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 딸이 사법시험 수석

노점상의 딸이 사법고시에 수석합격했다. 오는 20일 발표될 예정인 31회 사법고시에서는 사법시험 사상 세번째의여자수석이 나오게 됐다. 올해 2월 서울대법대 사법학과를 졸업한 이선애양(23)의 집은 발표사흘전인 17일부터 벌써 기쁨과 환희에 가득찼다. 시내버스 25번총점에서 200m가량 걸어가야 하는 서울 관악구 신림10동 319우일그린빌라 109호는 소식을 듣고온 이웃주민과 친척들로 떠들썩했다. 말이 빌라일뿐 전형적인 서민층의 연립주택인 이집은 동네이웃 10여명이들어앉자 비좁기만 했다. "전혀 예상못한 성적이라 얼떨떨하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소감을말하는 이양은 오히려 덤덤하게 웃기만했다. 그것은 늘 역경과 싸우며 사는 사람들이 뜻밖의 환희를 오래간직하려는표정인 것처럼 보였다. 1남3녀중 장녀인 이양은 남대문시장의 대도백화점 앞에서 점퍼를 파는 의붓아버지 황일주씨(58), 어머니 유필순씨(45)와 함께 살고 있다. 이양은 국민학교때 장사를 하던 친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가정형편이 극도로 나빠졌다. 이때부터 어머니는 가정을 위해 생활전선에 나서야만 했다. 그러다 중학교때 정신적으로 믿던 아버지가 숨지자 딸 셋을 키우기가힘들어진 어머니는 재혼을 했다. 이양은 국민학교 5학년때부터 고3때까지 남대문시장 부근의 방 두칸짜리셋방에서 사는동안 장사를 하는 어머니대신 동생을 돌보는등 눈물을 참고견디며 공부를 계속했다. 계성여중에 다닐때도 성적이 좋았지만 숭의여고 3년동안엔 남에게 수석을한번도 뺏기지 않을만큼 더 좋아졌다. 이양은 대학에 입한한 85년에 8년간의 "시장살이"를 벗어나 신림동의 방두칸짜리 셋집으로 옮길 수 있었고, 87년에야 겨우 지금의 내집에서 살기시작했다. 어머니 유씨는 "잘 입히지도 먹이지도 못했는데 그어렵다는 사법고시에서수석까지해 너무 대견스럽고 어머니로서 미안..."이라면 말을 잊지못하고목이 메어버렸다. 친아버지나 다름없는 황씨는 "선애는 내가 재혼할때부터 워낙 똑똑하고됨됨이가 달라 어떤 고통이 따르더라도 잘 키우려고 다짐했었다"면서 고마워했다. 이양은 대학시절 남들처럼 평범하게 서클활동과 미팅을 하면서 비교적자유롭게 생활했고 등산을 즐겼다. 그러나 디스코클럽은 대학 1학년때 딱 한번 가보았을 뿐이다. 성격이 까다롭지 않아 친한 친구/선배가 많은 편이다. 이양은 "고등학교때 은사인 숭의여고 김장문/ 이길재/조영관/이규남선생님과 중학교때의 최선규신부님, 고시공부할때 도움을 많이 준 이종걸 김현룡선배님에게도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양의 동생인 둘째 선화양(21. 중앙대 국문3), 막내 황혜영(9. 신우국교2)도 모두 모범생이다. 셋째 인규군은 올 대학입시에서 서울대 경제학과를 지원할 예정이다. 부모가 새벽 4시께 장사를 나가 밤 10시에 돌아올때까지 이양은 가장노릇을 하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유아 영세를 받은 이양의 영세명은 "빛"을 뜻하는 루시아. "법조인이 된뒤에도 영세명처럼 이세상을 밝게 비추는 일을 하고 싶다"는것이 이양의 포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