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비망록] (65) 이희일 전 동력자원부 장관 (11)

2년여에 걸친 2차계획작성작업의 상당한 부분은 계산작업이었다. 지금은컴퓨터가 널리 보급되어 정부의 어느 사무실에도 개인용 컴퓨터가 몇대씩있고 소형 전자계산기는 개개인이 거의 다 갖고 있지만 그당시 이런것들은물론 있지도 않았고 겨우 수동식계산기가 과에 2~3개 있을 정도였다. 몇시간씩 계산기를 손으로 돌리다보면 팔이 아파서 잠시 쉬어야 했고 쉬는동안에 다른사람이 그것을 돌려 써야 했다. 나중에 좀 발달된 "몬로"라는 기계식계산기가 도입되었는데 이것은 타자기만한 크기의 것으로 계산속도는 수동계산기 보다 빠르고 쉬웠지만 소리가요란해서 마치 인쇄공장에서 일하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이 계산기도 과에하나정도 있었고 고장이나면 다시 수동계산기를 돌려야 했다. 이들 계산기는 성장률이나 저축률,그리고 투자사업의 내부수익률같은비교적 간단한 계산에 사용하였다. 총량모형이나 특히 부문별 산업연관모형의 계산은 그런 계산기로는 도저히불가능했다. 그래서 대구에 있는 미군기지에 가서 대형컴퓨터를 빌려사용한 일도 많았고 그것으로도 해결할수 없는 계산은 일본에 가서처리하기도 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대형 컴퓨터가 없었고 2차계획작업이 끝난 67년7월경제기획원 통계국에 인구센서스자료를 처리하기 위해 처음으로 IBM1401이도입되었다. 이때 컴퓨터 가동식에는 대통령도 참석하였다. 5개년계획작업에 참여했던 기획국직원은 거의 매일 야근을 해야했다.통행금지시간이 넘어 집에 가지못하고 부근의 여관에서 자는일도 종종있었다. 야근을 할때도 겨우 자장면을 먹을 정도였으며 그때문에 기획국의각방에는 향상 자장면 냄새가 가득차 있었다. 기획국에선 경제전망을 하고 경제성장률이나 국제수지를 예측하며재정규모를 추정하는등 어렵고 지루하고 고된 일들을 매일 밤새워 하는데여기서 작성된 결과는 예산당국이나 외환당국 그리고 외자도입을 담당하는부서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매우 귀중한 자료로 쓰였다. 그러나 결국생색은 그들이 다내고 기획국직원은 항상 음지에서 고생만 하였지만 항상나름대로의 보람과 긍지를 갖고 있었다. 공무원의 신규보충을 위해 매년 총무처에서 행정고시합격자와신규채용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을 확보하여 각부처에 배치하였는데경제기획원은 그들중 성적이 가장 우수한 사람을 먼저 골라 왔다. 대개기획국에서부터 차례로 배치하였다. 그러나 모든사람이 다 기획국에서 열심히 일한것은 아니었다. 때때로이들중에서 6개월 내지 1년정도 근무하다가 일이 어렵고 생색도 안나는데다생활도 어려워 다른국으로 보내달라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럴때면국장이나 과장들은 서슴지않고 그들을 다른 국으로 보내 주었다. 기획국엔사명감없는 사람은 필요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있을때면 우리 과장 몇사람은 퇴근길에 사무실 근처에 있는대폿집에 들러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세상 인심을 개탄하곤 했다. 그래도경제개발계획은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니 힘들더라도 우리가 하는도리밖에 없다고 다짐하면서 젊은 세월을 묵묵히 보냈다. 오늘에 와서 보니 60년대 70년대에 기획국에서 말없이 열심히 일했던사람들중 그후 크게 된 사람이 많았다. 경제부처의 장관 차관 차관보나1급공무원을 지낸 사람이 대부분이고 지금도 현역으로 중책을 맡아 열심히뛰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