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비망록] (14) 유기정 중소기업중앙회 명예회장 (2)

발휘하는 것이 인력활용면에서 훨씬 값어치 있다는 나의 신조를 역설했다.그리고서는 직원들의 대우를 개선하고 그들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시키는방책을 강구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중소기협중앙회 형편을 살펴보면 회장은 무보수에 판공비만 월30만원정도였다. 회장은 전용차가 없었으므로 자기 차를 그대로 쓰고중앙회측에서는 운전사와 기름값만 부담했다. 그래서 나도 판공비를월30만원으로 하겠노라고 했다. 그리하여 취임 당시 약속받았던 판공비및차량구입비 5천만원중에서 차량비로 2천만원 정도를 뺀 나머지 전액을 직원보수개선에 충당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구체적인 연구를 시켜보았다.그결과 월평균 15%의 봉급을 올릴수 있게 되었다. 이와같이 판공비를삭감해서 남은돈을 직원들의 대우개선에 충당하여 이듬해에는 다른기관보다 10%,그 다음해에는 5%를 더 올릴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매년월급을 조금씩 조정하여 마침내 다른 경제단체 수준의 대우를 해줄수 있게되었다. 봉급을 올려줌과 동시에 직원들의 자질향상과 능력개발에도 힘썼으며 그일환으로 외부에서 강사를 초빙하여 일과후에 영어 일어등의 어학강좌도갖게 하였다. 다른 기관에 앞서서 합리적인 사무간소화로사무능력향상에도 현저한 성과를 올리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공정한인사관리와 사기앙양을 위해서 남자직원은 오직 공개채용에 의해서만뽑기로 하고 다른 기관으로부터의 천거에 의한 인사를 억제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중소기업들에는 어려운 문제들이 많았다. 대기업도 물론출발은 중소기업이었지만 그들은 국가 경제시책에 잘 적응하는 한편세제.금융.행정면의 혜택을 십분 활용하여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국가의 개발정책을 활용하여 막강한 경제력과 조직력을 갖게 된 대기업중에서 국제경쟁력을 강화하여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했어야 함에도불구하고 손쉬운 내수시장을 겨냥했던 기업도 있었으니 중소기업의 입지는더욱 약화될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부품수입으로 가공조립하는수출산업에 주력함으로써 중소기업은 부품의 제조기술을 축적할 기회도적어지고 일본에 대한 무역 역조가 심화되는 현상을 빚어내기도 했다. 원래 중소기업은 규모나 자본의 영세성으로 어려움을 겪게 마련인데 팽창일로에 있던 대기업들은 그 인력부족을 메우기 위해 중소기업에서 길러낸우수인력을 스카우트해가기도 했으니 기술.정보.경영.인력면에서 열세를면치못하고 있는 이 나라의 중소기업은 성장 발전이 어려운 풍토였다.물론 경영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자조적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지만주변의 여건 또한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중소기업은 나라의 주춧돌이다. 중소기업의 육성이 사회의 안정과복지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대기업이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할 것같지만이웃 일본만 보더라도 전체 고용인원의 82%를 중소기업이 차지하고 있으며미국은 80%인데 당시 우리 한국은 겨우 50%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중산층이 넓고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사회가 안정되고 생활의 질이향상된다. 사회보장을 위한 복지비를 늘리는 것도 한도가 있다. 내가일본 재계의 그 유명한 세지마류조(뢰도용삼)씨를 만났을때 그는 나에게"재정에서 복지비가 50%이상을 차지하게 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말했다. 일본도 50%가 안되지만 사회보장은 복지비를 필요이상으로늘릴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할수 있어야 실현된다는 것이었다. 나라가 부유해지고 국민이 잘살게 되려면 소수의 대기업만으로는 되지않는다. 보다 많은 사람을 현대의 산업사회에 참여시키고 보다 많은인력을 활용하려면 더 많은 중소기업이 발전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창업을용이하게 하고 그들이 건전하게 발전할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 주어야 한다.그래야만 국민생활을 밑바닥부터 끌어올려 넓고 두터운 중산층이 형성된다.그러나 중앙회 회장으로 취임당시의 기업풍토는 중소기업이 성장하기에는여러가지로 어려운 여건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