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빚투…이게 다 전세 제도 때문입니다" [최원철의 미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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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최근 무자본 갭투자를 이용한 '빌라왕' 전세 사기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별 재산도 없이 빌라·오피스텔 등 주택 1139채를 보유하던 김모씨가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숨진 사건입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김씨가 세운 법인 보유 주택에서 91건, 김씨 명의 주택에서 80건 보증 사고가 났습니다. 액수로는 334억원입니다.
국민들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지만, 이보다 심한 전세 사기도 적지 않습니다. HUG의 '블랙리스트'에서 김씨의 순위는 8위에 그칩니다. 293건 계약에서 646억원을 떼어먹은 박모씨, 254건 계약에서 600억원을 챙긴 정모씨 등 빌라왕보다 사고 건수와 액수가 많은 이들이 7명이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일반인들까지 전세 제도를 활용, 다주택자가 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전세 사기도 많이 늘어났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전세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를 가능하게 합니다. 갭투자로 정상적인 임대사업자가 아닌 다주택자가 늘어나고, 집값 폭등과 맞물려 엄청난 이익을 거두는 경우가 늘면서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취득세 중과, 양도세 중과 등 다양하고 복잡한 세금 체계도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다주택자 성공 신화'는 다시 소득이 적은 청년이나 신혼부부들이 갭투자에 나서도록 만들었습니다.
고금리 시대가 되고 집값이 폭락하면서 전세 제도는 새로운 뇌관이 됐습니다. 전세대출 이자가 급증하자 세입자들이 월세를 찾는 경우가 늘면서 역전세난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덩달아 전셋값도 급락하면서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집주인들은 난처한 상황이 됐습니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주지 못하자 세입자가 집을 경매에 넘기는 경우도 크게 늘었습니다. 올해 11월까지 서울에서 강제경매로 주인이 바뀐 집은 1280건에 달해 1년 전보다 82% 늘었다고 합니다. 거래절벽이 심화하면서 최근 정부에서는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다주택자에 대한 각종 규제 완화에 나섰습니다.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유도하겠다는 취지이지만, 결국 현금 부자들이 또 주택투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전세 제도를 활용한 갭투자가 아직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6·25 전쟁 이후 빠른 주택공급이 필요했던 한국에서 전세 제도는 저소득층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임대차 3법부터 깡통전세 대책, 전세 사기 대책 등 전세 제도의 부작용이 커진 상황입니다. 전세 제도가 없는 미국, 유럽 등 해외 선진국과 비교하면 이러한 문제는 더욱 부각됩니다.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에 주택공급 문제를 겪었던 이들 선진국은 고금리 시대 주택문제가 크게 이슈로 부각되지 않습니다. 고금리로 모기지 금리가 매우 올랐지만, 극히 일부 계층만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당연히 국내와 같이 여러 대책을 내놓지도 않고 있습니다. 주택공급은 물론 주택 관련 세금 정책도 안정화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국내는 전세 제도로 인해 각종 대책이 쏟아져 나오고, 갭투자를 이용한 현금 부자들의 부동산 투기를 걱정하는 상황입니다. 아직도 전세 제도의 순기능이 크다고 보긴 어려워졌습니다. 고금리로 세입자들도 전세를 외면하는 지금이 전세 제도 최소화 또는 폐지를 준비할 시기일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전세라는 제도를 줄이고 선진화된 주택공급정책, 주택금융정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경우, 집주인이 장기 저리융자를 통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세입자의 경우에도 돌려받은 보증금을 향후 주택구입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장기주택 모기지형 고금리 저축제도를 만들어 주택구입 초기비용으로 활용하도록 합니다. 자동차를 살 때 초기 부담금을 많이 내면 장기할부 금액이 줄어드는 제도를 내 집 마련에도 도입하는 것입니다.
현재 전세를 사는 세입자들이 그 집을 매입할 경우 취득세와 집주인의 양도세를 최소화하는 제도를 추진하는 것도 검토할 만합니다. 장기 세입자들은 현재 사는 주택이 편하기 때문에 계속 사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세가율이 높기 때문에 조금만 대출 지원을 받으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고, 집주인도 세입자에게 직접 매도할 수 있어 거래절벽 상황을 다소 타개할 수 있습니다.
임대 아파트의 경우에도 지속해서 월세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정책들이면 전세 세입자는 빠르게 줄어들 것입니다. 그렇게 전세 제도가 없어지면 선진국처럼 주택임대사업자가 월세로 운영하는 방식과 직접 내 집 마련 방식만 남기 때문에 갭투자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는 사라지게 됩니다.
현재 주택문제 대부분은 전세 제도 때문에 생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로 인해 지난 정부나 이번 정부에서도 주택 대책이 매달 나올 정도입니다. 이제는 후진국형 주택 대책이 아닌 선진화된 주택정책이 나와야 할 때가 됐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국민들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지만, 이보다 심한 전세 사기도 적지 않습니다. HUG의 '블랙리스트'에서 김씨의 순위는 8위에 그칩니다. 293건 계약에서 646억원을 떼어먹은 박모씨, 254건 계약에서 600억원을 챙긴 정모씨 등 빌라왕보다 사고 건수와 액수가 많은 이들이 7명이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일반인들까지 전세 제도를 활용, 다주택자가 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전세 사기도 많이 늘어났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전세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를 가능하게 합니다. 갭투자로 정상적인 임대사업자가 아닌 다주택자가 늘어나고, 집값 폭등과 맞물려 엄청난 이익을 거두는 경우가 늘면서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취득세 중과, 양도세 중과 등 다양하고 복잡한 세금 체계도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다주택자 성공 신화'는 다시 소득이 적은 청년이나 신혼부부들이 갭투자에 나서도록 만들었습니다.
고금리 시대가 되고 집값이 폭락하면서 전세 제도는 새로운 뇌관이 됐습니다. 전세대출 이자가 급증하자 세입자들이 월세를 찾는 경우가 늘면서 역전세난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덩달아 전셋값도 급락하면서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집주인들은 난처한 상황이 됐습니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주지 못하자 세입자가 집을 경매에 넘기는 경우도 크게 늘었습니다. 올해 11월까지 서울에서 강제경매로 주인이 바뀐 집은 1280건에 달해 1년 전보다 82% 늘었다고 합니다. 거래절벽이 심화하면서 최근 정부에서는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다주택자에 대한 각종 규제 완화에 나섰습니다.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유도하겠다는 취지이지만, 결국 현금 부자들이 또 주택투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전세 제도를 활용한 갭투자가 아직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6·25 전쟁 이후 빠른 주택공급이 필요했던 한국에서 전세 제도는 저소득층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임대차 3법부터 깡통전세 대책, 전세 사기 대책 등 전세 제도의 부작용이 커진 상황입니다. 전세 제도가 없는 미국, 유럽 등 해외 선진국과 비교하면 이러한 문제는 더욱 부각됩니다.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에 주택공급 문제를 겪었던 이들 선진국은 고금리 시대 주택문제가 크게 이슈로 부각되지 않습니다. 고금리로 모기지 금리가 매우 올랐지만, 극히 일부 계층만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당연히 국내와 같이 여러 대책을 내놓지도 않고 있습니다. 주택공급은 물론 주택 관련 세금 정책도 안정화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국내는 전세 제도로 인해 각종 대책이 쏟아져 나오고, 갭투자를 이용한 현금 부자들의 부동산 투기를 걱정하는 상황입니다. 아직도 전세 제도의 순기능이 크다고 보긴 어려워졌습니다. 고금리로 세입자들도 전세를 외면하는 지금이 전세 제도 최소화 또는 폐지를 준비할 시기일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전세라는 제도를 줄이고 선진화된 주택공급정책, 주택금융정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경우, 집주인이 장기 저리융자를 통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세입자의 경우에도 돌려받은 보증금을 향후 주택구입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장기주택 모기지형 고금리 저축제도를 만들어 주택구입 초기비용으로 활용하도록 합니다. 자동차를 살 때 초기 부담금을 많이 내면 장기할부 금액이 줄어드는 제도를 내 집 마련에도 도입하는 것입니다.
현재 전세를 사는 세입자들이 그 집을 매입할 경우 취득세와 집주인의 양도세를 최소화하는 제도를 추진하는 것도 검토할 만합니다. 장기 세입자들은 현재 사는 주택이 편하기 때문에 계속 사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세가율이 높기 때문에 조금만 대출 지원을 받으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고, 집주인도 세입자에게 직접 매도할 수 있어 거래절벽 상황을 다소 타개할 수 있습니다.
임대 아파트의 경우에도 지속해서 월세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정책들이면 전세 세입자는 빠르게 줄어들 것입니다. 그렇게 전세 제도가 없어지면 선진국처럼 주택임대사업자가 월세로 운영하는 방식과 직접 내 집 마련 방식만 남기 때문에 갭투자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는 사라지게 됩니다.
현재 주택문제 대부분은 전세 제도 때문에 생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로 인해 지난 정부나 이번 정부에서도 주택 대책이 매달 나올 정도입니다. 이제는 후진국형 주택 대책이 아닌 선진화된 주택정책이 나와야 할 때가 됐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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