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부통령에 당선된 댄 퀘일...신문인 가문출신 상원의원

미 부통령에 당선된 댄 퀘일 상원의원(공. 인디애나주)은 이번 선거운동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인물이다. 신선한 용모에 사교적인 성격인 금년 41세의 퀘일 의원은 지난8월 중순 조지 부시 공화당 대통령후보가 러닝 메이트로 선택할 때까지는 비교적 전국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퀘일이라는 이름은 공화당 부통령후보가 된후 곧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으나 그것은 대체로 부정적인 이유들 때문이었다. 퀘일이 언론기관들로부터 강타를 받은 최초의 시련은 첫째 그가 베트남전에의 참전의무를 기피하기 위해 집안의 영향력을 행사해 인디애나주 방위군으로 입대했다는 주장과 또 그가 대학시절 여학생과 골프 따위에나 관심을가졌으며 성적도 탁월하지 못한 시시한 학생에 불과했다는 의혹이었다. 퀘일은 첫번째 의문에 대해서는 단호히 이를 부인했으며 두번째 의문인 범용한 학생에 불과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윈스틴 처칠 전 영국총리가 뛰어난학생이 아니였으며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한때 변호사 시험에 실패했다고 반박함으로써 이를 일축했다. 이밖에 퀘일의 온건한 정치경험, 보수적인 견해, 집안의 엄청난 재산 그리고 심지어는 그의 할리우드 배우와 같은 금발마저도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퀘일문제는 지난9월25일 부시와 듀카키스간 최초의 TV토론에서 거론됐으나당시 이 문제는 퀘일 자신이 해결하도록 남겨졌으며 이후 10월5일 열린 그의적수 로이드 벤슨 민주당 부통령후보와의 TV토론에서 존 케네디와 같은 경험을 가진 인물로 시청자들에게 보이려고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지 개선에힘썼다. 33세에 상원에 진출한 퀘일은 지난81년 직업게획 소위위원장으로 직업훈련을 입안했고 개인의 소득세 신고를 우편으로 가능하게 하는 세제 간소화안을도입했다. 그는 또 군사위원회에 소속되면서 캐스퍼 와인버거 전 국방장관이 주장한군비지출 증액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나 레이건 대통령의 전략방위계획(SDI)에대해서는 적극적인 지지를 표했다. 퀘일은 또 환경문제와 미-소중거리 핵전력(INF)폐기협정등 레이건대통령이적극 추진한 정책에 반대입장을 표명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신문발행으로 널리 알려진 가문출신인 퀘일은 지난47년 2월4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출생, 69년 디포대학을 졸업하고 74년에 인디애나대학 법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할아버지 유진 펄리암은 인디애나폴리스지와 더 애리조나 리퍼블릭지의 소유주였으며 퀘일 자신도 76년 하원에 진출하기 직전까지 그의집안 신문이 "더 헌팅턴 헤럴드 프레스"의 공동 발행인으로 일하는등 그의 집안은 언론관계에 주로 종사해 왔다. 69년부터 75년까지 말썽많은 국민방위군에서 복무했으며 이후 인디애나주검찰총장실과 주지사 사무실등에서 잠시 근무하다 76년에 민주당 하원의원을패배시키고 하원의원에 당선돼 2기를 연임했다. 활발한 성격으로 잘 알려진 퀘일은 상원에서 주로 경제와 외교정책에 집중했으며 고향인 인디애나주의 개발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퀘일은 부인 마릴린 여사와의 사이에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