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석파사랑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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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창의문(자하문)밖 부암동에서 세검정에 이르는 지역은 예부터 풍광이수려하고 조용한 휴식처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풍류군주 연산은 이일대를탕춘대라 이름지어 질탕한 놀이터로 삼기까지 했다. 이런 풍광은 조선조말까지만해도 변함이 없어 가히 속념을 씻어 버릴만한 선경을 지닌 곳으로 지목돼 왔다. 이 부근 산석과 노송이 빼어난 인왕산 자락에 철종때 영의정을 지낸김흥근의 별서가 있었다. 그는 바위에 "삼계동"이라 새겨 놓고 이 별장을"삼계동정사"라고 불렀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이 집권한뒤 이곳은 그의별장이 되고 만다. 대원군은 이 별장을 그의 아호를 따서 "석파정"이라 불렀다. 안태각락안당 망원정 류수성중관풍루등 여덟채의 건물이 들어서있고 뜰에는바위와 노송들이 운치있게 어울어져 있는 곳이다. 이 별장의 소유권은이희 이준 이 등에게 세습되어 오다가 6. 25직후에는 고아원 병원으로쓰이기도 했는데 현재는 개인소유가 되어 버렸다. 운현궁이 그랬듯 망국왕족들의 형편으로는 팔아버릴수 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다행히지방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어 문화재로서 최소한의 보호는 받고있다. 그러나 석파정내에 있던 사랑채(지방유형문화재 제23호)는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 1958년 지금의 세검정삼거리 산중턱으로 옮겨졌다. 한옥2채가 들어서 있는 넓직한 개인집 울타리안에 들어가 폐가처럼 방치되어왔다. 지난해말 문화제인 사랑채를 비롯한 한옥을 수리하기 시작하더니 말끔히단장을 끝내고 얼마전부터 이 집은 궁중요리전문 고급음식점으로 둔갑했다.음식점의 이름도 "석파랑"이고 흥선대원군의 관모쓴 얼굴이 로고가 되어간판에까지 버젓이 등장,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민망스럽기 짝이 없다. 물론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제대로된궁중요리를 서비스함으로써 우리문화재와 음식문화를 동시에 알릴수 있다는집주인의 설득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 서울시 관계자들의 말이다. 대원군의 공과에 대한 역사적 평가야 어떻든 그는 조선조국왕의 아버지였고한때는 집권자였으며 죽은뒤에는 대원왕으로 추증된 역사적 인물이 아닌가.더군다나 미.일.로의 외세배척에 기울였던 그의 노력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문화행정의 담당자였다면 최소한 그의 아호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점의 이름이 되고 얼굴이 음식점의 로고가 되는 사태쯤은 막았어야옳다. "세계화"만 외치다가 얇팍한 상혼에 휘말려 정신을 못차리는 문화행정이 못내 걱정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