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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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년 영국 정부는 해군 재건 기금 조성에 필요한 120만파운드를 조달하기 위해 영란은행 지주회사를 정부 산하기관이 아닌 특허기업으로 설립했습니다. 초대 총재로는 존 허블런(John Houblon)이 취임했습니다. 이후 영란은행은 영국 정부의 국채를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1707년 스코틀랜드왕국과 잉글랜드왕국이 연합법(Acts of Union)을 통해 '그레이트브리튼'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탄생하면서 아메리카·아프리카·아시아 식민지가 개척된 영향이었습니다. 영국의 산업이 눈부시게 성장하면서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철강산업과 같은 중공업에 대규모 투자를 지원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영란은행이 정부 국채 관리 업무를 담당하게 된 겁니다.

설립 당시 월브룩거리(Walbrook street)에 있던 영란은행은 1734년 현 위치인 스레니들거리(Threadneedle Street)로 이전합니다. 이후 스레니들거리는 여러 금융사가 자리 잡으면서 런던의 금융중심지로 발전합니다. 영란은행의 사업 면허는 1742, 1764, 1781년에 갱신됩니다. 1781년 갱신에서 영란은행이 발행하는 화폐를 모두 바꾸어 줄 수 있을 만큼의 금을 보유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됩니다. 이는 영국 경제가 금본위제를 기반으로 한 데 따른 것입니다.

문제는 1792년 프랑스 혁명으로 탄생한 공화국과 공화제에 반대하는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영국, 러시아, 프랑스 왕당파가 전쟁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1793년 프랑스는 국가총동원령을 발동하면서 리옹, 툴롱,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툴롱, 벨기에, 네덜란드, 라인 지역에서 프랑스군과 교전하며 많은 금을 지출하게 됩니다. 이 영향으로 영란은행은 1781년 사업 면허 갱신에 포함돼 있던 금 보유 조항을 지킬 수 없게 되었죠. 이에 따라 1797년 영국 정부는 은행의 금 반출을 금지하는 은행규제법을 공표하게 됩니다. 이 법은 나폴레옹이 사망하는 1821년까지 유지됐다고 전해집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홍기훈 CFA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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