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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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는 일벌레들의 천국입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아니 밤을 꼬박 새우는 사람까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죽하면 '월화수목금금금' 이란 말이 나왔을까요. 힘든 일을 쉬지 않고 한다는 의미에선 일벌레들의 천국이 아니라 무덤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할까요?

구한말 고종 황제가 땀을 뻘뻘 흘리며 테니스를 치는 서양 외교관들에게 그랬다지요. "그렇게 힘든 일은 하인에게 시키지, 왜 그리 힘들게 고생을 하시오"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원래 일은 불과 몇백 년 전만 하더라도 노예들의 몫이었습니다. 히브리어로 일(아베드)은 '노예'와 같은 단어였습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어로 일, 공부를 뜻하는 단어 travail은, 고문을 뜻하는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독일 역시 일을 뜻하는 Arbeit는 힘든 노동이나 고통을 의미하는 고대 독일어 arabeit에서 유래했다고 하지요. 이렇게 일은 중세까지는 고통과 고생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이후 르네상스를 거치며 마틴 루터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선하고, 그러지 않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설파합니다. 더 나아가 장 칼뱅은 "일은 신의 은총이자 구원의 수단"이라며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 윤리로서 일을 '소명'(召命, Calling)으로서의 직업 개념으로 격상시킵니다. 그런데도 일에 대한 직장인들의 부담감, 거부감은 고대로부터 수천 년간 깊게 새겨진 DNA일까요? 몸속 저 안쪽에서부터 올라오는 부정적인 느낌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라고 합니다. 첫째, 루터나 칼뱅으로부터 시작된 숭고한 소명(Calling) 의식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에 헌신한다는 의미이지요. 두 번째는 경력(Career)으로서의 직업, 일입니다. 경제적 이익을 넘어서 일을 통해 지위, 성장, 명예 등 성취감을 얻는 것이지요. 마지막은 호구지책(糊口之策, 입에 풀칠하는 생계 수단이라는 의미)으로서의 일(Job)입니다. 단지 내가 제공한 노동에 대한 대가를 얻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인크루트에서 조사한 바로는 직장인 2명 중 1명은 '조용한 퇴직'(Quiet Quitting) 상태라고 합니다. 조용한 퇴직이란 실제 직장에서 퇴사하지는 않은 채 최소한의 업무만 처리하며 회사에 기여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으로, 미국에서 시작해 세계로 퍼지고 있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조용한 퇴직을 하는 이유의 상당수(32.6%)가 '회사의 연봉과 복지 등에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일하는 것 자체에 열의가 없어서(29.8%)'를 포함한다면 세 명 중 두 명이 호구지책으로서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더구나 동료가 조용한 퇴직을 하는 것에 대해 전체의 65.8%가 '긍정적'이라 대답했다고 하니 이제 조용한 퇴사는 시대의 흐름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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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는 단지 'Job'으로서의 일이나, 조용한 퇴사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일'은 소명 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커리어(career)로서 접근했을 때 얻는 성취감의 가치가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도 일은 단지 급여를 받고 행하는 노동 행위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제가 33년 전 증권 회사에 입사한 뒤 받은 월급은 기본이었을 뿐, 이외에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혜택을 얻었습니다. 제가 보이지 않게 받은 혜택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일은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해줬습니다. 둘째, 거기서 새로운 사람과 기회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일하면서 공짜로 깊고 다양하고도 새로운 일(기술)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봉급만 받고 회사를 다니면 손해입니다. 손해도 큰 손해지요.

저는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입사 2년 차에 처음 알았습니다. 신입 사원 연수 후 지점 발령을 자원했습니다. 대학원 남은 학기를 마치기 위해서였지요. 회사의 배려 덕에 석사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점에 있는 선배들이 공부하지 않는 거예요. 심지어 주식시장이 마감하면 고객과 어울려 화투도 치고 낮술도 마시고. 지금은 그런 문화가 아예 없지만 30년 전엔 그랬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주식 연구도 하고 채권 공부도 하고 금리, 환율 등 공부해야 할 게 너무나 많은데 하루하루 주가 등락에 일희일비하고 있더라고요. 당시 주식시장이 장기 호황 이후 폭락하던 때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던 증권회사의 모습이 아니었죠. 마음 한켠에는 '여기엔 내 또래 중 경쟁 상대는 없어'라고 건방진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든 본사에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다행히 증권연수원에서 시행하는 장기 연수 과정에 선발되는 운이 따라 '증권전문반'이라는 과정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저는 깜짝 놀랐어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경쟁 상대가 없음을 느꼈습니다. 각 회사에서 선발된 연수생 동기들은 정말 뛰어났습니다. 각자 특정 분야에 주특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시장을 보는 시야가 넓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지요. 연수 기간 중 매일 아침 글로벌 시장을 파악하고 주가, 금리, 환율에 관해 토론하니 실력이 절로 느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 이 연수 과정에서 저는 경제학과 경영학을 완전히 다시 공부했는데, 그것이 제가 애널리스트로 20년 이상 일하는 데 가장 큰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제 회사 생활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제 입장에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회를 얻은 것이지요.

완전히 시골 출신인 제 후배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항공사에 입사했는데 항공사 간 제휴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입사 15년 만에 하와이지점장으로 발령받았습니다. 하와이 여행을 가서 만난 그 후배는 정말 파라다이스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소풀 먹이던 소년이 해질녘 아내와 해변 파라솔 아래에서 석양을 즐기고 있었지요. 이 모든 것의 출발은 그 친구가 회사에서 봉급만 받고 일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글로벌 항공사 간 제휴업무를 하면서 익힌 업무 지식과 네트워크를 회사에서는 높이 평가해 새롭게 개설하는 하와이 지점에 발령을 낸 것입니다.

일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해줍니다.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신세계를 만나게 해줍니다. 봉급만 받고 회사를 다니면 큰 손해입니다. 일은 나의 의지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황금티켓이 되기도 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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