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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권
    조성권
    The Lif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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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약력
    우리은행 홍보실장, 서여의도지점장
    예쓰저축은행장/대표이사
    국민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이투데이 선임연구위원
    현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소개 글
    2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만큼 살다 보니 그때는 듣기 싫던 잔소리가 나를 이만큼이나 키워준 거란 걸 알았습니다.
    그 지겹던 잔소리들이 모두 고사성어에서 나온 거란 걸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부모 등을 보고 배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불초(不肖)‘라는 고사성어에도 나오듯 아버지를 닮지 못합니다.
    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인성이 더없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시집간 딸이 딸을 낳고 장가든 아들이 아들을 낳아 손주가 생기고 나니 손주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아버지의 고사성어를 100여 개 추려 잔소리를 회억해냈습니다.
    • 너의 선택을 존중해라

      고등학교 입시 합격자 발표 날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고사성어가 '수처작주'다.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그러면 서 있는 곳이 모두 참되리라隨處作主 立處皆眞]"라는 말에서 왔다. 선(禪)불교 정신을 세운 임제 의현(義玄) 스님의 임제록(臨濟錄)에 나온다.합격자 발표문은 가파른 언덕길을 한참 올라와 돌담 위에 붙어 있었다. 합격증 받으러 본관으로 가는 길. 진눈깨비가 내리는 운동장엔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생겼다. 아버지는 지팡이로 물고인 웅덩이마다 물길을 터주셨다. 등록을 마치고 나왔을 땐 비가 그쳤어도 운동장엔 물웅덩이가 여럿 보였다. 아버지가 물길을 터준 웅덩이만 말라 있었다."너의 선택을 존중해라." 그때 하신 말씀이다. 학교 선정에 애먹어서 그런지 합격은 했지만, 마음 한 켠에 남아있던 아쉬움을 아버지는 그렇게 씻어주셨다. 이어 하신 말씀이다. "어느 곳에 있건 있는 곳마다 주인이 돼라. 내 집 마당에 물웅덩이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겠느냐? 내가 다니는 학교가 최고라고 마음 먹으면 최고가 된다." 아들을 혼자 서울에 유학 보내는 아버지는 낯설고 어색해하는 내게 학교를 '내 집'으로 끌어들이셨다. 입학하고 한참을 지난 어느 비 오는 날 운동장에 널린 물웅덩이에 물길을 열어주고 난 뒤에야 아버지의 말뜻을 온전하게 이해했다. 다른 이들은 관심 밖이겠지만 내가 손댄 후부터 학교 운동장은 내 집 마당처럼 내 관심의 영역으로 자리하게 됐다. 내가 이 학교 주인이니 학교 안의 흑 한 줌 풀 한 포기마저도 다시 보였다.해보지 않은 일을 할 땐 선뜻 나서기 어렵다. 자신감이 없어서다. 자신감은 스스로를 믿는 감각이다. 감각이기에 둔

      2022-08-18 16:12
    • 한번 마음먹은 일 함부로 바꾸지 마라

      중학교 다니던 시절, 한자 ‘참 진(眞)’자를 쓸 때였다. 네모 칸에 맞춰 ‘눈 목(目)’자를 마칠 즈음 위에 붙은 ‘비수 비(匕)’를 ‘칼 도(刀)’로 잘못 쓴 걸 알았다. 글자에 얼른 빗금을 쳤다. 그래도 맘에 안 들어 동그라미를 계속 둘러쳐서 글자가 보이지 않게 시커멓게 칠했다. 지켜보던 아버지가 냅다 호통치며 그때 하신 말씀이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함부로 바꾸지 마라!” 아버지는 말씀이 길었다. 다리에 쥐가 나도록 꿇어 앉혀놓고 길게 말씀하셨다. 그날도 그러셨다. 아버지가 덧붙인 말씀을 알아들은 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쓰던 글자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 바로 고치거나 지울 일은 아니다. 시작한 글자는 틀린 대로 마무리해라. 틀린 글자는 정정 표시를 하고 제대로 된 글자를 다시 써라. 그래야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 온전하게 알 수 있다. 저렇게 새까맣게 뭘 시도한 건지도 모르게 칠해놓으면 반성과 성장의 기회를 잃는다. 더욱이 너를 지켜보거나 따르는 이들은 우두망찰하게 된다. 가던 길을 갑자기 멈춰서서 없던 일처럼 해버리면 너를 따르는 이들은 뭐가 되느냐. 모름지기 언행은 한결같아야 한다.” 아버지는 고작 중학생인 내게 낯선 용어인 일관성(一貫性)을 말씀하셨다. 그날 이후에도 잔소리처럼 말씀하셔서 외우게 됐다. 일관성은 일이관지(一以貫之)에서 왔다.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것을 꿰뚫는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온다. 공자(孔子)가 제자 자공(子貢)에게 한 말에서 비롯했다. “사(賜)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그것을 모두 기억하는 줄로 아느냐? 아니다. 나는 하나로 꿸 뿐이다[予一以

      2022-08-12 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