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칼] (217) 제1부전야

그 불상사를 일본의 역사에서 "나마무기 사건"이라고 일컫는데,그런사건을 일으켜 놓고 히사미쓰는 유유히 교토에 도착했다. 히사미쓰가 도착하자,교토에 집결해있던 존황양이의 지사들은 그를 마치무슨 대단한 영웅처럼 반겼다. 공무합체론을 주장하여 막부를 개혁하러갔던 사람이 용감무쌍하게도 영국인의 목을 베어버리는 놀라운 쾌거를감행했으니 말이다. 영국과의 일전을 각오하지 않고는 감히 엄두도 낼수없는 그런 극단적인 양이를 몸소 실천한 셈이 아니고 무엇인가. 지사들은 감격하여 들끓었고,그 가운데 과격한 사무라이들은 근질근질한피를 감내할 길이 없어서 마침내 칼을 빼 들었다. 그들은 천주(천주),즉하늘을 대신하여 역적을 주살(주살)한다는 명분아래 친막부 개국론자들을차례차례 암살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흔히 "히토기리"(인참:사람 베는 자)라고 일컬었는데, 요즘 말로하면 테러리스트인 셈이다. 그 히토기리들이 횡행하게 된 교토는 피비린내가 풍기는 듯한 음산하고 흉흉한 곳으로 일변하고 말았다. 히사미쓰는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 역시 존황양이파에 속하지만,공무합체론을 주창하는 온건 현실주의자인 셈인데,자기가 일으킨 나마무기 사건 때문에 존황양이의 급진파들이 칼을 휘두르는 과격한 수단을 서슴지 않게 되었으니 난처했고, 못마땅하기도 했다. 더욱 혐오스러운 것은 그들 중에는 천주를 감행하기 위한 자금 조달이라는 미명하에 무역상이나 부호의 집을 터는 강도행위도 서슴지 않는 패거리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막부의 주구(주구)들을 벤다"는 자기네 주장에서 벗어나 공무합체론을 적극적으로 펴는 황실의중신들에게까지 칼날을 들이대었다. 그들의 위협에 못이겨 공경(공경:황실의 중신이며 귀족)들 중에는 관직을 버리고 교토를 떠나한적한 교외의 시골로 가서 은거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나중에 명치유신의 세 원훈(원훈)중의 한 사람이 된 이와쿠라도모미(암창구시)도 그때 황실에서 물러나 시골로 은신을 했었다. 에도로 향하기전 그와 여러 차례 만나 협의를 하여 칙서를 받아내는데성공했던 히사미쓰는 그를 은거지로 찾아갔다. 위로를 할 겸 시국에 대한의견을 나누어보기 위해서였다. 히사미쓰는 오쿠보를 함께 데리고 갔다. 뜻밖에 은거지까지 찾아온 히사미쓰를 이와쿠라는 반갑게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