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징용 사할린 동포 유골 47년만에 봉환

일제때 징용으로 끌려간후 사할린에서 사망한 동포 3명의유골이 2일 하오 대한항공 특별전세기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꿈에도그리던 고국땅에 묻히게 됐다. `유배의 섬''사할린에 강제징용된후 한 줌의 뼈가루로 바뀌어반세기만에 고국땅에 온 이들 유골은 국내가족들이 사할린을 직접 방문,현지동포들을 통해 수소문한 끝에 유해가 묻혀 있는 묘를 찾아냄으로써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헤어진지 47년만에 부친의 유골을 모셔온 양형철씨(61.회사원.대구시수성구 범어동189의3 효성아파트B동502호)는 아버지 양병기씨(1910년생)의빚바랜 사진과 징용당시의 사할린주소가 적힌 편지만을 들고 지난달 22일사할린을 방문,부친이 징용됐던 탄광촌 주변을 샅샅이 뒤진 끝에 묘를찾아냈다. 양씨는 사할린에 머물면서 유주노 사할린스크 시청등 관계기관을찾아다니며 부친이 사망한 날짜,장소등을 알아 보았으나 사망기록이 전혀남아 있지 않아 애를 태우던중 부친이 징용됐던 자고르스크탄광 부근에살고 있는 징용1세 김정부씨(82)를 만나 사진을 보여준 끝에 부친이 이탄광에서 1떨어진 산중턱에 묻혔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아냈다. 양씨는 그뒤 사할린동포 7명과 소련인 3명의 도움을 받아 부친이묻혀있는 산을 하루걸려 뒤진 끝에 방문 7일만인 28일 하오 부친의 이름이적혀있는 비목(비목)을 발견,부친의 묘를 찾는데 성공했다. 잡초가 무성한 묘 바로 앞 땅에 반쯤 묻힌채로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비목에는 사망일자가 56년 9월18일로 돼있었으며 화장을 위해 파낸묘안에는 양씨가 생전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밥그릇,반찬그릇등 5개의그릇이 놓여있었다. 양씨는 자신이 14살때인 44년 11월 10일 부친이 대구에서 88명의다른사람들과 함께 사할린에 강제징용된후 생사조차 모르고 있다가 지난63년 신문에 게재된 사할린 사망자명단을 보고 처음으로 사망소식을 접한이후 부친의 묘를 찾기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중 지난해 비로소 부친과알고 지냈던 사할린동포로부터 연락이와 유해를 찾으러 나섰다. 그의 부친은 자고르스크탄광에서 해방을 맞이한후 탄광부근 산판에일자리를 얻어 고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독신으로 지내다 사망한것으로 밝혀졌다. 양씨는 "당초 사진 한장만 가지고 부친의 유해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생각하지 않았는데 하늘이 도와 아버님을 고향땅에 모시게 됐다"며 "지난63년 돌아가신 어머님의 한을 풀어드리고 이제 아버님의 제사를 제대로모시게돼 기쁘다"고 말했다. 또 사할린에서 47년만에 부친의 유해를 찾은 이훈경씨(64.종로학원강사.서울 마포구 서교동400의11)는 72년 박노학씨(작고)가 일본에서 보내온편지를 통해 부친 이병계씨(1909년생)의 사망사실을 알고 사할린내연고자를 수소문하다 올 3월 한동포로부터 연락이와 이번에 사할린을직접 방문, 고르샤크브 시립공동묘지에 묻혀있는 부친의 유골을 모셔오게됐다. 이씨는 "72년 사망사실을 안뒤부터 사할린에 있는 연고자를 찾으려노력해왔으나 금년에야 아버님이 묻혀있는 장소를 알고 있는 연고자가나타났다"며 "그렇게도 아버님이 오고싶어 하셨던 조선이라는 나라가저승길보다 멀었던 모양"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