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익명선호시대

한밤중에 전화벨이 울리면 누구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된다. 수화기를들기까지 짧은 순간이지만 온갖 불길한 사태를 상상하게 되고 막상 잘못걸려온 전화라는 걸 알게 되면 짜증이 나게된다. 전화란 편리한 문명의 이기인것 만은 틀림없지만 이같은 부작용도 없지않다. 얼마전 일본에서 받고싶지 않은 전화는 받지 않을수 있는 전화기를개발했다는 단신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잘모르지만 쌍수로 환영할 착상이라고 생각된다. 한국통신의 자회사 전화번호부(주)에서 발행하는 전화번호부는 그발행부수나 열독률에 있어서 성경 다음쯤은 되지않을까 싶다. 업종별상호편은 매년 발간되고 인명편은 격년제로 발행되는데 부수가 무려1,400만부나 된다. 그 내용에 있어서도 현대생활에 필요한 온갖 정보가망라되어있어 도시생활에서는 필요불가결한 안내서가 된다. 그런데 최근 각 전화국에 신규전화를 청약하면서 "게재불요"를 원하는신청인이 대폭 늘어났고 전화번호 변경과 114안내탈퇴의 요청이 쇄도하고있다는 소식이다. 한국통신에 의하면 93년6월말 현재로 전국의 전화가입대수는 주택용1,318만여대를 포함하여 모두 1,609만여대. 이중 전화번호안내를 거부하는경우가 보통 7~10%선이던 것이 최근들어 5%이상이나 증가하였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명선호현상은 우리사회에서 개인사생활보호에 대한 인식이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할수 있으나 최근들어 부쩍 늘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신정부의 사정활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정부의사정활동과 사생활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경향이 어떻게 논리적으로연결되는지는 분명치 않다. 가령 지난 5월 슬롯머신업계의 수사가본격적이었을 때 서울시내 78명의 슬롯머신 업주중에 114안내에 오른사람은 10여명에 불과했다는 후문이다. 그렇지만 밝혀져야 할것은 언제인가는 밝혀지고 마는것. 사정바람에무엇인가 뒤가 켕기는 사람이 적지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가뜩이나 적막한현대생활에서 이처럼 폐쇄적인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수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