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경제] 진단과 처방 (3)..첨단산업 퇴조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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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초 유럽에서 열렸던 유럽정보기술회의(EITC)에 참석했던 한 미국기업대표는 유럽이 추진중인 정보고속도로사업에 "비관론"을 제기,눈길을 끌었다. 데이터정보업체인 3COM사의 에릭 벤하모사장은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유럽의 정보고속도로 구축은 미국이나 아시아 일부국가들에 비해 한발 뒤쳐져 있으며 통신표준화, 통신부문의 국가독점해제등 산적한 문제점을 빠른 시일안에 극복하지 못하면 이들을 따라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벤하모사장 말은 유럽연합(EU)에 소속된 각국이 자국의 이해에만 집착하지않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EU라는 전체를 위해 힘을 모으지 않고서는미국이나 일본에 뒤질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곧 하나를 지향하는 유럽이 갖고 있는 대표적인 "아킬레스건"에 대한 지적으로 이는 EU가 더이상 여러 산업분야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응집력을 보여야 하며 누군가는 이를 위해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경구"쯤으로 해석된다. 유럽은 그동안 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다. 가전산업분야를 비롯해 반도체 컴퓨터 자동차등 현대국가 경제의 대들보로 여겨지는 분야에서 선두권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항공-우주, 생명공학등의 분야에서 힘겨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가전산업분야에서 이제 그나마 명맥을 잇고 있는 업체는 필립스뿐이라고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가전산업분야중 차세대 주력상품의 하나로꼽히는 고선명(HD)TV를 예를 들면 이부문도 앞서 지적된 그같은 약점으로인해 일본이나 미국보다 훨씬 뒤쳐진 상태다. 유럽은 지난해 9월에서야 차세대TV의 개발방향을 디지털방식으로 확정했으며 오는 97년까지 이의 개발에 2억7천만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일본이 지난 76년 NHK를 중심으로, 미국이 RCA사를 핵으로 고선명TV개발에 나섰던 것을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물론 일본이 고선명TV방식을 둘러싼 미국과의 경쟁에서 져 최근에야 디지털방식으로 전환한 것을 감안하면 그렇게 늦은 것은 아니라 할수있다. 그러나 일본이 그동안 이분야에서 쌓아왔던 노하우와 기업들의 투자액을 고려하면 EU는 사실상 열세인 셈이다. 반도체분야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톰슨, 네덜란드의 필립스, 독일의지멘스 등 한때 선두권다툼을 벌이던 유럽반도체회사들은 2-3년전부터일본,미국,한국등의 반도체업체들에 밀려 자국시장을 내주기 시작하더니이제는 D램칩의 경우는 거의 생산을 중단하다시피한 실정이다. 그리고 세계반도체시장 점유율 순위에서도 점차 하위권으로 밀려가는 추세다. 이에 따라 유럽기업들은 지난 92년부터 위기감을 느끼고 연합해 미국,일본기업들에 대항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마이크로프로세서개발(OMI)계획의 일환으로 미국 IBM 모토로라등과 제휴, 반도체분야의 수성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때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보유했던 화학업종도 생산시설을 아시아등지로 옮기면서 지난 90년이후 20만명에 이르는 실업자를 냈으며 철강산업의 구조조정작업도 국가간의 이해가 엇갈려 도중하차할 위기를 맞고 있다. 이같은 유럽산업의 퇴조와 관련,미국의 경제학자인 래리 프랑코박사는유럽기업들은 제약과 생명공학분야에서 발전을 이루었을 뿐 그동안의보호무역정책에도 불구, 자동차 전자등 대부분의 업종은 제자리를 지키는데 급급해왔다고 혹평했다. 서서히 유럽의 앞날을 압박해가고 있는 기업들의 퇴조는 EU구성국들의응집력부족등 사회적인 기반이 취약한 것 외에도 기업내부에도 주요한원인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사업에 대한 진출을 꺼리려는 경향등이 팽배해 있으며 연구개발투자를 소홀히해 경쟁력약화를 자초했다는 풀이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최근 내놓은 자료에따르면 지난 91년중 EU 12개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대비 연구개발(R&D)투자비율은 평균 1.96%로 미국의 2.74%, 일본 2.87%에 비해 크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나라별로는 독일만이 2.66%로 미국.일본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을 뿐이었으며 영국은 10년전보다도 오히려 줄어들었다. 유럽은 지금 높은 임금수준,지도력-응집력결핍,연구개발투자소홀 등 다양한 악재가 겹쳐 산업전반에 걸쳐 동맥경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김영규특파원]