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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권
    조성권
    The Lif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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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약력
    우리은행 홍보실장, 서여의도지점장
    예쓰저축은행장/대표이사
    국민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이투데이 선임연구위원
    현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소개 글
    2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만큼 살다 보니 그때는 듣기 싫던 잔소리가 나를 이만큼이나 키워준 거란 걸 알았습니다.
    그 지겹던 잔소리들이 모두 고사성어에서 나온 거란 걸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부모 등을 보고 배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불초(不肖)‘라는 고사성어에도 나오듯 아버지를 닮지 못합니다.
    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인성이 더없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시집간 딸이 딸을 낳고 장가든 아들이 아들을 낳아 손주가 생기고 나니 손주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아버지의 고사성어를 100여 개 추려 잔소리를 회억해냈습니다.
    • 높이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 출발해야 한다

      중학교 1학년 때 국어를 담당하던 여선생님이 작문 숙제를 내줬다. 자유 주제였다.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형식에 상관없이 써오라고 했다. 잘 쓰고 싶었다. 몇 날을 끙끙댔다. 숙제를 내야 하는 전 날밤엔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있었다. 평상시와 다른 행동을 눈치챈 아버지가 사정을 듣자 대뜸 “잘 쓰려고 그러는구나”라고 했다. 이어 “자유 주제가 어렵다. 그래서 엄두가 안 나는 거다”라고 했다. ‘엄두’란 말을 그날 처음 배웠다. 엄두는 한자어 ‘염두(念頭)’에서 온 말이다. 염두에서 엄두로 변하는 현상을 변음이라고 한다. 한 몸에서 나온 엄두와 염두는 부정적인 의미와 긍정적인 의미로 각기 변했다. 염두는 마음의 속이나 ‘생각의 맨 처음’이라는 말이다. 우리말처럼 된 엄두는 흔히 부정적인 말과 어울려 쓴다. ‘감히 무슨 일을 하려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엄두가 안 난다’라는 말은 어떤 일을 시도하기가 두렵거나 어려운 경우에 쓴다. ‘엄두 나기’는 조선 시대에 쓰던 말로, ‘엄두’와 ‘나다’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말이다. 아버지는 글 쓰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 번째는 두려움 때문이다. 실패하거나, 실망하거나, 상처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두 번째는 부족함이다. 네가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도전하기 어렵다. 성공할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네가 글을 써본 일이 없을 테고 쓴 글이 없으니 실패한 적이 없어 글쓰기가 두려운 것은 아니라고 아버지는 지적했다. “네가 잘 쓰려는 마음이 엄두가 나지 않게 하는 원인이다”라고 진단했다. “엄두가 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면, 극복하기 쉽다”라고 전제한 아버지는 “두

      2023-10-24 16:07
    • 나서야 할 땐 반드시 나서라

      병원 원장실 유리창을 깼다. 하굣길에 학교 앞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서 축구를 하다 벌어진 일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친구들 여럿이서 공 뺏기를 하다 찬 공이 하필이면 그쪽으로 날아갔다.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비명이 들리자 우리는 모두 놀라 학교로 되돌아 도망쳤다. 이튿날 담임 선생님이 수업 시작 전에 어제 병원 옆에서 공놀이한 학생들을 불러 세웠다. “누군지 다 알고 있다”라는 말에 모두 나왔다. 병원장이 학교에 항의하며 학생들이 찾아와 사과하면 용서해주겠다고 했다며 선생님과 같이 갈 학생들은 따라나서라고 했다. 나는 같이 가지 않았다. 학교 끝나고 집에 왔을 때 담임 선생님이 아버지를 만나고 가는 걸 봤다. 아버지는 그날 바로 부르지 않았다. 긴 하루가 더 지나고서야 아버지가 불렀다. 아버지는 선생님이 찾아와 한 얘기를 알려줬다. "도망가는 학생 중에 병원 옆집 사는 아이를 봤다. 그래서 그 학생 담임 선생님을 찾았다. 병원장이 '옆집 학생이 낀 거니 사과만 받으라'고 했다"는 거였다. 아버지는 두 가지를 문제 삼았다. 사과하러 갈 때 같이 가지 않은 일과 어제 선생님이 다녀간 걸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는 점을 들었다. 변명해보라고 했다. 유리창을 깬 그 공은 내가 차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애를 잘못 키웠다"라고 자책하며 이전과 다르게 심하게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날 비장하게 하신 말씀은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아버지는 "살아가며 잘못하거나 실수를 저지르거나 사고를 칠 수도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이유는 사과하거나 용서를 빌거나 사고를 수습해 같은 일이 더 벌어지지 않게 하는 지각이 있어서

      2023-10-17 14:42
    • 힘 있는 말은 간명하다

      평소와 다르게 아버지는 소파에서 등을 떼고 내 말을 경청했다. 군 복무 중 포상휴가를 받아 아버지 회사에 들렀을 때다. 비서 안내를 받아 사장실로 들어가자 아버지는 놀란 표정이었다. 아버지가 전에 없이 내 말에 관심을 보이자 신나서 여러 얘기를 했다. 아무나 포상휴가를 받지는 않는다. 비록 일등병이지만 군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다. 주로 하는 일은 군의 작전계획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자 더는 말할 게 없었다. 휴가 중에 쓸 용돈이나 얻으러 들렀으나 그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말을 마치자 아버지가 “네가 말하려는 게 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대답도 못 했다. 아버지는 “삶은 전쟁이다. 집이 아닌 내 삶의 전쟁터 같은 직장으로 찾아왔으면 특별히 할 말이 있을 줄 알았다. 네가 한 말은 전장에서 할 게 아니다”라고 야단쳤다. 이어 아버지는 “목적 없는 말은 힘이 없다. 힘없는 말은 맥쩍다. 힘 있는 말은 간명하다”라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최고 브리핑은 송요찬 수도사단장이 전쟁 중 미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방한한 아이젠하워에게 한 영어 브리핑을 꼽는다”라고 예를 들었다.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아버지가 말씀하신 송 사단장의 전황 브리핑은 이랬다. “이게 대한민국 지도입니다. 이쪽이 일본과 접한 동쪽, 중공과 접한 이쪽이 서쪽, 소련과 맞댄 북이 중공군과 남으로 침공했습니다. 각하가 있는 곳은 여깁니다. 적과 대치한 여기가 38선입니다. 현재 아군 사기는 100%, 계속 진군 중입니다.” 아버지는 “말은 때와 장소를 가려 해야 한다. 브리핑은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을 해야 한다”며 “아이젠하워는 브리핑을 받고 송 장군에게 ‘내 군 생활

      2023-10-10 17:12
    • 익숙함은 오직 연습에서 나온다

      아버지가 생을 마감했다. 음력으로 2003년 9월 23일. 올해가 20주기다. 부음은 거래처와 점심에 폭탄주를 많이 마셔 잠깐 졸고 나서 들었다. 더 사실 줄 알았는데 갑작스러웠다. 본가로 가는 차 안에서 전화로 장례식장 등 장의 절차 논의를 끝냈다. 아버지는 당신의 방에 언제나처럼 그대로 누워계셨다. 눈을 뜬 채 미간을 약간 찌푸린 모습이 당장 일어나 지난주에 오지 않은 것을 질책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못 할 짓이 사람 기다리는 걸 텐데 찾아뵙질 못한 게 후회됐다. 뒤이어 도착한 남동생에게 어머니가 눈을 감겨드리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중풍으로 오른쪽을 쓰지 못하는 아버지는 5년째 누워 지냈다. 말씀하지 못해 주로 한자로 필담(筆談)을 나눴다. 머리맡의 잡기장에는 나와 지난주에 나눈 뒷장에 한 글자만 쓴 장이 더 펼쳐져 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글자다. 남기고 싶은 마지막 필담은 그렇게 유언이 됐다. 누워서 종이를 보지 못하고 떨리는 왼손으로 쓴 글씨는 글자라기보다 차라리 그림이었다. 획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나는 바로 읽었다. ‘익힐 습(習)’자였다. 성격 급한 아버지를 닮은 속필(速筆)이자 달필(達筆)을 나는 언제나 글자를 마무리하기 전에 알아맞혔다. 한참이나 그리듯 썼을 그림 같은 글자가 뭘 뜻하는지는 그래서 대번에 알아봤다. 워낙 여러 번 말씀하셨던 글자였기 때문이다. 틈날 때마다 아버지가 가장 많이 인용한 고사성어가 ‘여조삭비(如鳥數飛)’다. 그래서 가장 많이 들은 성어다. ‘셀 수(數)’ 자는 여기서는 ‘자주 삭’으로 읽는다. ‘새가 자주 하는 날갯짓과 같다’라는 말이다. 쉬지 않고 배우고 익힘을 비유한 말이다. 아

      2023-10-04 10:00
    • 지킬 수 있어야 전통이다

      내가 중학교 다니던 때 추석날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상차림을 두고 크게 다퉜다. 끝내 차례를 모시지 못 하는 일이 벌어졌다. 진설된 차례상을 점검하던 큰아버지가 “배는 왜 안 올리느냐?”고 했다. 독촉하는 큰소리가 나자 배 한 개를 담은 접시가 상에 받쳐 들여왔다. 큰아버지는 대뜸 “왜 한 개냐”고 했고, 더 큰소리가 나자 큰어머니가 세 개 중 하나가 썩은 게 있어 빼다 보니 홀수를 맞춰야 해 하나만 올렸다고 설명했다. 큰어머니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질책하는 더 큰소리가 났다. 아버지가 얼른 중재에 나섰다. “괜찮습니다. 하나면 어떻고 둘이면 또 어떻습니까. 썩은 놈을 도려내려면 배 세 개를 모두 그만큼 도려내고 상에 올리면 되잖아요”라며 말을 거들었다. 큰아버지는 바로 “정신 나간 소리”라고 일축하며 당장 배를 구해다 상을 올바르게 차리라고 했다. 큰아버지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아버지는 전통은 상황에 따라 변해도 된다는 주장이었다. 심지어 아버지가 절충안으로 사과와 배, 감을 모두 한 개씩만 놓자고도 했으나 큰아버지는 “차례는 정성이다. 정성을 들이지 않은 차례는 안 지낸다”라며 건넌방으로 나가버렸다. 화난 아버지는 집에 가자며 따라나서라고 엄명했다. 해가 이제 막 뜨는 동네를 벗어나며 분을 삭이지 못한 아버지는 혼잣말해댔다. “형편이 닿지 않으면 종이에 ‘배’라고 써서 올리거나 물만 떠놓고도 지내면 되는 거다. 배가 안 나는 지방에서는 상에 올리지도 않는다”고 했다. 집에 와서 아버지가 길게 설명한 과일을 상에 올리는 이유다. ‘조율이시(棗栗梨柿)’는 대추와 밤과 배와 감이다. 대추는 씨가 하나이

      2023-09-26 13:34
    • 효는 실천이다

      인삼을 쪄 꿀에 재서 오래 두고 먹는 ‘인삼 꿀절임’을 안 건 대학 다닐 때였다. 해 뜨기 전 곤한 잠을 깨운 건 아버지였다. 가족들 깨지 않게 조용히 따라오라고 했다. 차를 타고 간 게 경동시장. 가게 문을 열기 전이라 근처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버지는 이전부터 아는 집처럼 쉽게 인삼가게를 찾아들어 갔다. 주인이 문 여는 걸 도와주며 꿀에 잴 인삼을 달라고 했다. 주인은 바로 “어제 들어온 최고 삼”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달라는 대로 대금을 치렀다. “어머니 드릴 약이라 깎으면 부정 탑니다”라자 주인이 고맙다며 대신 인삼을 따로 좀 싸줬다. 어머니에게 할머니께 드릴 거라고 하자 마뜩잖은 표정으로 인삼을 씻고 찌면서 내내 군소리를 했다. “인삼은 이렇게 크고 굵은 거보다 좀 가늘고 작은 게 약효가 더 있다. 이 많은 걸 노인네가 은제 다 드시겠냐? 옛말에 인삼 많이 먹으면 죽을 때 고생한단다. 한 푼도 안 깎았지? 이런 거는 인삼을 아는 내가 사야 제대로 된 실한 놈을 사는 건데 형편 모르는 양반이 헛돈 쓴 거다”라며 아쉬워했다. 고향 큰댁에 계시는 할머니께 드리려고 가는 보자기에 싼 인삼 꿀절임은 몇 걸음 걷고 나서 손을 번갈아 들 만큼 무거웠다. 보자기를 풀고 아버지가 인삼을 꺼내 할머니 입에 넣어드렸다. 연신 웃으며 “나이 든 분들 면역력을 키우는 데는 이게 최고”라고 몇 번이나 말씀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아버지는 흡족해하며 고사성어 ‘육적회귤(陸績懷橘)’을 입에 올려 당신의 어머니께 드린 인삼 꿀절임의 의미를 새겼다. 이 성어는 육적이 여섯 살 때 아버지 육강(陸康)과 함께 당대의 명문거족 원술(袁術)을 만났을 때 육 씨 부자에게 귤

      2023-09-19 14:44
    • 가족이 먼저다

      회사가 부도가 나 회생이 어렵다고 판단해 경영권을 넘기고 나서 아버지는 심한 화병을 앓았다. 믿었던 부하 직원의 배신에 몸서리쳤다. 분노나 답답함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억지로 꾹 눌러 담았다가, 그 화가 삭아 비틀어져서 생긴 심화병(心火病)이다. 지나칠 정도로 화를 잘 내는 다혈질 성격 때문에 가족들이 가까이 가질 않았다. 언제나 독상(獨床)을 받아 혼자 드셨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다. 가끔 내가 겸상을 해도 많이 불편했다. 아버지는 약도 별로 없는 울화병(鬱火病)을 겪어냈다. 밤새 불이 켜진 아버지의 방, 불면의 밤을 지켜보는 가족은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군 장교로 근무하는 남동생이 TV와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사 보냈다. 다른 가족들도 좋아했지만, 특히 어머니가 무척이나 기뻐했다. 오랜만에 두레반에서 저녁밥을 먹을 때 어머니가 “냉장고에 넣은 김치가 참 맛있다. 냉장고가 커서 좋다”고 몇 번이나 말씀했다. 그때 아버지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건넌방으로 가서 나를 불렀다. 불길이 안 들어가 냉골이라고 투덜거린 게 기억났던지 방을 치우라고 했다. 온 방에 불을 켜고 밥 먹던 가족들을 불러 건넌방 구들장을 뜯어내고 새로 깔았다. 시멘트로 방바닥 마무리를 끝냈을 땐 이미 밤이 이슥해서였다. 이튿날 새벽부터 집 고치는 크고 작은 공사는 계속됐다. 안방으로 물이 새는 지붕에는 내가 올라가 기와를 갈아 끼웠다. 모든 창문은 대패로 깎아내 부드럽게 열리게 고쳤고, 깨진 계단은 모두 수리했다. 집을 새로 짓는 것처럼 대대적인 집안 수리공사는 한 달이나 계속됐다. 손 안 본 데가 없을 정도로 수리를 마친 아버지는 느닷없이 마루방에 걸려있

      2023-09-12 10:50
    • 환경 탓하지 마라

      언덕에 지은 집으로 이사했다. 대학 다닐 때다. 이삿짐 오기 전에 먼저 온 아버지는 지붕만 빼고는 모두 꼼꼼하게 살폈다. 문이란 문은 다 여닫아보고 수도꼭지는 물이 잘 나오는지를 살폈다. 집 감정하는 사람처럼 물을 부어 가며 하수구들도 빼놓지 않고 점검했다. 집 뒤 좁은 골목까지 둘러본 뒤, 이중으로 된 비탈진 텃밭을 살피던 아버지가 밖으로 나갔다. 집 오른쪽으로 흘러내리는 실개천 옆의 담벼락도 유심히 보았다. 한참 지나 아버지가 밖에서 불렀다. 아버지는 지팡이로 실개천을 건너는 나무뿌리를 가리켰다. 개천 바깥쪽으로 몇 가닥 나무뿌리가 드러나 보였다. 나무뿌리는 줄기가 되어 담벼락을 뚫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와서야 그게 오동나무인 줄 알았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큰 나무여서 마당 한쪽을 넓은 이파리로 그늘을 만들었다. 의자를 갖다 놓고 앉자마자 아버지는 “참 멋진 벽오동(碧梧桐)이다”라고 확인하며 “봉황은 벽오동에만 둥지를 튼다고 해 조선 시대에 왕의 상징으로 많이 심었다”라고 했다. 아버지가 “화투에서 ‘똥’이라 부르는 건 오동나무 잎이다. 화투가 일본에서 넘어오면서 오동잎을 완전히 검게 칠해 못 알아볼 뿐이다. ‘똥광’의 새도 닭이 아니라 봉황이다”라고 설명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설명은 계속됐다. 나뭇결이 아름답고 습기와 불에 잘 견딜뿐더러 가벼우면서도 마찰에 강해 가구를 만드는 좋은 목재다. 예전에는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어 혼수를 대비하기도 했다. 소리를 전달하는 성질이 뛰어나 악기를 만드는 데에도 쓴다. 가야금은 오동나무를 통째로 깎아 만든다. 거문고나 아쟁 앞판은 오동나무, 뒤판은 밤나무로 제작

      2023-09-06 09:25
    • 초심을 잊지 마라

      국을 마실 때 아버지는 국그릇을 양손에 받쳐 들었다. 비운 밥그릇에 물을 부어 마실 때도 꼭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마셨다. 결혼해서 부모님과 같이 살 때다. 며느리가 시집올 때 예물로 해온 백자 반상기(飯床器) 그릇을 쓸 때만 그랬다. 다른 그릇으로 마실 때는 한 손만 썼다. 겸상할 때만 그러나 했더니 독상을 받을 때도 그렇게 했다. 궁금해서 여쭸다. 아버지는 “봤구나! 일부러 그렇게 한다. 작가가 도자기를 빚을 때 손길처럼 그릇을 감싸 안아 마시면 그 마음을 느낄 수가 있어서다. 또 요즘 흔치 않은 투박한 백자 밥그릇을 선물한 며느리의 초심도 읽을 수 있어서다”라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예물은 시댁에 대한 예의와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거다. 도자기는 흡수성이 낮아 음식물이 잘 묻지 않고, 내구성이 강해 오래도록 쓸 수 있어 마음에 든다. 조선의 백자를 재현하는 집이 흔치 않은데 용케 구한 그 마음 또한 이쁘다. 더욱이 예부터 반상기는 시부모의 식사를 책임지겠다는 뜻을 나타내며 공경하고 효도하는 마음을 표현한다잖느냐. 매끼 밥을 먹듯 며늘아기의 초심을 그릇에 담아주어 가득한 그 효심을 느낀다”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좋아했다. 자리를 옮긴 아버지는 대뜸 “원인 없는 결과 없고 근원 없는 현상 없다”라는 말을 꺼냈다. 이어 “성급한 사람들은 흔히 결과와 현상만 보고 방안을 찾고 문제를 풀 궁리만 한다. 그렇게 해서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며 일을 해결하려면 근원에 집중하라고 강조했다. 아버지는 근원의 원(源)자는 물 수(氵) 자와 근원 원(原)자가 결합한 글자다. 원(原)자는 언덕(厂)과 샘(泉)을 함께 그린 것으로 바위틈 사이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2023-08-30 09:14
    • 유혹을 이기는 힘은 목표에서 나온다

      종로 담배 가게 골목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담배를 배워 그날 처음 사던 날이다. 나오다 골목으로 들어오는 아버지와 마주쳤다. 서로 놀랐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때다. 뭐라고 말씀드렸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나는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집에서 만난 아버지는 말씀이 없었다. 며칠 뒤 책상 위에 신문 기사 스크랩이 놓여 있었다. 아버지가 가져다 놓은 거였다. 말씀하실 게 있으면 그렇게 신문 스크랩을 책상에 종종 올려놓았다. 스크랩은 히말라야산맥에 사는 ‘할단새’라는 전설의 새 얘기였다. 날개에서 불을 뿜는 이 사나운 할단새도 대설 무렵만은 눈보라에 갇혀 꼼짝 못한다. 혹독한 추위가 몰리는 밤에 할단새는 떨면서 늘 ‘날이 새면 꼭 집을 지으리라’라고 굳게 마음먹지만 따뜻한 낮에는 빈둥빈둥 놀기만 한다. 그렇게 낮에는 즐기다가 밤이 되면 추위에 떨며 후회한다는 내용이었다. 스크랩을 들고 들어가자 아버지는 “할단새 전설은 인간에게 다의적(多義的) 교훈을 준다. 그 기사는 할단새의 망각을 얘기하지만 틀렸다”고 했다. 이어서 “새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망각은 72시간이 지나서 시작된다. 다음 날 아침이면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결심은 아직 살아있어 실행하면 된다. 저 전설이 인간에게 주는 메시지는 해야할 본분이 있는데도 즐기는 데 정신이 팔리는 유혹을 경계한 데 있다”라고 지적했다. 할단새 전설과 관련지어 인용한 고사성어가 ‘다기망양(多岐亡羊)’이다. 여러 갈래로 갈린 길에서 양을 잃는다는 말이다. 학문에는 길이 많아 진리를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열자(列子) 설부편(說符篇)에 나온다.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양자(楊子)의 이웃집 양 한 마리가 도망쳤다.

      2023-08-22 16:38
    • 의지를 품은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

      그해 12월 31일 큰 아이가 태어났다. 사무실에서 송년회 중에 전화를 받았다. 늦장가 간 그해 아들을 얻었다고 누가 얘기하자 엄숙하던 송년회가 축하 술잔이 오가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만취해 동네 산부인과 병원에서 본 내 첫 자식은 그저 핏덩이였다. 신년 연휴라 이튿날 아버지는 바로 퇴원하라고 했다. 언덕길이 내려다보이는 마당에서 아버지는 어머니가 싸안고 온 당신 손자를 포대기를 들추고 빼꼼히 들여다봤다. 짐을 들여놓고 마당으로 나온 내게 아버지는 마침 내리는 눈을 길조(吉兆)라며 서설(瑞雪)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비와 눈을 비교하면서 눈이 더 좋다며 기분 좋아했다. 눈이 내리면 하늘이 맑아서 보기 좋다. 눈은 비보다 녹는 시간이 오래 걸려 땅에 더 오래 머문다. 둘 다 씻어내는 정화작용을 하지만, 눈은 모든 것을 덮어준다. 아버지는 “손자가 집에 오는 날 눈이 내린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축하 선물이다. 손자가 눈의 속성을 닮아 모든 것을 감싸주며 자라기를 바라는 희망의 메시지다”라며 기쁨을 표현했다. 아버지는 “손자는 내 아들의 아들이다. 대를 이어가는 존재다. 사랑과 희망의 대상이다. 내가 다시 한번 부모가 될 수 있으므로 새로운 시작의 뜻이 있다”라면서 새 각오와 희망을 다지게 한다고도 했다. 이어 아버지는 다섯 가지 유념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해 설명했다. 이런 깨우침이다. 자식은 독립적인 인격체다. 그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라. 자식은 네 재산이 아니다.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다. 자식에게 네 희망을 얹지 마라. 아이는 네 삶에 큰 선물이다. 아버지는 “네 자식에게 아버지인 너는 가장 중요한 멘토이

      2023-08-16 17:25
    • "그렇게 할 거면 그만둬라"

      금융실명제는 모든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1993년 8월 12일에 시행됐다. 탈세, 조세포탈, 자금세탁, 불법금융거래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도입은 정부가 했지만, 시행은 거래가 일어나는 금융기관 몫이다. 은행의 대외소통 창구를 담당한 나는 일어난 모든 거래상황을 집계하고 보고했다. 시행 첫날부터 야근이 일상인 날이 이어졌다. 취합된 보고가 매스컴에 보도되면서 금융실명제는 내가 모두 한 것 같았다. 야근을 마치고 술에 취해 귀가하는 것도 일상이었다. 며칠 지나 집 앞에서 손주들을 보고 돌아가는 부모님을 만났다. 길거리서 우쭐한 기분에 금융실명제에 대해 몇 마디 하자 아버지가 따라오라고 호령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본가에 불려간 내게 아버지는 "네가 뭘 했다는 거냐?"고 물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질문 세 가지에 답을 기다리지 않고 "건방 떨지 마라"며 꿇어앉으라고 했다. 술김에 들었지만, 기억이 생생한 첫마디가 고사성어 '득의양양(得意揚揚)' 이다. '뜻을 얻어 날아오를 듯하다'라는 말이다. 원하던 바를 이루어 매우 만족한 모습을 뜻한다. 사기(史記) 관안열전(管晏列傳)에 나온다.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재상으로 3대의 군주를 섬기며 존망 받는 안영(晏嬰)이 수레를 타고 출타했다. 그 수레 모는 마부의 아내가 문틈으로 남편이 일하는 모습을 엿보았다. 마부는 머리 위에 펼친 큰 우산 아래서 채찍질하며 네 필 말을 몰았다. 의기양양하게 매우 흡족한 모습이었다[意氣揚揚 甚自得也]. 마부가 일을 마치고 집에 오자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다. "안자(晏子)께서는 키가 6척이 채 안 되는데도 재상이 되어 제후들에게 명성을 날립니다. 바깥에서

      2023-08-08 16:25
    • 친구는 울타리다

      학교에 신고 간 노랑 고무신을 잃어버렸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다. 서울 다녀온 아버지가 사다 준 노랑 고무신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검은색과 흰색 고무신만 보았던 나는 학교에는 신고 가지 말라고 어머니가 당부했지만 듣지 않고 이튿날 바로 신고 갔다. 아이들도 처음 보는 노랑 고무신을 모두 만져보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 집에 갈 때 텅 빈 신발장을 보고서야 잃어버린 걸 알았다. 여자 친구가 되돌아와 같은 반의 남자아이를 지목하며 품에 뭔가 숨기고 수업이 끝나기 전에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걸 봤다고 알려줬다. 맨발로 집에 돌아온 나를 어머니가 심하게 나무랐다. 여자 친구가 귀띔해준 얘기를 하자 어머니가 나를 끌고 신발을 찾아 나설 때 들어오는 아버지를 만났다. 사정을 들은 아버지는 가지 말라며 내게 “그 친구가 가져간 걸 네 눈으로 본 게 아니면 의심하면 안 된다. 그 친구가 가져간 게 설사 밝혀지더라도 절대 내색하지 말라”고 엄명했다. 그렇게 잊힌 노랑 고무신이 소환한 건 아버지다. 고등학교 다닐 때다. 고향 큰집에서 추석 차례가 끝나자 아버지가 불쑥 그 친구를 만나느냐고 물었다. 중학교 졸업한 뒤로는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전에 살던 옛집에 가보자고 앞장섰다. 옛집의 뒷담 구실을 하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한참 둘러본 아버지가 둔덕에 앉아 꺼낸 고사성어가 ‘송무백열(松茂柏悅)’이다. 중국 서진(西晉)의 문학가 육기(陸機)가 쓴 탄서부(歎逝賦)에 나온다. 그가 “참으로 소나무가 무성하매 잣나무가 기뻐하고, 아! 지초가 불타자 혜초가 탄식하네[信松茂而柏悅 嗟芝焚而蕙歎]”라고 쓴 데서 따온 말이다. 벗이 잘되는 것을 기뻐해 함께 축하해 준다

      2023-08-01 17:08
    • 거짓이 거짓을 부른다

      “나는 평생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다리를 다쳐 뛰어 도망칠 수 없어서다. 거짓말은 곤란한 그 상황을 벗어나려는 기만의 술책일 뿐이다.” 자주 하신 아버지의 저 말씀을 처음 들은 건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외출에서 돌아온 부모님이 남동생과 내가 호박엿 먹는 걸 보고 무슨 돈으로 샀느냐고 했다. 내가 얼른 “지난번 오신 손님이 주신 용돈으로 샀다”라고 했다. 아버지 책상 위에 있는 돈으로 산 걸 둘러댄 거짓말은 이내 들통났다. 엿장수가 찾아와 “이 집 아들 둘이 큰돈을 가져왔길래 엿을 먼저 줬다”며 어머니에게 거스름돈을 내밀고 나서다. 무심결에 한 거짓말의 벌은 혹독했다. 아버지는 바로 옷을 벗으라고 했다. 팬티까지 다 벗기고 내쫓았다. 벌거숭이인 채로 둘은 초겨울의 논 한가운데 서서 길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려고 애를 썼다. 소문이 그새 퍼져 구경꾼들이 몰려왔다. 해 질 녘에 어머니가 아버지 눈을 피해 울고 있는 둘을 싸안고 건넌방으로 들어왔다. 화난 아버지는 살림의 반은 두들겨 부쉈다. 방에 들어왔어도 오들오들 떨며 독한 한기를 느꼈다. 이튿날부터 연이틀에 걸쳐 아버지는 거짓말하지 말 것을 다짐받았다. 거짓말에 대한 가르침은 훗날에도 계속됐다. 아버지는 “사람은 하루에 한두 번 정도 거짓말한다. 하루에 한 말의 2%는 거짓말이다”라는 자료를 보여줬다. 거짓말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대부분은 “자기 잘못을 숨기기 위해서다”라고 분석한 아버지는 “거짓말은 해법이 아니라 감출 뿐이다. 감추는 행위가 가장 나쁘다. 진실을 가리기 때문이다. 거짓을 진실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확신시켜 진실을 은폐하는 속임수다”라며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되는 첫

      2023-07-25 18:05
    • 갈등 해결의 열쇠는 공감력이다

      결혼 전날 밤 아버지가 시부모와 같이 살겠다고 한 내 아내를 칭찬한 뒤 한 얘기다. 들려준 옛 얘기는 이렇다. 아내가 남편한테 늙은 시어머니를 느닷없이 장에 내다 팔라고 했다. 기가 막혔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지게에 업고 장날에 팔러 갔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고운 반지와 맛있는 국밥을 사드리며 “집에 어미가 사드리라고 했어요”라고 했다. 못 팔고 돌아오자 성화를 부리는 아내에게는 “몸이 야위어서 거들떠보지 않더라. 몇 가지 보신 될 만한 걸 사 왔으니 살찌워 다음 장날에 팔겠다”라고 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 살을 찌우기 위해 정성을 다해 음식을 해 받쳤다. 다음 장에도 팔지 못하고 온 남편은 아내에게 “아직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며느리가 해준 음식이며 아들이 대신 사준 반지 등을 자랑했다. 모두 며느리가 해준 거라며. 동네에 며느리 칭송이 자자했다. 칭찬을 여럿한테 들은 아내는 더욱 정성으로 시어머니를 모셨다. 볼살까지 오른 어머니를 장날에 팔러 나가려 하자 아내가 남편에게 “잘못했다. 팔지 말라”며 울며 매달렸다. 아버지는 “민간에 오래 전해지긴 하지만, 비현실적인 중재법이다”라면서 그래도 오래 입에 올려진 이유를 고부간 갈등에서 아들이자 남편인 중간자 역할의 중요성 때문으로 해석했다. 아버지는 “이제 며느리가 이 집에 들어와 같이 살면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서로 다른 문화, 가치관, 경험이 있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게 걱정이다. 네가 중재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아버지는 “이쪽에 얘기할 땐 이편이 돼야 하고 저쪽에 얘기할 땐 그쪽 편이 돼야 한다. 너는 마중물이다. 남편은 내 편이고 아

      2023-07-18 16:54
    • 책은 숨 쉬듯 읽고 또 읽어라

      아버지 앞으로 책이 우편으로 왔다. 펴보지 않고 만지기만 하다 책상에 올려놓았다. 아버지는 봉투를 건네주며 책값을 우편환으로 끊어 보내라고 했다. 때로 선물이 들어오면 아버지는 같은 품목으로 사서 꼭 보냈다. 그러나 책 선물은 처음이었다. 며칠 지나도 책상 위의 책은 펴보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한 달쯤 지나 책을 보니 물에 불은 듯 두꺼웠다. 선물 받은 책은 군데군데 볼펜으로 끝도 없이 메모가 되어 있었다. 여백이 없는 데는 메모한 종이를 덧대 여러 장을 겹쳐 붙여 본래 보다 두 배는 두꺼웠다. 책값을 보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책을 만지는 걸 본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읽기 전에 생각하고, 읽으면서 생각하고, 읽고 나서도 생각해라. 쉽게 읽은 책은 쉽게 빠져나간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여러 번 읽을 책을 찾아 읽어라.” 아버지는 철저하게 발췌독(拔萃讀)했다. 닥치는 대로 읽는 남독(濫讀)이지만, 따로 읽어야 할 책은 바로 펼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제목으로 책을 쓴다면 어떻게 쓸까를 먼저 생각해본다고 했다. ‘다리’를 예로 들어가며 설명했다. “소재의 일반성을 먼저 생각해본다. 집 앞의 징검다리부터 금문교, 오작교까지를 떠올린다. 그런 다음 다리의 원관념, 즉 ‘건네준다’를 생각하면 우체부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선생님까지를 떠올 릴 수 있다. 다리를 ‘이편에서 저편의 더 너른 공간을 차지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빚은 산물’로 보고 내가 겪었든 겪지 않았든 상상해보며 저자만이 경험한 ‘특수성’을 염두에 둔다.” 아버지는 내가 이미 알고 있거나 생각한 부분은 빠르게 읽고 미처 알지 못한 부분은 정독하며 생각을 메모했다. 반드시 완독(完讀)

      2023-07-11 18:01
    • 연습이 손맛을 만든다

      서울 종로1가에 있는 음식점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고입 재수 시절 때다. 물 퍼 나르고 쓰레기 버리고, 그릇 닦고 바닥 청소하는 아르바이트였다. 주방 일 배우는 이들에겐 가혹한 환경이지만, 막일하는 주방 막내에겐 배불리 먹는 밥만큼이나 기분 좋은 곳이었다. 마지막 주문받은 음식이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손님상에 나갈 즈음에 서울에 일 보러 온 아버지가 음식점에 예고 없이 들렀다. 마침 그 시간에 한 달 전에 예고된 새 주방장을 뽑는 시험이 시작됐다. 시험에는 두 보조주방장이 응시했다. 과제는 콩나물국을 정해진 시간에 끓여내는 거였다. 제시한 재료는 콩나물과 소금 그리고 물, 세 가지. 둘은 고개를 끄덕이는 주방장의 시작 신호에 맞춰 음식을 장만했다. 둘만 바삐 움직이고 지켜보는 이들은 모두 정지한 긴장된 순간이었다. 두 응시생의 음식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방장 앞에 놓이자 고개를 다시 끄덕이는 신호에 따라 경쟁이 끝났다. 주방장이 콩나물국을 두 번 번갈아 맛보고 난 뒤 그중 나이가 더 든 남(南)씨 성을 가진 보조에게 칼을 내주면서 시험은 끝났다. 주방장을 만난 아버지는 “철없는 아이를 맡아줘 고맙다”라는 말과 함께 “호되게 야단쳐주세요”라고 부탁하며 인사했다. 광화문을 거쳐 현저동 집까지 걸어올 때 시험을 모두 지켜본 아버지가 “나는 남 씨가 이길 줄 알았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소금을 볶았다. 그는 한 번에 소금을 집어넣는데 다른 응시자는 두 번 나눠 넣더라. 거기서 실력 차가 나겠구나 했다”라면서 “사람 기억 중에 맛에 대한 기억이 가장 오래간다. 남 씨는 주방장의 맛을 그려낸 거다. 아마 지금 다시 해도 집어넣는 소금의 양이 같을 거

      2023-07-04 17:40
    • 기억하지 못하는 날은 삶이 아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다. 저녁 먹다 아버지가 느닷없이 “며칠 전 종로2가에는 왜 갔느냐?”고 물었다. 찔끔했다. 당시에 여러 명이 제과점과 음악감상실을 들르며 무교동, 명동 일대를 늦게까지 우르르 쏘다니는 게 유행이었다. 갔던 거는 분명하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지금 돌이켜봐도 모르겠다. 아버지에게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숟가락을 소리 내 탁자에 내려놓고 나를 꿇어 앉혔다. “기억하지 못하는 날은 삶이 아니다”고 말문을 연 아버지는 오래 나무랐다. “그날 예닐곱 명이 교복 입고 크라운제과점에 들어가는 걸 내 눈으로 봤다. 멀리서 봤지만, 내 자식이어서 얼른 눈에 들어왔다. 거짓말이야 그렇다 치고 기억도 못 하는 날을 보내는 네가 한심하다. 주는 밥 먹고 아무 데나 뒹굴다 잠이나 자는 개나 돼지와 다를 게 뭐냐?”며 질타했다. “그건 다만 살아있는 거지 사는 게 아니다. 의미 없이 보낸 날은 삶이 아니다. 생존이지 인생이 아니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의미’를 먼저 설명했다. “‘뜻 의(意)’자는 ‘소리 음(音)’ 자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다. ‘뜻’이나 ‘의미’, ‘생각’이라는 뜻을 가졌다. 곧 ‘마음의 소리’라는 뜻이다. 생각은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나온다. ‘의미 없는 날’은 네 삶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보낸 날이다. 뜻이 있으면 훗날에 반드시 기억나야 한다. 의(意)자는 훗날 기억, 회억이란 말에도 고루 쓰여 그 뜻을 확실하게 해준다. 의미 없이 보낸 날은 무기력하고, 지루하고, 낭비된 거다”라고 정의했다. 아버지는 이어 “매년 오는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네가 의미를 주지 않으면 그

      2023-06-27 10:42
    • 남을 이롭게 하는 게 나를 이롭게 한다

      이삿짐 실은 차량을 떠나보내고 그리 멀지 않은 새로 산 집까지는 아버지와 함께 걸었다. 골목을 빠져나올 즈음에 아버지가 봉투를 꺼내주며 방금 떠난 집 마루에 놓고 오라고 했다. 겉봉에는 ‘이사 오시는 분께’라고 수신인을 적었지만, 봉투는 열려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궁금해 열어봤다. ‘이 집에 살며 느낀 것들입니다’로 시작하는 편지는 두 장이나 됐다. 만년필과 볼펜을 번갈아 쓴 아버지 필체는 정갈해 며칠에 걸쳐 쓴 것 같았다. 살던 집 얘기라 한 눈에 들어왔지만 몇 가지는 살펴보지 않으면 모를 것들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몇 가지다. ‘안방 뒤 벽지가 축축한 거로 보아 누수가 있는 거 같은데 지붕에서 스며든 거로 보입니다. 누수 지점은 찾지 못했습니다. 안방에서 나오는 마루 세 번째와 다섯 번째 나무는 상해 교체해야 할 겁니다. 마루 바깥 유리문은 집이 오른쪽으로 기울어 꼭 닫히질 않습니다. 건넌방 구들 위쪽은 막힌 듯합니다. 겨울에는 불길이 들어가지 않아 냉골입니다. 볕이 잘 들긴 하지만 창문 역시 집이 기울어 틈이 벌어져 외풍이 심합니다. 마당의 벽오동은 무성해 채소밭으로 난 가지는 쳐줘야 합니다. 마당 수도는 도드라져 겨울에는 동파한 일이 있습니다.’ 마루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자리에 편지를 넣어놓고 돌아와 길을 걸으며 아버지께 그런 글까지 남기셨다고 하자 웃으며 하신 말씀이다. “‘까마귀가 덫에 걸린 개를 발견했다. 까마귀는 개가 덫에 걸린 것을 보고 안타까워 개 꼬리를 물고 덫을 풀어준 뒤 땅을 파 묻어주었다’라는 옛이야기가 있다. 유향(劉向)이 쓴 전국책(戰國策)에서 읽었다.” 훗날 원전을 찾은 아버지는 시경(詩經)에서 인용

      2023-06-20 14:55
    • 책상이 없으면 혼수가 아니다

      동생들이 먼저 결혼한 뒤 서른여섯에 늦장가를 가게 됐다. 혼인날이 잡히고 아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겠다고 할 때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집안에 온통 기쁨만 가득했다. 일주일 전에 혼수품을 실은 차량이 들어오자 온 집안이 들썩였다. 그때 아버지가 혼수품 가구들을 둘러본 뒤 짐을 내리지 말라며 한 말이다. “책상이 없는 혼수품은 혼수품이 아니다.” 아버지를 방으로 따라 들어가자 저 말을 두어 번 더 소리쳤다.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나이 들어가며 야단 맞는 횟수는 줄었지만 강도는 더 세졌다. 매장에 전화해 바로 준비해 가지고 오라고 해 수습했다. 책상과 의자를 갖춘 혼수품을 들여오고 나서 아버지가 말씀 중에 인용한 고사성어가 ‘망양지탄(望洋之歎)’이다. ‘넓은 바다를 바라보고 감탄한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위대함을 보고 자신의 미흡함을 부끄러워한다는 뜻으로 쓴다. 장자(莊子) 외편 추수(秋水)에 나오는 말이다. 옛날 황허(黃河)에 하백(河伯)이라는 신이 살았다. 그는 언제나 자기가 사는 강을 보면서 그 넓고 풍부함에 감탄했다. 가을 홍수가 져 모든 개울물이 황허로 흘러든 가을날 강의 폭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불었다. 흐름이 너무나 커서 양쪽 기슭이나 언덕의 소와 말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백은 천하의 아름다움이 모두 자기에게 있다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는 강의 끝을 보려고 동쪽으로 따라 내려갔다. 한참을 흘러내려 간 뒤 마침내 북해(北海)에 이르자 그곳의 신인 약(若)이 반가이 맞았다. 하백이 약의 안내로 주위를 돌아보니, 천하가 모두 물로 그득 차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백이 그 너른 바다를 보고 감탄하며[望洋而歎] 한 말이다. “속

      2023-06-13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