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칼] (329) 제2부 대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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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쿠라는 더는 뭐라고 입을 뗄수가 없었다. 참혹한 심정이었다.롯슈가 이미 막부군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여기고, 마음이 신정부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게 눈에 보이듯 하질 않은가."잘 알았소" 이다쿠라는 이제 더 앉아있을 필요가 없어서 자리를박차다시피 하고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롯슈는 약간 당황하는 기색을 떠올리며 말했다."좌우간 쇼군께 서찰을 잘 받았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그런 문제는 나 혼자서 결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니 다른 나라 공사들과 일단 상의를해보도록 하겠어요" "예,좋아요" 그말이 뻔한 인사치레의 빈말이라는 것을 아는터이라 이다쿠라는 퉁명스럽게 응답하고는 성큼성큼 응접실에서나가버렸다. 이다쿠라로부터 보고를 받은 요시노부는 대뜸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개같은 놈의 새끼!" 하고 내뱉았다. 배신감에 치가 떨리는 모양이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정치와 권력,나아가서는 국제관계의 냉혹한 생리를모르는바 아니지만 그러나 그처럼 손바닥을 뒤집듯 막부에게 등을 돌리고교토의 신정부 쪽으로 기울다니,야속하고 괘씸하기 짝이 없어서 요시노부는어떻게든지 이 전쟁을 이겨 롯슈란 놈에게 본때를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비감어린 충동도 잠시뿐이고 그는 그날 마침내 에도로 가기로결심을 굳히고 측근의 중신들을 모아 그뜻을 밝혔다. 그가 그펀 용단을 내리게 된것은 서양세력의 도움을 받을수 없다는걸알았을뿐 아니라 겹쳐서 막부진영이었던 요도번(정번)과 쓰번(진번)이배반을 하여 황군쪽으로 붙은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같이싸우던 동지가 총뿌리를 별안간 뒤로 돌려 덤벼들었으니 뒤통수를 얻어맞은것과 마찬가지였다. 요도번과 쓰번은 작은 번이었다. 보잘것 없는 자기네 번이 살아남기위해서 재빨리 강한쪽에 붙어버린 것이었다. 의리도 뭐도 없는 생존의냉혹한 작태라고나 할까. 전쟁판에서의 기가차는 배신이 아닐수 없었다. 가뜩이나 역부족하여 밀리던 막부군은 그런 뜻하지 않은 두번의 역공(역공)까지 당하게되어 결국 와르르 무너지듯 총퇴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요시노부는 눈물을 머금은 듯한 축축한 목소리로 그와같은 두가지충격적인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에도로 가서 전열을 재정비하는수 밖에없다고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