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징검다리 새로운 길 김수복 길이 없으면 마음과 마음 사이로 징검다리를 놓아야지 서로 마주보고 얼굴을 닦아주어야지 가시밭길이더라도 서로 웃어주어야지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웃으며 가야지 [태헌의 한역] 石矼(석강) - 「新康(신강)」 若使兩方(약사양방) 無一小陌(무일소맥) 心與心間(심여심간) 應設矼石(응설강석) 彼此相對(피차상대) 相拭面容(상식면용) 雖當荊路(수당형로) 須作笑閧(수작소홍) 渡川向林(도천향림) 越嶺向莊(월령향장) 相與拍肩(상여박견) 含笑跳踉(함소도량) [주석] * 石矼(석강) : 징검다리, 돌다리. * 新康(신강) : 새로운 길. ‘康’은 보통 오달(五達)의 길, 곧 오거리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여러 군데로 막힘없이 통하는 큰 길을 가리키기도 한다. * 若使(약사) : 만약, 만약에, / 兩方(양방) : 양쪽, 양쪽에. * 無(무) : ~이 없다. / 一小陌(일소맥) : 하나의 작은 길, 작은 길 하나. * 心與心間(심여심간) : 마음과 마음 사이, 마음과 마음 사이에. * 應(응) : 응당 ~을 해야 한다. / 設(설) : ~을 설치하다, ~을 놓다. / 矼石(강석) : 징검돌, 징검다리. * 彼此(피차) : 피차, 저쪽과 이쪽, 서로. / 相對(상대) : 서로 마주하다, 서로 마주보다. * 相拭(상식) : 서로 흠치다, 서로 닦아주다. / 面容(면용) : 얼굴. * 雖(수) : 비록 ~일지라도. / 當(당) : ~을 만나다, ~을 마주치다, / 荊路(형로) : 가시밭길. * 須(수) : 모름지기 ~해야 한다, 마땅히 ~해야 한다. / 作(작) : ~을 만들다, ~을 짓다. / 笑閧(소홍) : 크게 웃음, 큰 웃음. * 渡川(도천) : 내를 건너다. / 向林(향림) : 숲을 향하다, 숲으로. * 越嶺(월령) : 고개를 넘다. / 向莊(향장) : 마을을 향하다, 마을로.
[원시] 心山書屋詩庭有感(심산서옥시정유감) 心山書屋有詩庭(심산서옥유시정) 遠近忙閒爭現形(원근망한쟁현형) 天惡俗塵時灑雨(천오속진시쇄우) 花歡佳日數播馨(화환가일삭파형) 女姸男俊童還秀(여연남준동환수) 誦潔簫淸舞亦靈(송결소청무역령) 情與酒深無剩恨(정여주심무잉한) 能知雅會永年靑(능지아회영년청) [주석] * 心山書屋(심산서옥) : 심산서옥.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에 위치한 건물로 서실에서는 붓글씨를 가르치고, 뒷마루와 아담한 뜨락에서는 시낭송회와 작은음악회 등을 열고 있어, 문화사랑방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 詩庭(시정) : 한글 “시뜨락”을 한역한 말이다. / 有感(유감) : 감회가 있다. * 有詩庭(유시정) : “시뜨락”이 있다. * 遠近(원근) : 멀고 가까움, 원근. / 忙閒(망한) : 바쁘고 한가함. / 爭(쟁) : 다투다, 다투어. / 現形(현형) : 모습을 눈 앞에 드러내다, 모습을 보이다. ※ 이 구절에서의 ‘遠近忙閒’은 ‘遠近과 忙閒에 관계없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 天惡俗塵(천오속진) : 하늘이 속세의 먼지를 싫어하다. / 時(시) : 이따금. / 灑雨(쇄우) : 비를 뿌리다. * 花歡佳日(화환가일) : 꽃이 좋은 날을 기뻐하다. / 數(삭) : 자주. / 播馨(파형) : 향기를 뿌리다. * 女姸(여연) : 여성이 예쁘다. / 男俊(남준) : 남성이 멋지다. / 童還秀(동환수) : 아이들이 또 수려하다. * 誦潔(송결) : 낭송이 깨끗하다. / 簫淸(소청) : 퉁소(소리)가 맑다. / 舞亦靈(무역령) : 춤 또한 영묘하다. * 情與酒深(정여주심) : 정이 술과 더불어 깊다. / 無剩恨(무잉한) : 남은 한스러움이 없다. * 能知(능지) : ~을 알 수 있다. / 雅會(아회) : 아회, 고아한 모임. / 永年(영년) : 영원, 오랜 세월. / 靑(청) : 푸
[원시] 종이에 베이다 하청호 새 책을 읽다가 부드러운 종이에 손을 베었다 칼날같이 벼린 말씀 종이에 숨어 있었다 [태헌의 한역] 爲紙所割(위지소할) 某日看新冊(모일간신책) 手爲柔紙傷(수위유지상) 如刀磨鍊語(여도마련어) 寂靜紙中藏(적정지중장) [주석] * 爲紙所割(위지소할) : 종이에 베이다. * 某日(모일) : 어느 날. 한역(漢譯)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看(간) : ~을 보다. / 新冊(신책) : 새책. * 手(수) : 손. / 爲柔紙傷(위유지상) : 부드러운 종이에 상처를 입다, 부드러운 종이에 베이다. * 如刀(여도) : 칼캍이, 칼처럼. / 磨鍊(마련) : 갈고 불리다, 갈고 벼리다. / 語(어) : 말, 말씀. * 寂靜(적정) : 고요하다.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紙中(지중) : 종이 속, 종이 속에. / 藏(장) : 감추다. [한역의 직역] 종이에 베이다 어느 날 새 책을 읽다가 부드러운 종이에 손을 베었다 칼같이 갈고 벼린 말씀이 고요히 종이 속에 숨어 있었던 것 [한역 노트] 새 책을 읽다가 종이에 손이 베인 물리적인 사고를, “칼날같이 벼린 말씀”이 우리의 무딘 영혼이나 감성을 자극하여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정신적인 충격에 비유한 이 시는, 베인다는 그 동작으로 인하여 얼마간 오싹함을 느끼게는 해도 공포심까지 주지는 않는 듯하다. 누구나 어쩌다 한 번쯤은 책 장(張)과 같은 종이에 손이 베인 적이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시인이 설정한 비유는 기발하고 뜻은 경이롭다고 할 수 있다. 역자는 이 시를 몇 번이고 읽어보면서 책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원시] 夢魂(몽혼) 李玉峰(이옥봉)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門前石路半成沙(문전석로반성사) [주석] * 夢魂(몽혼) : 꿈속의 넋. * 李玉峰(이옥봉) :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이다. 서출(庶出)이었던 그녀는 15세에 본인이 원한 바대로 조원(趙瑗)의 소실이 되었으나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에 버림을 받았으며, 난리 도중에 35세의 나이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권의 시집(詩集)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시 32편만이 전해지고 있다. * 近來(근래) : 요사이, 요즈음. / 安否(안부) : 안부. / 問如何(문여하) : 어떠한지를 묻다. ※ 이 구절에 쓰인 동사인 ‘問’은 시구 맨 앞에 놓여야 하나 시의 운율과 구법 등의 이유로 ‘如何’ 앞에 삽입되었다. * 月到(월도) : 달이 ~에 이르다. / 紗窓(사창) : 비단 등의 가는 실로 짠 천을 바른 창. 간략히 비단 창문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 妾恨多(첩한다) : 이 몸의 한스러움이 많다. 이 대목의 ‘妾’은 자신의 신분이 첩이어서 칭한 말이 아니라, 옛날의 여느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남편에게 자신을 겸손하게 칭한 말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황후도 황제 앞에서는 자신을 신첩(臣妾)으로 칭하였다. * 若使(약사) : 만약, 만일. / 行有跡(행유적) : 다니는 길에 흔적이 있다, 다니는 길에 흔적이 남다. * 門前(문전) : 문 앞. / 石路(석로) : 돌길. / 半(반) : 반, 반쯤. / 成沙(성사) : 모래가 되다. [태헌의 번역] 꿈속의 넋 요사이 안부가 어떠신지 여쭈어 봅니다. 달이 비단 창문에 이를 때면 이내 몸은 한스러움이 많답니다. 만일 꿈속의 넋이 다니는 길에 흔적이 있는 것이라면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겠
[원시]굴절 이승은 물에 잠기는 순간 발목이 꺾입니다보기에 그럴 뿐이지 다친 곳은 없다는데근황이 어떻습니까, 아직 물속입니까? [태헌의 한역]屈折(굴절) 入水瞬間(입수순간)脚腕折彎(각완절만)外見如彼(외견여피)傷處全無(상처전무)近況如何(근황여하)猶水中乎(유수중호) [주석]* 屈折(굴절) : 굴절, 휘어서 꺾임.* 入水(입수) : 물에 들어가다. / 瞬間(순간) : 어떤 일이 일어난 바로 그때, ~하는 순간.* 脚腕(각완) : 발목. / 折彎(절만) : 꺾다, 꺾이다.* 外見(외견) : 겉보기. / 如(여) : ~과 같다. / 彼(피) : 저것, 그것.* 傷處(상처) : 상처, 다친 곳. / 全無(전무) : ~이 전혀 없다.* 近況(근황) : 근황, 최근의 형편. / 如何(여하) : 무엇과 같은가, 어떠한가?* 猶(유) : 아직도, 여전히. / 水中乎(수중호) : 물속인가? ‘乎’는 의문을 유도하는 어기사(語氣詞)이다. [한역의 직역]굴절 물에 들어가는 순간발목이 꺾입니다겉보기에 그 같을 뿐다친 곳은 전혀 없는데근황이 어떻습니까아직도 물속입니까? [한역노트]필자가 학창시절에 읽었던 글 가운데 제목과 출처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망원경으로 원숭이를 잡는 이야기가 있었다. 원숭이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망원경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보는 시늉을 하다가 망원경을 그 자리에 두고 제법 떨어진 곳으로 옮겨가 지켜보고 있으면, 원숭이가 살금살금 다가와 그 망원경을 가지고 꼭 사람처럼 노는데, 원숭이가 망원경을 거꾸로 잡고 볼 때에 잽싸게 다가가도 원숭이는 사람을 먼 곳에 있는 것으로 여겨 잡힐 때까지 도망을 가지 않는다는 스토리였다. 이 이야기가 실화에 기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망원경의 속성을 이용
[원시]戱詩(희시) · 腹稿與腹鼓(복고여복고) 子安腹中多書冊(자안복중다서책)文辭自拔號腹稿(문사자발호복고)伯安腹中多皮肉(백안복중다피육)世人咄咄曰腹鼓(세인돌돌왈복고) [주석]*戱詩(희시) : 재미나 장난 삼아 지은 시. / 腹稿(복고) : 뱃속[마음속]에서 이미 완성된 원고라는 뜻이다. <등왕각서(滕王閣序)>로 유명세를 더한 당(唐)나라의 시인 왕발(王勃)이 글을 지을 적에 먼저 먹을 잔뜩 갈아 놓고 술을 마신 후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고 일어나 붓을 잡고는 줄줄 써 내려갔는데, 한 글자도 고치는 일이 없어서 당시 사람들이 그를 ‘복고’라고 했다 한다. / 與(여) : ~과, ~와. 영어의 ‘and’에 해당하되 접속사임. / 腹鼓(복고) : 보통은 배를 내밀고 북처럼 두드리는 일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배북[북처럼 불룩한 배]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腹稿’와 한글음이 같다는 것에 착안하여 필자가 사용해본 말이다.*子安(자안) : 왕발의 자(字)이다. 왕발은 강주(絳州) 용문(龍門:지금의 산서성 직산(稷山))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일컬어졌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양형(楊炯)·노조린(盧照鄰)·낙빈왕(駱賓王)과 함께 초당(初唐) 사걸(四傑)로 칭해진 당나라 초기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수(隋)나라의 유명한 학자인 왕통(王通)의 손자이자 시인 왕적(王績)의 조카였던 그는 27세 때에 중국 남해에 빠져 생을 마감하였다. / 腹中(복중) : 뱃 속. / 多書冊(다서책) : <읽어둔> 책이 많다.*文辭(문사) : 시를 포함한 글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말. / 自拔(자발) : 저절로 빼어나다, 스스로 빼어나다. / 號腹稿(호복고) : “복고”를 호로 하다, 호가 “
[원시]昭君怨(소군원) 東方虬(동방규)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주석]* 昭君怨(소군원) : 왕소군(王昭君)의 원망(怨望). 왕소군의 본명은 왕장(王嬙)이지만, 자가 소군(昭君)이어서 보통 왕소군으로 부른다. 한(漢)나라 원제(元帝)의 후궁으로 있다가 흉노족(匈奴族)의 추장 호한야 선우(呼韓邪 單于)에게 시집을 가서 흉노 땅에서 생을 마쳤다. 훗날 사마소(司馬昭)의 이름자인 '소(昭)'를 피휘하여 왕명군(王明君) 또는 명비(明妃)로 일컫기도 하였다.* 東方虬(동방규) : 당대(唐代)의 시인이다.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용문(龍門)에 나아가 노닐 때 수행한 관원들에게 시를 짓게 하고는 먼저 지은 자에게 비단으로 만든 도포를 상으로 주겠다고 하였는데, 좌사(左史)로 있던 동방규가 시를 가장 먼저 지어 도포를 하사받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胡地(호지) : 오랑캐의 땅. 흉노족들이 근거지로 삼았던 중원 (서)북쪽의 땅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 無(무) : ~이 없다. / 花草(화초) : 꽃과 풀.* 春來(춘래) : 봄이 오다. / 不似(불사) : ~와(과) 같지 않다.* 自然(자연) : 자연히, 저절로. / 衣帶(의대) : 옷 입은 위에 매는 띠, 허리띠. / 緩(완) : 느슨해지다.* 非是(비시) : ~이 아니다. / 爲(위) : ~을 위하다. / 腰身(요신) : 허리품, 허리둘레, 몸매. [번역]왕소군의 원망 오랑캐 땅에 꽃도 풀도 없어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자연스레 허리띠가 느슨해진 거지(가는) 허리둘레 위한 게 아니라네 [번역노트]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무엇인가 일이 있는 봄이면 어김없이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언급되던 이 시구를 이태백(李太白)
[원시]힘 박시교 꽃 같은 시절이야 누구나 가진 추억 그러나 내게는 상처도 보석이다 살면서 부대끼고 베인 아픈 흉터 몇 개 밑줄 쳐 새겨 둔 듯한 어제의 그 흔적들이 어쩌면 오늘을 사는 힘인지도 모른다 몇 군데 옹이를 박은 소나무의 푸름처럼 [태헌의 한역]力(력) 花樣年華好追憶(화양연화호추억)於我傷處亦寶石(어아상처역보석)生來受苦傷痕歷歷(생래수고상흔역력)刻如橫線昨日跡(각여횡선작일적)或於今日爲動力(혹어금일위동력)恰如松樹帶瘤長碧(흡여송수대류장벽) [주석]力(력) : 힘.花樣年華(화양연화) : 꽃과 같은 시절이라는 뜻으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이르는 말이다. ‘花樣’은 꽃무늬, 곧 꽃과 같이 예쁜 모습이라는 뜻이고, ‘年華’는 세월, 곧 시절이라는 의미이다. / 好追憶(호추억) : 좋은 추억, 곧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뜻으로 역자가 사용한 말이다.於我(어아) : 나에게는. / 傷處(상처) : 상처. / 亦(역) : 또한, 역시. / 寶石(보석) : 보석.生來受苦(생래수고) : 살아오며 고난을 받다. 원시의 “살면서 부대끼고 베인”을 다소 간략하게 표현한 말이다. / 傷痕(상흔) : 상흔, 아픈 흉터. / 歷歷(역력) : 또렷하다. 원시의 “몇 개”를 아래 행의 “새겨 둔 듯한”을 고려하여 다소 과감하게 서술형으로 고쳐본 표현이다.刻如(각여) : 새겨진 것이 ~과 같다. 원시의 “새겨 둔 듯한”을 약간 달리 표현한 말이다. / 橫線(횡선) : 가로로 그은 줄, 언더라인. 역자가
[원시]病後戱作(병후희작) 徐居正(서거정) 醫士勸吾休飮酒(의사권오휴음주)儒家欺我酷耽詩(유가기아혹탐시)今朝破戒翻成笑(금조파계번성소)醉酒顚詩自不知(취주전시자부지) [주석]· 病後(병후): 병을 앓은 후에, 앓고 난 후에. / 戱作(희작) : 재미삼아 짓다, 장난삼아 짓다.· 徐居正(서거정) : 조선(朝鮮)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자는 강중(剛中)이고 호는 사가정(四佳亭)이다. 문집에 ≪사가정집(四佳亭集)≫, ≪동인시화(東人詩話)≫ 등이 있다. 여섯 왕을 섬기며 45년간 대제학(大提學), 대찬성(大贊成) 등의 벼슬을 지냈다.· 醫士(의사) : 의원(醫員), 의사(醫師). / 勸吾(권오) : 나에게 ~을 권하다. / 休飮酒(휴음주) : 술을 마시지 말라. ‘休’는 ‘勿(물)’의 뜻이다.· 儒家(유가) : 유자(儒者), 유생(儒生), 유학자(儒學者). / 欺(기) : 업신여기다, 깔보다. ‘欺’의 목적어[賓語]는 아래 구절 전체이다. / 我酷耽詩(아혹탐시) : 내가 몹시도 시를 즐기다.· 今朝(금조) : 오늘 아침. / 破戒(파계) : 파계하다, 계율(戒律)을 깨다. / 翻(번) : 도리어, 문득. / 成笑(성소) : 웃음 짓다.· 醉酒(취주) : 술에 취하다. / 顚詩(전시) : 시에 미치다. / 自不知(자부지) : 스스로(가) 알지 못하다. [태헌의 번역]앓고 난 후에 재미삼아 짓다 의원은 나에게 술을 마시지 말기를 권하고유자들은 내가 시 몹시 즐기는 걸 깔보는데오늘 아침에 파계하고 문득 웃음을 짓나니나도 모르는 새 술에 취하고 시에 미쳤구나 [번역노트]이 시는 희시(戱詩)이다. 희시는 다소 유머러스한 내용을 담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특별한 유머도 없이 시인 스스로가 타인의 비방이나 문제
[원문]눈이 녹으면 윤선민 눈이 녹으면 뭐가 되냐고선생님이 물으셨다 다들 물이 된다고 했다 소년은 봄이 된다고 했다 [태헌의 한역]雪融(설융) 雪融爲何物(설융위하물)師傅忽然云(사부홀연운)諸生曰化水(제생왈화수)少年謂作春(소년위작춘) [주석]· 雪融(설융) : 눈이 녹다.· 爲何物(위하물) : 무슨 물건이 되는가?, 무엇이 되는가?· 師傅(사부) : 사부, 선생님. / 忽然(홀연) : 홀연, 문득. 한역(漢譯)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云(운) : ~라고 말하다. 원문의 “물으셨다”를 시운(詩韻)을 고려하여 한역한 표현이다.· 諸生(제생) : 여러 학생. 원문의 “다들”을 한역한 표현이다. / 曰(왈) : ~라고 말하다. / 化水(화수) : 물이 되다, 물로 변하다.· 少年(소년) : 소년. / 謂(위) : ~라고 말하다. / 作春(작춘) : 봄이 되다, 봄을 만들다. [한역의 직역]눈이 녹으면 눈이 녹으면 무엇이 되지?선생님이 문득 말씀하셨다다들 물이 된다고 했지만소년은 봄이 된다고 했다 [한역 노트]역자가 임의로 “눈이 녹으면”이라는 제목을 붙인, 시(詩)로 보아도 손색이 없는 이 글은 제법 여러 해 전부터 별다른 저자 표시 없이 인터넷상에서 매우 자주 눈에 띄었다. 그리하여 문무학 시인의 시 <인생의 주소>와 비슷하게 이 글 역시 작자가 있음에도 익명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검색을 시도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글이 윤선민씨의 저서인 ≪웍슬로 다이어리≫(북스코프, 2008)에서 따온 것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소중한 글을 어떤 형태로든 이용할 때면 최소한의 예
<필자의 조부님 생전 모습>[원시]元月十五夜(원월십오야) 姜聲尉(강성위) 春風忽已着簷端(춘풍홀이착첨단)十五夜窓開未寒(십오야창개미한)天際月輪斜仄易(천제월륜사측이)紅塵世上滌愁難(홍진세상척수난) [번역]정월 대보름 밤에 봄바람이 어느덧 처마끝에 이르러보름 밤에 창 열어도 춥지를 않네하늘가 달이야 쉬이도 기울건만홍진세상 시름은 씻기 어렵구나 [주석]· 元月(원월) : 정월(正月), 음력 1월. / 十五夜(십오야) : 보름밤.· 春風(춘풍) : 봄바람. / 忽已(홀이) : 어느새, 어느덧. / 着(착) : ~에 달라붙다, ~에 이르다. / 簷端(첨단) : 처마끝.· 十五夜窓(십오야창) : 보름날 밤 창문. / 開未寒(개미한) : 열어도 춥지가 않다.· 天際(천제) : 하늘의 끝, 하늘가. / 月輪(월륜) : 둥근 달, 달. / 斜仄(사측) : 기울다. / 易(이) : ~하기가 쉽다.· 紅塵世上(홍진세상) : 홍진세상, 인간세상. / 滌愁(척수) : 시름을 씻다. / 難(난) : ~하기가 어렵다. [시작노트]이번 주 토요일은 입춘이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정월 대보름이다. 입춘과 정월 대보름이 연이은 것을 잠시 생각하고 있자니 필자가 아득한 옛날에 지었던 시 한 수가 보름달처럼 떠올랐다. 필자에게는 습작기 내지 초기의 작품이 되는 이 시는, 필자가 미혼이던 그 어느 해 정월 대보름날 밤에 지은 것이다. 이 시를 얘기하자면 다소 장황할지도 모르는, 시가 지어지게 된 내력부터 시작해야 할 듯하다. 필자는 소년 시절에 조부님과 함께 거처한 날이 손자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부님은 필자가 태어나기 6년 전에 급성 질환으로 실명(失明)을 하신 상태여서, 잔심부름을 해줄 아이가
[원시]연탄 이정록 아비란 연탄 같은 거지숨구멍이 불구멍이지달동네든 지하 단칸방이든그 집,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한숨을 불길로 뿜어 올리지헉헉대던 불구멍 탓에아비는 쉬이 부서지지갈 때 되면 그제야낮달처럼 창백해지지 [태헌의 한역]煉炭(연탄) 父親似煉炭(부친사연탄)氣孔卽火孔(기공즉화공)家中低暗處(가중저암처)太息以火湧(태식이화용)火孔太喘喘(화공태천천)父親易碎裂(부친이쇄렬)去時乃方始(거시내방시)能白如晝月(능백여주월) [주석]· 煉炭(연탄) : 연탄.· 父親(부친) : 부친, 아버지. / 似煉炭(사연탄) : 연탄과 같다.· 氣孔(기공) : 기공, 숨구멍. / 卽(즉) : 곧, 곧 ~이다. / 火孔(화공) : 숨구멍.· 家中(가중) : 집 안. 원시의 “그 집”을 살짝 고친 표현이다. / 低暗處(저암처) : 낮고 어두운 곳.· 太息(태식) : 한숨. / 以火湧(이화용) : 불로 솟다, 불로 솟구치게 하다.· 火孔(화공) : 불구멍. / 太(태) : 너무, 지나치게. / 喘喘(천천) : 헐떡거리다, 헉헉대다.· 易(이) : 쉽다, 쉬이. / 碎裂(쇄렬) : 부수어지고 찢어지다, 부서지다.· 去時(거시) : 갈 때, 떠날 때. / 乃(내) : 이에. / 方始(방시) : 비로소· 能白(능백) : 하얘질 수 있다. 원시의 “창백해지지”를 약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 如晝月(여주월) : 낮달과 같다, 낮달처럼. [한역의 직역]연탄 아비란 연탄과 같아숨구멍이 곧 불구멍이지집 안의 낮고 어두운 곳에서한숨을 불길로 솟게 하지불구멍으로 너무 헉헉대어아비는 쉬이 부서지지갈 때에야 이에 비로소낮달처럼 하얘질 수 있지 [한역 노트]연탄의 속성에 대한 통찰을 통하여 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역할과
※ 오늘은, 역자가 제법 여러 해 전 이 무렵에 어느 기관지(機關紙)을 통해 발표한 글인 <소동파(蘇東坡)의 시로 맛보는 한시(漢詩)의 멋>으로 칼럼을 대신합니다. 평소 역자의 칼럼 양식과 다소 거리가 있지만, 애초의 발표 당시 모습 그대로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따로 고치지는 않았습니다. 이점 양해를 바라며 독자 여러분들의 새해 만복(萬福)을 기원합니다. 【소동파(蘇東坡)의 시로 맛보는 한시(漢詩)의 멋】<전언(前言)>중국 시의 관형어로 우리가 쉽사리 ‘당(唐)’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당대(唐代)에 이백(李白)이나 두보(杜甫)와 같은 불세출의 대시인들이 끊임없이 출현한 때문이지만, 송대(宋代)의 송시(宋詩) 또한 그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중국 시 세계의 한 축이 되고 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송대 최고의 시인이라 할 수 있는 소동파(蘇東坡)의 시를 통해 당시(唐詩)와는 또 다른 송시의 맛을 보며, 작은 기쁨에도 만족할 줄 알았던 시인의 따스한 품새를 느껴보도록 하자. ***** 겨울은 눈이 있어 비로소 공평한 계절이 된다. 옛사람들도 모든 것을 새하얗게 덮은 설원(雪原)을 무척이나 사랑했다는 사실은 아래에 소개할 소동파의 시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 순백의 설원을 보며 옛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설원을 노래한 시를 통해 무슨 말을 들려주고자 했을까? 여기 소동파의 시가 들려주는 작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雪後到乾明寺遂宿(설후도건명사수숙) 門外山光馬亦驚(문외산광마역경)階前屐齒我先行(계전극치아선행)風花誤入長春苑(풍화오입장춘원)雪月長臨不夜城(설월장림불야성)未許牛羊傷至潔(미허우양상지결)且看鴉雀弄
문화 [원시]서시 나희덕 단 한 사람의 가슴도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도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내 마음의 군불이여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태헌의 한역]序詩(서시) 到今未熱一人胸(도금미열일인흉)蒙蒙煙氣加又加(몽몽연기가우가)吾人心地冗火兮(오인심지용화혜)盡熄而滅尙遠耶(진식이멸상원야) [주석]· 序詩(서시) : 책의 첫머리에 서문 대신에 쓴 시(詩)나 장시(長詩)에서 서문 비슷하게 첫머리에 별도의 장(章)을 마련하여 쓴 시(詩)를 가리킨다.· 到今(도금) : 지금까지, 지금껏. / 未熱(미열) : 아직 ~을 뜨겁게 하지 못하다, 아직 ~을 지피지 못하다. / 一人胸(일인흉) : 한 사람의 가슴.· 蒙蒙(몽몽) : 무성하다. 무성한 모양. / 煙氣(연기) : 연기. / 加又加(가우가) : 더하고 또 더하다, 더해지고 또 더해지다, 원시의 “(연기만) 내고 있는”을 약간 달리 표현한 것이다.· 吾人(오인) : 나. / 心地(심지) : 속마음, 마음. / 冗火(용화) : 군불의 한역어(漢譯語)로 역자가 임의로 만들어본 한자어이다. 시에 쓰인 ‘군불’이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군불과는 다르기 때문에, ‘쓸데없는 불’을 의미하는 ‘冗火’로 조어(造語)하였던 것이다. / 兮(혜) : ~여! ‘兮’는 호격(呼格) 조사이다.· 盡熄而滅(진식이멸) : (불이) 다 꺼져서 사라지다. 원시에 사용된 어근 ‘꺼지다’를 역자가 글자를 늘려 옮긴 표현이다. / 尙(상) : 오히려, 아직. / 遠(원) :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멀다. / 耶(야) : ~하느냐, 이냐? ‘耶’는 의문 어기사(語氣詞)이다. [한역의 직역]서시 지금껏 한 사람의 가슴도 못 지피고무성한 연기만 더하
[원시]書鏡(서경) 李彦迪(이언적) 觀書正吾心(관서정오심)照鏡正吾貌(조경정오모)書鏡恒在前(서경항재전)須臾可離道(수유가리도) [주석]· 書鏡(서경) : 책과 거울.· 李彦迪(이언적) :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이다. 조선 시대 성리학(性理學)의 정립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주희(朱熹)의 주리론(主理論)을 정통으로 확립하여 이황(李滉)에게 전해 주었다.· 觀書(관서) : 책을 보다. / 正吾心(정오심) : 내 마음을 바로잡다.· 照鏡(조경) : 거울에 비추다, 거울을 보다. / 正吾貌(정오모) : 내 모습을 바로잡다.· 恒(항) : 항상, 늘. / 在前(재전) : 앞에 있다.· 須臾(수유) : 잠시. / 可(가) : 어찌, 어떻게. / 離道(이도) : 도(道)를 떠나다. [번역]책과 거울 책을 보며 내 마음 바로잡고거울 보며 내 모습 바로잡네책과 거울이 늘 앞에 있으니잠시인들 어찌 도를 떠나랴! [번역노트]책과 거울은 그 옛날 선비들의 사랑방이나 글방에 거의 예외 없이 있었던 물건들이다. 책이야 그렇다고 쳐도 거울은 왜? 라며 다소 의아해할 독자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거울도 안 보는 여자>라는 노래에 익숙한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고려 시대 이규보(李奎報) 선생이 <경설(鏡說)>이라는 글에서, “옛사람이 거울을 본 것은 그 맑음을 취하고자 함이었다.[古之對鏡 所以取其淸]”라고 한 대목에서 알 수 있듯, 옛날 선비들은 용모를 꾸미는 용도로 거울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거울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자신이 타인이라는 거울에 어떻게 비칠까 하는 점을 염려하며, 인
※ 이 칼럼은 원래 11월 22일에 발행할 예정이었지만, 칼럼의 시의성(時宜性)을 고려하여 부득이 오늘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칼럼은 2주 후인 11월 29일이 아니라, 3주 후인 12월 6일에 발행할 예정이니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시]○○(○○) 鄭谷(정곡) 또는 劉義(유의) 返蟻難尋穴(반의난심혈)歸禽易見窠(귀금이견과)滿廊僧不厭(만랑승불염)一個俗嫌多(일개속혐다) [주석]· 鄭谷(정곡) : 당말(唐末)의 시인으로 자(字)는 수우(守愚)이다. 그의 관직이 도관낭중(都官郞中)이어서 사람들이 정 도관(鄭都官)이라 칭하였고, 또 자고시(鷓鴣詩)로 이름을 날렸기 때문에 정자고(鄭鷓鴣)로 일컫기도 하였다. 승려 제기(齊己)가 쓴 <조매(早梅)>라는 시의 ‘수지(數枝)’를 ‘일지(一枝)’로 고쳐준 일로 인하여 일자사(一字師)로 추앙을 받기도 하였다.· 劉義(유의) : 당대(唐代)의 시인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 자세한 사항은 알 수가 없다.· 返蟻(반의) : 돌아가는 개미. / 難(난) : ~하기가 어렵다. / 尋穴(심혈) : 구멍을 찾다.· 歸禽(귀금) : 돌아가는 새. / 易(이) : ~하기가 쉽다. / 見窠(견과) : 둥지를 발견하다, 둥지를 찾다. ‘窠’가 ‘巢(소)’로 된 책도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압운자 자리기 때문에 ‘巢’로 ‘窠’를 대신할 수는 없다.· 滿廊(만랑) : 복도 또는 행랑에 가득하다. / 僧(승) : 스님. / 不厭(불염) : 싫어하지 않다.· 一個(일개) : 한 개, 하나. / 俗(속) : 세속, 세속의 사람(들). / 嫌多(혐다) : 많음을 싫어하다, 많다고 싫어하다. [태헌의 번역]○○ 돌아가는 개미는 구멍 찾기 어렵겠고돌아가는 새는 둥
[원시]가을 입술 유은정 붉은 잎이립스틱 바른 입술 같아서가을이 하는 말들을 수 있을까봐 살짝 귀 대어 봅니다 [태헌의 한역]秋脣(추순) 枝端一紅葉(지단일홍엽)恰似口脂脣(흡사구지순)或可聽秋語(혹가청추어)輕輕着耳輪(경경착이륜) [주석]· 秋脣(추순) : 가을 입술.· 枝端(지단) : 가지 끝.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一紅葉(일홍엽) : 하나의 붉은 잎. 이 대목의 ‘一’ 역시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恰似(흡사) : ~과 흡사하다, ~과 같다. / 口脂脣(구지순) : 립스틱을 바른 입술. ‘口脂’는 입술연지, 곧 립스틱이나 루즈를 가리키는 말이다.· 或可(혹가) : 어쩌면 ~을 할 수 있을 듯하다. / 聽(청) : ~을 듣다. / 秋語(추어) : 가을의 말, 가을이 하는 말· 輕輕(경경) : 가볍게, 살짝. / 着(착) : ~을 대다, ~을 부착하다. / 耳輪(이륜) : 귀. 현대 중국어에서는 귓바퀴라는 뜻으로 많이 쓰나 한문에서는 ‘耳’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한역의 직역]가을 입술 가지 끝에 붉은 잎 하나립스틱 바른 입술 같아서가을의 말 들을 수 있을까봐살짝 귀를 대어 봅니다 [한역노트]역자는 이 시를 처음 본 순간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리차드 클레이더만(Richard Clayderman)이 연주한 <가을의 속삭임>이라는 피아노곡을 떠올렸다. 이 연상(聯想)은 당연히 “가을이 하는 말”이라는 시구 때문이었을 것이지만, 이즈음만 되면 거의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선율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가을의 속삭임>이라는 사실도 이유의 하나로 들 수
[원시]詠○(영○) 李山海(이산해) 一腹生三子(일복생삼자)中者兩面平(중자양면평)秋來先後落(추래선후락)難弟又難兄(난제우난형) [주석]· 詠(영) : ~을 읊다, ~을 노래하다.· 李山海(이산해) : 조선 선조(宣祖) 대에 영의정을 두 차례나 지냈으며, 북인(北人)의 영수였다. 시서화(詩書畵)에 두루 능하였고, 저서에 ≪아계유고(鵝溪遺稿)≫가 있다.· 一腹(일복) 한 배. / 生三子(생삼자) : 세 아들을 낳다, 세 자식을 낳다.· 中者(중자) : 가운데 녀석. ‘中者’가 ‘仲男(중남)’이나 ‘仲子(중자)’로 된 데도 있다. 둘 다 둘째 아들이라는 뜻이다. / 兩面平(양면평) : 양쪽 얼굴이 평평하다, 양쪽 뺨이 넓적하다.· 秋來(추래) : 가을이 오다, 가을이 되다. / 先後落(선후락) : 선후로 떨어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떨어지다.· 難弟(난제) : 동생이라 하기 어렵다. / 又(우) : 또. / 難兄(난형) : 형이라 하기 어렵다. ※ 이 구절은 성어 ‘난형난제(難兄難弟)’를 풀어서 쓰며 난형과 난제의 위치를 바꾼 것이다. [태헌의 번역]○을/를 읊다 한 배로 세 자식을 낳았는데가운데 녀석은 양쪽 뺨이 넓적하네가을이 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떨어지니동생이라 하기도, 또 형이라 하기도 어렵네 [번역노트]역자는 청소년 시기에 한시(漢詩)를 읽고 전율을 느낀 적이 몇 차례 있었는데, 이 시 역시 그 가운데 하나였다. 고교 시절에 한문자습서던가 문학자습서에서 이 시를 처음으로 보고 시쳇말로 감전이 된 듯한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기만 하다. 이산해(李山海) 선생이 열 살이 되기도 전에 지은 작품이라는 설명을 읽는 순간에 느꼈던 일종의 열등감은 오래
[원시]욕심 공광규 뒤꼍 대추나무는약한 바람에 허리가 뚝 꺾였다 사람들이 지나며 아깝다고 혀를 찼다 가지에 벌레 먹은 자국이 있었나?과거에 남모를 깊은 상처가 있었나?아니면 바람이 너무 드셌나? 그러나 나무 허리에선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너무 많은 열매를나무는 달고 있었다 [태헌의 한역]慾心(욕심) 後院一棗樹(후원일조수)弱風腰忽折(약풍요홀절)人衆時來往(인중시래왕)哀惜頻嘖舌(애석빈책설)枝或有蟲食(지혹유충식)風或甚猛烈(풍혹심맹렬)然而樹腰邊(연이수요변)全然無所缺(전연무소결)嗟乎吾始覺(차호오시각)樹實太多結(수실태다결) [주석]· 慾心(욕심) : 욕심.· 後院(후원) : 후원, 뒤꼍. / 一棗樹(일조수) : 한 그루의 대추나무.· 弱風(약풍) : 약한 바람. / 腰(요) : 허리. / 忽(홀) : 문득. 원시의 “뚝”에 대한 대응어로 역자가 임의로 골라본 한자이다. / 折(절) : 꺾이다, 부러지다.· 人衆(인중) : 사람들. / 時(시) : 이따금. / 來往(내왕) : 오고가다, 오가다.· 哀惜(애석) : 불쌍하게 여기다, 아깝게 여기다. / 頻(빈) : 자주.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嘖舌(책설) : 혀를 차다.· 枝或(지혹) : 가지가 혹시, 가지에 혹시. 여기서 ‘或’은 ‘어쩌면’이라는 뜻으로 가벼운 의문을 나타낸 말로 이해하면 된다. / 有蟲食(유충식) : 벌레 먹은 것이 있다, 벌레 먹은 데가 있다.· 風或(풍혹) : 바람이 혹시. / 甚(심) : 심하다, 심하게. / 猛烈(맹렬) : 맹렬하다, 드세다.· 然而(연이) : 그러나. / 樹腰邊(수요변) : 나무 허리 주변, 나무 허리 근처.· 全然(전연) :
<사진 출처 : Baidu>【특집 칼럼】 이 땅의 모든 약사님들을 위하여 약은 우리의 육신을 치유해주는 시이고시는 우리의 영혼을 치유해주는 약이다 [원시]尋隱者不遇(심은자불우) 賈島(가도)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言師採藥去(언사채약거)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 [주석]· 尋(심) : 찾다, 방문하다. / 隱者(은자) : 은자, 은사(隱士). / 不遇(불우) : 만나지 못하다.· 賈島(가도) : 당(唐)나라 말기의 시인으로 자는 낭선(浪仙)이다. 애초에 승려가 되었다가 환속하여 장강 주부(長江主簿)를 지내기도 하였지만, 일생을 독신으로 가난하게 살았다. 퇴고(推敲)라는 말의 유래가 된 유명한 일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松下(송하) : 소나무 아래. / 問童子(문동자) : 동자에게 묻다.· 言(언) : 말하다. 여기서는 대답의 뜻으로 쓰였으며, 시 끝까지가 동자의 대답이다. / 師(사) : 스승. 여기서는 은자를 가리킨다. / 採藥去(채약거) : 약을 캐러 가다. 약은 약초(藥草)를 의미한다.· 只(지) : 다만, 오직. / 在(재) : 있다. / 此山中(차산중) : 이 산 속.· 雲深(운심) : 구름이 깊다. / 不知處(부지처) : 있는 곳[處]을 알지 못하다. [번역]은자(隱者)를 찾아왔으나 만나지 못하고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었더니“선생님께서는 약을 캐러 가셨는데다만 이 산 속에 계시기는 하지만구름이 깊어 계신 곳을 모르겠습니다.”라 하네. [번역노트]이 시는 퇴고(推敲)의 고사로 유명한 당(唐)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흔히들 가도가 시어(詩語)의 조탁(雕琢)에만 고심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시의(詩意)의 연마(鍊磨)에도 각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