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정부/근로자 제몫다해야 (숭실대 유동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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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을 고비로 한국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89-90년의 여론은 이른바 "총체적 위기"라고 일컬어질 정도의 위기감이우리사회에 팽배했다. 이는 비단 경제실적과 동향에 관한 것만이아니었다. 정치 경제체제에 대한 이념투쟁의 징조까지 있었기 때문이다.현재 한국경제의 어려움은 거품이 꺼지면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진통이라고보는 시각이 있다. 거품이 꺼진다고 하면 알맹이가 있어야 하는데알맹이가 어떤 것인지 분명치 않다. 그렇다면 한국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우선80년대중반과 현재의 경제실적을 비교하면 성장률은 하락,물가는상승,국제수지는 적자로 돌아섰다. 이러한 거시경제지표를 가지고한국경제를 비관적으로 볼수 있는 것인가. 통계숫자로 보아도 한국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할수 없지만 경제를통계숫자로만 파악할수도 없다. 경제는 통계숫자나 각종 시책의 나열이아닌 사람의 문제다. 경제는 계속되는 도전에 대한 대응의 기록이다.한국의 경제적 어려움은 국제수지적자 물가불안 성장률둔화로 설명할수없다. 어려움이 닥쳤는데 이에 대한 대처능력,즉 관리능력의 부족이문제인 것이다. 6공은 정치민주화와 경제선진화라는 두가지 시대적 과제를 안고 출범했다.이 두가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통제력은 상실,정치 경제적 욕구는분출되는데 자율적 통제력은 제대로 정착안돼 사회적 불안이 가시화 되면서경제가 어려워진 것이다. 정부는 "자원의 제약"이라는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걸 풀려고한잘못을 저질렀다. 경제정책에는 합리성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민주화과정은 자제가 수반되면서 진행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여의치 못해정치 사회적 욕구는 모두 경제적 원가상승으로 전가돼 버렸다. 이데올로기경쟁이 끝난 오늘날 세계는 바야흐로 우주적경쟁이라고일컬어질 정도로 치열한 경제경쟁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런 경쟁을 벌이는과정에서 세계경제는 자유무역에서 보호주의무역의 성격이 짙은블록화과정을 겪고있다. EC의 통합,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체결등이 이를말해주고 있다. 92년8월12일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체결을 보고 우리사회는 날벼락 떨어진것처럼 야단이다. 그러나 이는 이미 91년2월 미국 멕시코 캐나다가 협상을개시할때 그 체결이 예고되었던 것이다. 우루과이라운드(UR)의 경우에서도그랬듯이 북미자유무역협정체결을 예기치 않은 무슨 사건발생으로 보고허둥대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그런식으로는 국제화시대에서살아가기는 어렵다. 세계각국은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일등 선진국은 물론우리를 뒤따르는 신신흥공업국은 압축성장으로 우리와 격차를 좁히고 있다.한국은 빨리 뛰어야 하는데 주춤거리고 있다. 한국은 자칫 고립될수 있다.그런데도 유치한 수준의 정권다툼등 하찮은 국내문제로 편할날이 없다.지도층이나 정부당국자 국민들이 바깥세계의 움직임을 제때에 파악,적절히대응해야 한다. 경제성장을 이끌어가는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각경제주체는 제몫을다할수 있어야 한다. 첫째 정부는 국민의 기대를 상승시키는 인기위주의 정책을 펴서는 안된다.경제정책은 자원의 제약을 고려하면서 펴나가는 것이다. 경제에 기적은없다. 어떤 부문에서의 경제적 성과(예컨대 주택 200만호건설)는 다른부문의 희생(인력난 가중,임금상승,국제수지 적자)의 대가이다. 정부는 경기규칙을 제정하고 심판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한다. 기업이탈선하거나 변칙경영을 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관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둘째 기업가는 생산적투자와 기술혁신을 지속적으로 이루어내야 한다.기업은 마땅히 이익을 내야 하지만 그들이 내는 이익은 끈질긴 노력의대가여야 하고 생산활동의 결과여야 한다. 기업규모가 늘어나는 것은바람직한 현상이지만 그것이 이질적업종의 문어발식 확장 결과로이루어지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기업의 생산적투자가 늘어나려면 가능한한 미래의 불확실성이 제거되는가운데 생산적투자 이외에서 돈벌수있는 기회가 없어야한다. 기업의비용요인도 줄여야한다. 자금난과 고금리는 코스트만 높여줄 뿐이다.우리의 금융비용은 경쟁국인 일본과 대만보다 3배나 많다. 기술개발과 혁신은 한국경제의 가능성을 여는 열쇠다. 기술은 사람이다.그러나 그동안 경제성장에 걸맞는 기술혁신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선진국은기술이전을 꺼릴뿐만아니라 저급기술이전에도 비싼 로열티를 요구하고 있는실정이다. 기술개발에는 투자증대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것은혁신을 일으킬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이사라진 지금 조립기술만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기술개발은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어야 한다. 셋째 국민의 태도와 의식구조 변화가 필요하다. 근로의욕을 북돋우고올바른 직업정신과 장인정신을 길러내야 한다. "기술에 앞서 국민의마음"이 더욱 중요하다. 근로자는 특히 근면 성실한 근로의식을 확립하여 적극적인 생산활동참여를통한 생산성향상만이 소득향상 근로조건개선을 이룩할수 있다는 생각을가져야 하고 기업가는 근로자들이 그러한 긍정적 생각을 갖도록 행동해야한다. 인력난을 해외인력수입으로 해소하려 해서는 안된다.생산시설자동화와 유휴인력활용으로 대처해야 한다. 일반 국민들도 얄팍해진 생활자세를 바로 잡아야한다. 요령과 잔재주로살아갈수는 없다. 경제발전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도,시간이 지나면저절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한국인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는외국의 비아냥을 뼈아픈 충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경제의 어려움은 모든 부문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나타난다. 이제 본격적인 대권경쟁이 펼쳐진다. 과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경제문제가 호전될수 있는가. 경제를야간통금해제와 같이 생각하는것은 아닌가. 대권주자들은 물론정부당국자들은 경제의 장기적 발전에 필요한 비용을 국민들이 부담할 것을요구해야 한다. 대권주자들은 국민들에게 땀흘릴것을 호소하면서 나라의장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다. 국민들에게 땀을요구하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경제문제를 해결하려면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그런데도아무에게도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 경제문제를 해결하고 모두를 잘살게만들겠다는 공약을 서슴치 않는다. 그건 공약이고 구호일 뿐이다. 기업이 어려우니 통화량이나 여신규모를 늘리라고하는데 돈을 많이 푼다고해서 그것이 생산적자금으로 간다는 보장이 없다. 또 돈을 줄인다고 해서돈이 건전하게 쓰인다는 보장도 없다. 돈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돈이흐르는 과정이 문제다. 또 금융자율화만 되면 모든게 풀릴것으로 기대하는것은 잘못이다. 한국경제의 진로는 사람의 문제와 직결된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않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한 한국경제를 어떤 경제조치로풀어갈수는 없다. 건설된지 12년밖에 안된 남해 창선대교와 준공을 얼마남기지 않은신행주대교가 붕괴된 것은 한국경제의 기초가 허약하다는 걸 상징적으로보여주었다. 이는 기술부족 때문인가,정성의 부족때문인가. 국민들은 지금 무얼하고 있는가. 과거에는 노동력이 풍부했고 임금수준이낮았으며 기업의 투자의욕이 왕성했고 자본과 기술도입이 쉬웠을뿐 아니라유리한 국제환경에다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고도성장이가능했다. 이런 성장은 이젠 불가능하다. 이제는 경제내부에서 스스로의 힘으로성장을 이루어가야 한다. 과거처럼 공장건설 상품의 생산과 수출등 눈에 보이는 부분의 양적성장에서 눈에 띄지 않는 부분의 질적변화를 통해 성장을 이루어 가야한다.다시 말해 인간의 가치관,정부역할의 합리화,기업가와 근로자 의식의혁신,기업운영방식과 노사관계의 개선등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한국경제를 어떤 정책변수의 조정으로 풀어갈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있다. 무엇이든 잘될것으로 믿으면 잘되는 방향으로 된다고 하는자기실현적 예언설이 있다. 중요한건 경제시책이 올바른 방향으로진행되어 국민이 국가경제가 잘될것으로 믿고 그에따라 경제활동을 하며그렇게 되면 스스로도 잘될것이라고 믿고 열심히 노력할수 있게 만드는일이다. 90년대의 성장은 사회적 대통합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보다미래에 투자하고 100년전을 돌아보고 100년후를 생각할때다. 미국은 자원과 기술,일본은 기술과 근면성,중국은 풍부한 노동력을갖고있다. 한국이 경쟁력을 유지할수 있는 요인은 무엇인가. 한국정신한국윤리를 정립,우리사회에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만들어내지않고서는 우주적경쟁시대에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