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뿌리] (28.끝) 조선은행 .. 한국은행 전신

우리나라 중앙은행제도의 뿌리는 84년전인 지난 1909년 11월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구대한정부는 일본통감부와 ''한국중앙은행설립에 관한협정''을 맺으면서 공포한 ''한국은행조례''에 따라 구한국은행을 설립했다.여기서 일본제일은행이 맡아오던 발권및 국고업무를 넘겨받았다. 구한국은행은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경제침략의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제도를 바꾸면서 1919년 8월1일 조선은행으로 개편됐다. 조선은행의 설립목적은 우리나라경제에 대한 수탈과 일본산업자본의 대륙침투를 위한 금융조직을 강화하는데 있었다. 실제로 조선은행은 태평양전쟁기간중 은행권을 남발함으로써 일본의 전비조달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다. 중앙은행으로서의 기능수행에 필요한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권한을 부여받지도 못했다. 구한국은행이나 조선은행은 부분적으로 중앙은행기능을 수행했다고 하지만 실질적 역할면에서는 중앙은행이라고도 할수 없었다. 당시 국내 경제여건은 과도기적 상황에서 격심한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가운데 경제질서가 극도의 혼란에 빠져있었다. 이같은 혼란은 해방이후까지 지속됐다. 경제적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재정면에서의 균형과 함께 금융면에서도 통화및 신용공급의 억제를 통한 인플레이션압력의 제거가 절실히요망됐다. 이같은 요망은 자연스럽게 통화신용에 대해 ''강력한 통제력을 가진중앙은행''의 설립요구로 이어졌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대외신인도 확보와 함께 금융의 민주화및 정치적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강력한 중앙은행의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갔다. 기존의 금융제도를 일신하기 위해서도 건전하고 자주적인 금융체계를확립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 중앙은행의 설립이 우선과제로 대두됐다. 이에 따라 조선은행은 47년4월 ''중앙은행설립대강''이라는 중앙은행설립에 관한 견해를 발표, 이를 계기로 과도정부가 48년3월 재무부에 금융법규조사위원회를 설치하여 공식적으로 중앙은행 법제정에 착수했다. 당시 뉴욕연방준비은행 국제수지조사국장이었던 브룸필드박사등의 협조를 받아가며 50년5월 한국은행법을 확정 공포했다. 곧바로 6월5일 구용서씨가 초대총재로 임명되고 6월12일 업무를 개시, 한국은행은 중앙은행으로서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게 됐다. 한국은행은 50년에 설립된후 금융및 경제환경과 정책기조의 변화에 따라법이 다섯차례 개정되면서 기능에 적지않은 변화가 있었다. 60년 5.16군사쿠데타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정부주도의 성장위주경제정책을 금융면에서 원활히 뒷받침할수 있도록 금융제도를 개편하면서62년5월 한은법을 손질한게 첫번째 개정이었다. 제1차 한은법개정은 당초 입법정신인 금융민주화와 중앙은행의 정치적중립성보장을 후퇴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당시 법개정때는 한은의입장이 완전히 무시되고 한은법 82조에 명시되어 있는 금융통화위원회의자문도 받지 않았다. 2차부터 5차까지의 법개정에서는 큰 변화가 없어 당초 취지보다는 퇴색된 상태에서 80년대를 맞았다. 87년 6.29선언을 계기로 정치 사회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경제민주화에대한 국민의 기대감도 커져 중앙은행의 독립성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정치권에서도 한은법을 개정키로 했으며 당시 대통령선거에서도 한은의독립성보장과 기능강화가 여야 각당의 선거공약으로 채택됐다. 그러나 재무부와 한은간의 첨예한 의견대립으로 한은독립의 취지를살리는 법개정은 이뤄지지 못했다. 법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은은 실질적으로 중앙은행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한은은 설립당시 소공동에 있던 조선은행건물(신세계백화점 맞은편)을 물려받아 사용했으나 6.25전쟁으로 절반이 불타 없어져 이를 복원했다. 지금도 이건물을 본관으로 부르며 사용하고 있지만 워낙 좁아 그옆에다 87년11월 1만3천평규모의 신관을 지었다. 대부분의 부서는 신관에있다. 한은은 창립당시 액면 1원, 5원, 10원, 1백원의 조선은행권과 5전,10전, 50전의 조선은행소액지폐및 일본정부소액보조화폐인 1전주화의발행권을 넘겨받아 이를 한은에서 발행한 것으로 간주, 상당기간 통용되도록 했다. 그후 50년7월22일 대구에서 처음으로 한국은행권을 발행했다. 액면 1백원및 1천원권이 바로 그것이다. 한은은 50년5월28일 대통령긴급명령에 의거, 1차 통화조치를 단행해조선은행권을 한국은행권으로 대체했다. 그후 53년2월 화폐단위를 원에서 환으로, 62년6월10일 다시 환에서지금의 원으로 바꾸었다. 한국은행이 주화를 처음 발행한 것은 59년10월20일로 1백환니켈화 50환백동화, 10환청동화였다. 한은은 50년6월12일 본격적인 중앙은행으로서 모습을 갖춘 이후 지금까지 모두 18명의 총재가 거쳐갔고 지금은 19대인 김명호총재가 맡고있다. 40년이 넘는 짧지않은 기간에 때로는 정치바람을 타기도 했으나 통화가치의 안정과 균형적인 경제성장이라는 고유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지금도 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