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대표의 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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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일방적인 승리로 역사교과서등에 기록된 "노일전쟁"(1904~1905)은사실상 일본이 질뻔한 전쟁이었다. 일본국민들은 그들의 정부가 제공한 거짓정보에 얹혀 그저 승전무도에들떠 있었을 따름이다. 일본군은 초전의 기습공격으로 남만주일대에서 한대 우세를 보였으나 전쟁이 1년반이상 계속되자 일본의 전력에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날로 증강되어오는 러시아군에 비해 일본의 전투력은 후속부대에 투입한 인력부족현상에 부딪쳤다. 게다가 전쟁 수행을 위한 전비는 오래전에 바닥이 드러 났다. (소요 총전비 18억엔중 16억엔은 외국에서 차입) 바로 이때에 레오도어 루즈벨트 미국대통령이 중재에 나섰다. "승전 일본"의 체면과 반전운동에 시달리고 있던 러시아제국의 입장을 다같이 세워주자는 강화 알선이었다. 일본정부는 고무라를 전권대사로 파면키로 결정했다. 미국의 동부해안 군항포르머스를 향하는 코무라대사에 대한 일본국민의 기대는 엄청난 것이었다. "압승"을 배경으로한 강화조약을 체결하는만큼 최소한 50억원의 배상금은 받아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강화조약의 결과는 국민들의 기대와 거리가 먼 것으로 나타났다.일본은 단 한푼의 보상금도 받지 못했지 때문이다. 전쟁에 지지않은 러시아가 일본측의 배상요구에 응할 턱이 없았다. 러시아는 동아시아 진출의 야욕을 참는 것으로, 그리고 일본은 군국주의자들이 꿈꾸어온 대륙침략에의 발판을 구축하는 선에서 전쟁을 끝막았다. 전국에 코무자 대사공격의 데모가 벌어졌고 "소촌전권 대사는 살아서귀국할 생각은 버리라"는 전문이 협상 현장에 날아들었다. 소촌대사를 태운 여객선이 요코하마항에 입항하자 검은 기수백가가 항구를 가득 채웠고 데모대원들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바닷속에 뛰어들어 자결하라"고 합창했다. 대사는 여객선의 뒷문을 통해 가까스로 상륙했다. 허신행농신부장관 일행이 UR협상을 마치고 오늘 귀국할 예정이다. 갖은어려움을 겪으면서 국익보호를 위해 진력하고 귀국하는 정부대표단에게돌을 던진다는 것은 이미 90년전에 일본의 민중들이 범한 우와 다를바 없지않을까. 궂은일을 떠맡았던 허장관 일행의 노고도 알아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