다 바람이 너의 옷깃을 흔들면 들도 조용히 흔들린다 꺾는 사람의 손에도 향기를 남기고 짓밟는 사람의 발길에도 향기를 남긴다 【태헌의 한역】 野花(야화) 夜天因星不入睡(야천인성불입수) 野由野花不空虛(야유야화불공허) 汝氣安穩野寂靜(여기안온야적정) 風搖汝衣野亦搖(풍요여의야역요) 野花遺香折人手(야화유향절인수) 野花遺香踏人趺(야화유향답인부) [주석] * 野花(야화) : 들꽃. 夜天(야천) : 밤하늘. / 因星(인성) : 별로 인하여, 별 때문에. / 不入睡(불입수) : 잠에 들지 못하다, 잠을 이루지 못하다. 野(야) : 들. / 由野花(유야화) : 들꽃으로 말미암아, 들꽃 때문에. / 不空虛(불공허) : 공허하지 않다, 허전하지 않다. 汝氣(여기) : 너의 기운, 너의 숨결. / 安穩(안온) : 평안하다, 조용하다. / 野寂靜(야적정) : 들이 고요하다, 들이 잔잔하다. 風搖汝衣(풍요여의) : 바람이 너의 옷을 흔들다. / 野亦搖(야역요) : 들 또한 흔들리다. 野花遺香(야화유향) : 들꽃이 향기를 남기다. / 折人手(절인수) : 꺾는 사람의 손. 踏人趺(답인부) : 밟는 사람의 발꿈치, 밟는 사람의 발. [직역] 들꽃 밤하늘은 별들로 인해 잠들지 않고 들은 들꽃으로 말미암아 허전하지 않네 너의 숨결 조용하여 들이 잔잔하고 바람이 너의 옷깃 흔들면 들 또한 흔들리지 꺾는 사람 손에도 들꽃은 향기를 남기고 짓밟는 사람 발에도 들꽃은 향기를 남긴다 [한역 노트] 우리 현대시에는 들꽃을 노래한 시가 정말 많아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고사 조지훈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西域) 만리(萬里)ㅅ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태헌의 한역】 古寺(고사) 敲打木魚不勝眠(고타목어불승면) 姸麗童僧忽入睡(연려동승홀입수) 世尊無語作微笑(세존무어작미소) 輝燿霞下牡丹墜(휘요하하모란추) [주석] 敲打(고타) : 두드리다. / 木魚(목어) : 목탁(木鐸). / 不勝眠(불승면) :...
윤사월 박목월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태헌의 한역】 閏四月(윤사월) 松花粉飛孤峰下(송화분비고봉하) 四月日長黃鳥鳴(사월일장황조명) 山守獨家眼盲女(산수독가안맹녀) 附耳門柱暗暗聽(부이문주암암청) * 四月指閏四月(사월지윤사월) [주석] 松花粉(송화분) : 송화 가루. / 飛(비) : 날다. / 孤峰(고봉) : 외...
“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는 우리의 현대시를, 한시(漢詩)로 옮긴 한역시(漢譯詩)와 곁들여 감상해보는 코너이다. 이 코너를 들여다볼 독자들 가운데는 멀쩡하게 잘 있는 한글시를 왜 굳이 골치 아프게 한시로 옮겼느냐고 질문할 분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편안함과 용이함을 극도로 추구하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한글시를 한시로 옮기는 일 자체가 어떻게 보면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어리석음으로 간주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영화인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