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거장, 카라얀 사망...만 8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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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클래식 음악계의 거장이자 금세기 최고 지휘자인 헤르베르트 폰카라얀이 16일 정오(한국시각 하오 8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소재자택에서 8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 30여년동안 베를린 필하모니 이끌어 *** 지난 4월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 자리를 사임할때까지 30여년동안"카라얀=베를린 필"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베를린 필을 이끌었고 전통적인잘츠부르크 뮤직 페스티벌을 지도했던 카라얀은 고전음악의 연주및 재해석에새로운 기준을 제공해준 명지휘자로 여겨지고 있다. *** 2차대전때 "나치" 협력 오명 *** 그러나 카라얀은 자신의 이같은 천재성과 함께 권위주의적인 성격탓으로협연하는 명 연주자들이나 가수, 오케스트라 단원과 잦은 불협화음을연출했으며 2차대전시 나치와 협력했다는 오점도 같이 지니고 있다. *** 1908년 태어나...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 지난 1908년 4월5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음악애호가인 의사의둘째 아들로 출생, 3살때부터 피아노를 배워 1년후 자선공연무대에서모짜르트의 곡을 연주함으로써 신동으로의 재질을 나타낸 카라얀은 잘츠부르크 모짜르트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정식으로 배웠으며 이곳을 졸업한뒤27년 빈 음악대학에서 지휘자로서의 수업을 시작했다. 1929년 1월의 첫 교향악단 지휘로 그는 우뢰같은 박수갈채뿐 아니라독일 울름시의 지휘자 자리를 얻었고 그해 21번째 생일 한달을 앞두고자신의 첫 오페라공연인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지휘, 성가를얻었다. 카라얀은 그후 34년 이헨으로 옮겨 그곳의 음악감독자리를 맡았으며나치당에 가입, 나치 고위간부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공연을 했으며 히틀러의50세 생일때에는 베를린 국립가극장 전임지휘자로 임명돼 병역을 면제받고종전시까지 지휘자로서의 생활을 계속할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같은 전력으로 연합국들은 카라얀에 대해 2년간 지휘자 생활을금지시켰으며 지난 54-55년 베를린 필의 미국공연시 "나치 고 홈"이라는거센 항의 시위를 받기도 했다. 카라얀은 생전에 자신의 나치 협력사실에 대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나치에 가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말했으나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카라얀이 지난33년 자진 입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1956년 오스트리아 빈 오페라단 감독으로 임명...사퇴 *** 그는 1956년 빈 오페라단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되었으나 오스트리아정부가 재정적인 요구사항이 너무 많다고 비난하자 64년 그 자리를 박차고나와 버렸다. 현대 음악연주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 카라얀은 이같은음악적 취향과는 달리 제트기 조종, 레이스카 운전, 요트경주등 모험을즐겼으며 과학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고 음악의 질병치유능력을 신봉한인물이기도 했다. 한때 그는 자신의 몸에 전극을 감고 지휘하는 동안 맥박과 혈압을측정하기도 했으며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으나 음악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위해 스스로 마약을 사용할 별난 계획도 세우기도 했다. 그의 자기 과신 또한 세월이 지나면서도 조금도 누구러지지 않아 지난83년한 인터뷰를 통해 "40세가 되어야 음악의 맛을 알기 시작한다. 그러나음악적으로 성숙하려면 60세에서 75세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으며"나는 아주 어릴때 내 인생에서 단 1분도 허비해서는 안되겠다는 목표를세웠다. 이제 나는 그것을 이루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